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사에 대한 예의… 베트남과 비교하면[김순덕의 도발]진실은 다면적이다. 글로 먹고사는 기자가 이렇게 쓰면 참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모른 척하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취재한 사실을 안 쓰고는 못 견디는 직업병 같은 것이 기자들한테는 있다.서론이 길어 죄송한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찾는 베트남 관광지 다낭에서 자동차로 30분쯤 가면 꽝남성 하미마을 위령비가 있다. 전쟁, 특히 내전을 겪은 나라 치고 가슴 아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만 하미마을 참사는 우리 군과 관련돼 더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러나 최근 쏟아진 이 위령비의 연꽃문양 관련 기사는 꼭 진실이랄 수 없어 마음이 무겁다.한국 정부가 덮은 ‘베트남 하미마을 비문’ 살려냅시다(한겨레신문 5월 12일자)“…(중략) 뒷면에 학살극을 담은 위령시를 새겼으나 (참전) 군인들이 부대 이름을 빼달라고 하자 주민들이 아예 대리석으로 덮어버렸다.” (경향신문 5월 26일자)● 한국은 그런 압력 가하지 않았다그렇지 않다. 노파심에 강조하자면 나는, 한국군이 개입한 ‘민간인 학살 관련’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도 않다. 다만 위령비 속 끔찍한 추모문을 한국 정부가 덮으라고 압력을 가했던 것이 아니고, 우리 군인들의 종용에 주민들이 위령시를 덮은 것도 아님은 알려야겠다 싶은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정부는 2001년 그런 위령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베트남 공산당 국제부에 위령비의 존재를 알렸을 뿐이다. 나머지는 베트남에서 정리했다. 과거사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공식 입장이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는다’ 이기 때문이다. 당시 주(駐)베트남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현장에 있던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저서 ‘베트남, 잊혀진 전쟁의 상흔’에 모든 과정을 자세히, 그것도 감동적으로 써놓았다(2003년 초판이 나왔다. 팩트는 최근 저자가 다시 확인해줬다). 그때 상황을 보도 듣도 못했던 이들이 마치 한국 정부가 악마라도 되는 듯, 위령비마저 훼손시켰다고 주장하는 건 지나치다. ● 게릴라 촌락 하미마을, 절반이 열사였다한베평화재단(이사장 강우일)과 시민모임 소박한자유인(대표 홍세화)은 원래의 비문을 다시 살려내자는 취지로 지난달 시민평화기록전을 열었다. ‘한국군은 1968년 2월 24일 (하미)마을에 진입해 135명을 학살했다…(중략) 2000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지원으로 위령비를 건립했다가 한국 정부가 사건의 참상을 전하는 비문 내용을 문제 삼으며 그 위를 연꽃 그림으로 덮도록 해 논란이 되면서 더욱 알려졌다’는 게 한겨레 소개 기사다. 팩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5대대 전술책임지역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활동하는 ‘게릴라 사회’였다. 연세대 역사와공간연구소 한성훈의 2018년 논문 ‘하미마을의 학살과 베트남의 역사 인식’에 따르면, 피해 유족을 대표했던 응우옌 반 꺼이 역시 15살 때부터 낮에는 농부로, 밤에는 전사로 활약한 유격대원이었다. 베트남 정부가 하미마을 희생자 135명 중 60명을 열사로 인정했을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민간인 피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군이 일방적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평전엔 베트콩이 정의와 자유의 기사인 줄 알았다가 팔라치의 친구인 아르헨티나 종군기자가 베트콩에 잔혹하게 처형되는 모습을 보고 치를 떨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미군이 저지른 만행은 항상 기록으로 공개되는 반면 베트콩의 만행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북한군은, 중공군은 안 그랬겠나). ● 한국 정부가 초등학교 40개나 짓는 마당에베트남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인식도 그리 단순하진 않다. 영화 ‘국제시장’ 식의 투철한 반공정신부터 “월남 패망에 희열을 느꼈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 식의 인식도 존재한다.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군가를 들으며 성장한 외교관 이용준은 2000년 초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베트남 공안부 실세 응우옌 꽝 빈 국제국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두 나라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역사의 희생자라는 데 공감했다.