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내가 누군지 알아?”가 드러낸 세월호 폭행사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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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대리기사 폭행, 뜯어볼수록 참담하게 닮았다
동영상 나도는데 진상 감추기… 해경-경찰 부실한 초동대처… 가해자-官, 이번엔 야당과 유착
‘세월호’ 정치투쟁 도구로 만든 친노 위세, 언제까지 국가 흔드나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정말 죄송하다. 나는 김현이라는 국회의원이 누군지 몰랐다. 새정치민주연합 초선 비례대표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고 있었으니 죽을죄를 지었다.

그럼에도 고맙기 짝이 없다. 덕분에 세월호 참사 다섯 달이 지나고도 변치 않는 권력의 속성과, 엄청나게 변질된 세월호의 정치성을 알게 됐다.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간부들이 김 의원과 술 마시고 대리기사를 폭행한 사건을 ‘실수’쯤으로 왜곡·축소·은폐하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세월호 참사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것처럼 이번 일도 단순 폭행사건을 넘어섰다. 세월호 참사와 폭행사건은 뜯어볼수록 유사점이 보여 참담할 정도다.

우선, 관련 동영상이 수없이 방송되면서 공분을 일으키는데도 관련자들은 진상을 가리려 든다는 점이다.

행인에게 맞았다며 팔에 깁스를 한 김병권 전 위원장은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제풀에 넘어져 그 꼴이 된 것이었다. 역시 맞아서 이빨 여섯 개가 나갔다는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도 사건 직후 멀쩡한 입술로 담배를 피워 문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다닌다. 김 의원도 우리 기자와의 통화에서 “때리고 한 상황은 없었다”는 등 동영상으로 바로 확인되는 거짓말을 해댔다.

세월호 선장 아닌 척 첫 번째로 구조선을 탔다가 나중에 팬티바람 동영상이 드러난 이준석이 자꾸 연상돼 내가 다 괴롭다. 그때는 죄 없는 학생들이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이번엔 힘 없는 대리기사가 가만히 있어야 했고, 의원과 대책위 간부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목격자들 증언) 으름장을 놓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바로 “내가 누군지 알아?”가 이번 사건을 참사로 키운 키워드다.

세월호 침몰 때 해경의 초동대처나 이번 경찰의 초동수사나 한심한 것도 똑같다. 다만 그때 해경이 배 안의 학생들 구조는 않고 선원들부터 구한 이유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지만, 이번에 경찰이 편파수사를 한 이유는 김 의원의 “내가 누군지 알아?” 발언에서 너끈히 유추된다.

경찰에게 국회의원 명함을 주는 것부터 알아서 모시라는 뜻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으로 경찰청장을 청문하는 의원님이 지시하는데 경찰이 어찌 감히 어길 수 있겠나. ‘완장’의 위세를 믿고 병원행을 주장하는 대책위 간부들의 뜻을 어떻게 거스를 수 있겠나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개조” 소리 나올 만큼의 관(官)의 행태가 폭로됐다면 이번 사건에선 김현으로 상징되는 야당 권력의 갑(甲)질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백번을 양보해 사건 당시는 경황이 없어 실수를 저질렀다고 봐준다고 치자. 그러나 사건 발생 나흘이 지나도록 사과 한마디 없는 것은 뼛속 깊이 박힌 특권의식을 넘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구나 김 의원은 한 달 전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에 수사권 기소권 부여가 당연하다”며 ‘사람 사는 세상’과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라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려는 사람들이 ‘친노’라고 세월호 특별법과 친노를 연계시켰던 사람이어서 더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자료를 뒤져보니 그는 1980년대 한양대 학생회 간부로 일찌감치 야당에 입문해 노무현 정부 춘추관장을 지낸 전형적인 친노다. 세월호 특별법이 진상 규명이라는 ‘초심’에서 벗어나 수사권 기소권과 ‘대통령의 7시간’을 놓고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변질되는 데는 김 의원 같은 세력이 강경파 유족들을 떠받들며 좌파 매체-단체들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이제 당신이 누군지 분명히 알아드리겠다. 자신과 한편이 아닌 사람들은 사람답게 대우하기는커녕 “내가 누군지 알아?” 하며 적의(敵意)를 드러내는 김 의원. 진보의 가치를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반칙과 특권을 일삼는 김 의원. 당신 같은 의원 때문에 영등포경찰서는 ‘새정치민주연합당이 세월호 관련인들을 다 망쳐놓은 겁니다’ ‘영등포경찰서장과 그 졸개들은 야당과 예의를 모르는 세월호 일부 유족들의 충견인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철회한다’ 같은 시민 분노로 지금 폭파 직전 상태다.

새정연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아무리 절체절명의 위기의식과 환골탈태의 혁신을 말해도 소용없다. 김 의원을 경찰에 출두시키고 국민 앞에 사과하지 않는 한, ‘유족들 찔러가며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 먹고 나라를 뒤흔든 비열한 야당과 치졸한 좌좀’(영등포경찰서 인터넷 게시판)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김현#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세월호 참사#대리기사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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