[사설]서울 유치원 행정, 교육청 따른 학부모만 바보 만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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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역 유치원 지원을 둘러싼 혼란이 점입가경이다. 12일 유치원 원아모집 추첨이 모두 끝난 후에도 청와대와 서울시교육청에는 ‘중복 지원’에 대한 신고와 단속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중복 지원자를 가려낸다고 내 아이가 합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복 지원해 합격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며 신고한다는 것이다. 교육적이어야 할 유치원 입학 현장에서 학부모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분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유치원 지원 방식을 졸속으로 바꾼 서울시교육청에 있다. 복수 지원의 무제한 허용으로 인해 유치원 입학 경쟁률이 수백 대 1로 치솟고 등록 포기와 재충원으로 이어지는 혼선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교육정책 변경은 사전예고를 거쳐 신중히 이뤄져야 함에도 서울시교육청은 한 달 전인 지난달 갑자기 가나다군 군별 지원 제도를 발표했다. 접수 나흘 전에는 지원 횟수를 3회에서 4회로 늘리더니 지원 전날 ‘중복 지원자는 합격을 취소한다’고 밝혀 대혼란을 불렀다. ‘설익은 행정’이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이번에는 “군별 지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오락가락했다.

현재로선 중복 지원을 완벽하게 가려낼 방법도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늘까지 유치원 지원자 명단을 받아 중복 지원을 가려내고 이후 등록 단계에서도 발견되면 합격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치원 지원 현황을 총괄하는 전산시스템이 없는 데다 일부 유치원은 지원자 명단을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교육부는 “중복 지원을 이유로 합격을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교육청이 교육부와 사전 협의도 없이 덜컥 공문을 보냈다는 얘기다. 관(官)의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만 손해 본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의 유치원 정원이 입학 희망자 수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데도 해마다 ‘입학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국공립과 사립에 대한 선호도 차이가 크고, 평판 좋은 유치원으로 지원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있는 유치원 및 어린이집에 대한 지원과 관리를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주먹구구식 중복 지원 금지로 혼란을 자초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어떻게 책임을 질 건가.
#유치원#중복 지원자#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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