그 실세가 “유사한 역사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크게 성공했으나 베트남은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한국이 인도적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이것이 베트남 관리들의 일반적 입장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뜻을 모은 것이 초등학교를 지어주는 것이었다. 이용준은 한국군이 주둔했던 곳, 양민 피해가 있었다고 주민들이 믿는 험준한 산골 40곳에 ‘대한민국’이 새겨진 학교를 지어선 주민들이 한국의 우정을 기억하고 전쟁의 아픈 상처를 잊도록 해주고 싶었다. 윗물과 아랫물의 온도는 달랐던 모양이다. 현지답사 중 이용준이 맞딱뜨린 하미마을 위령비 추모문은 너무나 잔혹했다. 2001년 신년인사 겸 만난 베트남 정부 인사에게 이 위령비 존재를 전했더니 반응이 심각했다. 당과 정부가 한국과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조하는 마당에 대체 누가 그런 위령비를 건립했느냐며 배경 조사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거였다. ● 베트남 인민위원회는 주민들 설득했다일당독재국가답게 바로 조치가 됐다면, 감동 따윈 없을 것이다. 그런데 꽝남성 인민위원회는 “베트남 정치체제상 문구를 변경하려면 주민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우리 측에 양해를 구하고는 수없이 주민회의를 열어 설득하더라는 거다. 베트남은 인민의 나라이며, 그것이 호찌민 주석이 남긴 베트남식 공산주의라는 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한참 후 응우옌 반 하이 꽝남성 인민위원장이 “끔찍한 표현들은 모두 삭제하기로 합의됐으나 ‘학살’이라는 단어를 존치시킬 지 여부를 놓고 일부 주민이 반대를 굽히지 않는다”며 다시 양해를 구해왔다. 이용준은 반대했다. 아예 수정못하는 건 할 수 없지만 ‘검증되지도 않은 학살’ 표현이 들어간 수정안에 우리 정부가 동의할 수는 없다고 했다(실제로 참전군인들이 형성한 ‘민간기억’은 학살을 부정한다. 권예진 최은봉의 2023년 논문 ‘한국의 베트남 전쟁 공공기억과 민간기억의 담론 갈등’). 나중에 알고 보니 ‘학살’이란 말은 죽어도 못 뺀다는 주민이 달랑 세 명이었다. 권력 막강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은 갓난아기 때 엄마가 끌어안고 대신 총을 맞는 바람에 살아났고, 또 한 사람은 거의 죽다 서독에 공수돼 간신히 살았다는 소리에 이용준은 눈물이 핑 돌더라고 했다.● “왜곡하느니 기록 않겠다”고 주민 결정“그렇다면 설득할 필요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고통주기를 원치 않는다. 위령비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잊어버리겠다.” 이용준은 마을 주민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건배를 제의했다. 그때부터는 다함께 한국식으로 정신을 잃도록 마신 모양이다. “함께 마셔주기만 해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과거사는 소리 없이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고 그는 책에 적었다.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2001년 5월 초등학교 기공식 무렵 인민위원회에서 대사관에 통보를 해왔다. 위령비의 문안을 온건하게 수정하는 대신 아예 몽땅 삭제하기로 주민들이 최종합의를 했다는 거다. “역사를 왜곡해 기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기록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전언에 이용준은 띠용,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지난날 외세와의 섣부른 타협이나 굴복보다는 항상 정면 대결이라는 정도(正道)를 선택해왔듯이, 위령비 문구 문제도 베트남인의 기개에 합치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기공식 행사를 마치고 하이 위원장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이용준을 데려간 위령비 뒷면에는 소름돋는 추모문 대신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꽃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 유독 극단적인 한국 좌파의 역사인식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 이상으로 다면적 진실을 내포한 복합적 중층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 역사교과서만 소개하자면, 제국주의를 종식하고 공산주의 혁명을 완성한 대미구국항전이라는 게 그들 시각이다(김종욱 2017년 논문 ‘한국과 베트남의 베트남전쟁 인식과 교육). 그럼에도 경제발전에 뒤쳐진 현실 극복을 위해 ‘과거를 덮고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 베트남 정부 공식 반응이기도 하다. 이에 역행하는 것이 한국의 비정부단체들이라고 김종욱은 논문에서 지적했다. 전쟁 피해자 발굴과 보상 등 민감한 문제를 제기해 양국 정부 입장을 곤란하게 한다는 점에서다. “전쟁은 특수한 상황이므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베트남 측 소리는 듣지도 않는다. “전쟁 중 민간인 피해에 대해 한국이 유독 다른 나라들보다 경직되고 과도한 인식과 해석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김종욱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했다.하미마을 사건에 대해 베트남 거주민 5명은 시민단체 도움으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주 위원회는 표결 결과 ‘각하’를 결정했다. 베트남 전쟁 시기 벌어진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법 제2조 4항에서 규정하는 진실 규명의 범위인 ‘권위주의 통치 시기’의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 역사를 대하는 우리에게 예의는 있는가경직된 좌파의 문제의식과 행동은 일제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들이 세상 약자들의 문제를 대신 짊어진(척 하는) 데는 존경을 표하는 바다. 그런 양심적 인사들이 왜 북한인권에는 무심한지, 북한과 중국에 대해선 어찌 그리 관대한지, 미국과 일본은 어째서 불구대천의 원수인듯 잡아먹지 못해 난리인지 궁금할 뿐이다. 베트남이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는다’는 역사인식을 지닌 것은 과거사를 잊는 것도, 왜곡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 아닌 국가차원의 아픔이 없을 리 없다. 그럼에도 국가간 협력이 불가피한 세계에서 더 큰 평화와 미래를 지향하는 자세, 역사의 다면적 진실을 대하는 그들의 예의에는 고개가 숙여진다. 공산주의 베트남이 이럴진대 과거에 징글징글하게 매달려 나라와 민족의 발목을 잡는 대한의 좌파는 별종이 아닐 수 없다. 살아보지도 않은 과거를 무자비하게 평가하는 그들의 오만, 밴댕이 속알딱지만한 편협한 정신을 북한이 쏜다는 위성에 태워 날려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5-30 14:00 
[김순덕 칼럼]6·25 종군 여기자의 외침 “한국은 자명종이다”이달 초 발표된 2023년 퓰리처상은 단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보도에 모아졌다.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을 고발한 AP 사진팀이 대상 격인 공공서비스 부문상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는 부차에서 자행된 러시아 공수부대의 ‘전쟁 범죄’를 파헤쳐 국제보도상을 받았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퓰리처상의 관심은 한반도였다. 국제보도상 수상자 여섯 명 모두 한국전쟁을 보도한 기자들이다. 그중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도쿄 특파원 마거릿 히긴스는 6·25 발발 이틀 후 서울로 날아와 한강철교 폭파부터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철수 등 숱한 특종 기사를 쓴 당시 31세의 유일한 종군 여기자이자 첫 여성 퓰리처상 수상자였다. 그가 1951년 초 출판한 한국전쟁 르포 ‘War in Korea’가 2009년에 이어 올해 다시 번역돼 나왔다. 1951년 ‘한국은 세계의 잠을 깨웠다’에서, 2009년 ‘자유를 위한 희생’으로, 최근엔 ‘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으로 제목이 바뀌어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히긴스가 1951년부터 1954년까지 7차례나 한국을 오가며 만났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등의 인터뷰가 덧붙여지면서 제목이 달라진 것이다. 6·25전쟁에 대해선 한국인이라면 대체로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히긴스의 책을 보면 불과 70여 년 전 우리 역사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는 데 새삼 가슴을 치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4월 방미 때 미 의회 연설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자식과 남편, 그리고 형제를 태평양 너머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보내준 미국의 어머니들과… 미국 정부와 국민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나 미국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히긴스는 “미국은 이 전투를 사전 준비 없이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허겁지겁 땅을 파서 만든 무덤들은 적을 과소평가한 대가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증언해주고 있다”고 썼다. 일본에서 점령군으로 편히 지내다 한국에 파견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대원 다수가 총기 조립조차 할 줄 모르고 애꿎게 죽어갔다. 희망 없는 싸움에 빠져들었다고 정부를 저주하며 무기를 버리는 것도 봤다고 했다. 히긴스는 ‘반역자’ 소리까지 들으면서 이런 현장을 기사로 써 보냈다. 그래야 병력과 무기가 신속히 지원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달라진 것은 군기가 살아나면서부터였다. 7월 29일 미8군 월턴 워커 사령관이 낙동강 전선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지키라”는 사수 명령을 내리면서 전선은 지켜졌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히긴스가 알려주는 두 번째 교훈은 공산주의자와의 타협은 무용지물이고 국익은 냉정하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히긴스와의 인터뷰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타협이란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자 속임수라는 것을 미국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 건 지금도 유효하다. 북한과의 핵 폐기 협상 30년이 결국 사기로 끝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좌파 정권들이 모르고 당했는지, 알고도 속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중국이 잘살게 되면 민주화할 것이라고 미국은 믿고 싶었겠지만 틀렸다. ‘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이라는 책 제목이 말해주듯, 트루먼은 6·25 때 적을 완전 소탕하는 것을 금했고, 그리하여 중국에 패배를 안길 기회와 한국 주도의 통일을 놓치게 했다. 그렇다면 북핵 위협에 노출된 현재, 우리는 일본 같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못 하고 마냥 미국만 바라봐도 괜찮은가. 히긴스가 남긴 세 번째 교훈은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세계인을 잠에서 깨우는 국제적인 자명종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6·25전쟁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우리나라는 핵을 지닌 북한과 머리를 맞대고 자유세계와 전체주의세계를 각각 대표하는 체제로서 자유시민을 일깨우는 자명종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여 년 전에는 소련이 공산주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지만 현재는 중국 공산당이 세계 지배를 노리고 있다. 아직도 이승만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믿는 시대착오적 세력이 존재하는 우리나라는 좋든 싫든 참 독특한 K-모델이다. 군기가 살아나자 6·25 때 미군은 일어났다. 시민정신이든 용기든 애국심이든 북이 도발할 경우 무기를 들고 나설 결기든, 우리 국민의 정신이 살아나야 자명종도 울릴 수 있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2023-05-25 00:00 
[김순덕의 도발]그래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 해야 하는 이유“취임하고 매일 보다 안 보니까 좀 섭섭하죠?”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한테 농담을 다 했다. 2일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 마당에서 대통령실 참모진과 기자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 깜짝 등장해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언급하며 “그런데 나는 살이 찌더라고” 했다.대통령이 한때 애착했던 도어스테핑은 ‘날리면 파문’ 끝에 작년 11월 허무하게 폐지됐다. 인터뷰도 해외 언론하고만 하기에 난 윤 대통령이 국내 언론은 보지도 않는 줄 알았다(신년 인터뷰는 따로 언급하겠음). 그런데 “지금도 습관이 돼서 꼭두새벽 눈을 떠 언론 기사 스크린을 한다”고 말했단다.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여러분과 그냥 이렇게 맥주나 한잔하면서 얘기하는 기자 간담회면 모르겠는데, 무슨 성과 가지고 자료를 쫙 주고서 잘난 척하는 그런 행사는 국민들 앞에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맞는 말씀이다. 기자들이 맥주 못 마셔 걸신들린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바쁜 독자를 위해 이어질 내용을 세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①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다 하는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②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했다.③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대통령 기자회견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유신독재 때도 거른 적 없다윤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꼭 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취임 후 첫 신년 기자회견도 안 했기 때문이다. 신년 기자회견은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시작한 이래 역대 대통령들이 한 해 국정 목표를 밝히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기자들 질문을 받는 연례 의식(儀式)으로 자리를 굳힌 상태다. 박 대통령이 1967년 5월 6대 대선에서 재선된 뒤 이듬해 첫 신년 기자회견을 시작했듯, 암만 언론에 인색했던 대통령들도 취임 후 첫 신년 회견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그걸 윤 대통령은 안 한 것이다. 부처별 업무보고 받기에도 일정이 빠듯하다는 가당찮은 이유다. 대통령실에서 “신년 회견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힌 다음 날(2022년 12월 21일) 윤 대통령이 조간신문 사설 제목이라도 훑어봤는지 궁금하다.· 부처 업무보고가 신년 기자회견을 대신할 순 없다(동아)· 국민과 대화도, 신년회견도 모두 소통에 필요(조선)· 신년회견 보류…대통령-국민 소통은 많을수록 좋아(중앙)· 윤 대통령, 지지율 올랐다고 소통 닫아서야(한국)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를 보고 놀란 건, 박정희 대통령 때 시작된 신년 기자회견이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절에도 한해도 안 걸렀다는 사실이다. 부처 업무보고처럼 형식적으로 열렸던 것도 아니다. 유신 선포 이듬해인 1973년엔 감히 “초당적 거국내각을 구성할 의향이 있느냐”고 질문해 “정당이나 정파를 가릴 것 없이 성실하고 유능한 인사를 과감하게 기용할 생각”이라는 답변을 끌어내기도 했다. ● 내년 초까지 기다릴 순 없다안다. 윤 대통령은 1월 2일 자 달랑 모 조간신문과 신년 인터뷰해 다른 모든 언론에 물을 먹였다. 과거 일부 대통령이 창간기념일 특별회견 같은 걸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이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능가하는 신종 갈라치기 전법이었다. 그 조간과 나머지 언론의 갈라치기 수준이 아니다. 그 독자들과 나머지 국민과의 갈라치기여서 더 위험하다. 굳이 ‘뉴스프리존’ 공희준을 인용하자면 “약육강식의 살벌한 사회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아래 만들어갈 작정임을 윤 대통령은 OO일보와의 협업을 통해 공공연히 선포한 셈”이다. 그래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은 꼭 해야 한다는 거다. 5월 10일 취임 첫 돌을 넘기면 내년 신년 기자회견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건 출입기자들과 맥주 한잔 하거나 김치찌개를 끊여 먹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찍었던 국민, 그럼에도 갈라치기로 따돌렸던 국민과 화해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 YS “‘문민독재’란 말 이해할 수 없다” 서울 김영삼도서관에서 문민정부 출범 30주년 기념식이 열린 2월 24일 윤 대통령은 영상축사를 통해 “역사의 갈림길에서 늘 변화와 개혁의 길을 걸었던 김영삼(YS) 대통령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 뜻을 이을 때가 지금이다. YS는 1994년 취임 1주년 기자회견 했다. 신년회견에서 “올해 국정목표를 ‘국가경쟁력 강화’에 두겠다”고 밝혔는데 두 달도 안 돼 또 했다. 취임 첫돌은 그만큼 중요해서다. YS는 94년 2월 25일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핵투명성이 보장되기 전이라도 김일성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100일 회견에서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던 초강경 태세를 뒤집는 뉴스였다(그해 7월 김일성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진짜 남북정상회담할 뻔했다). 취임 1년 당시 대통령 지지도가 60%대나 됐지만 기자들은 사정없었다. “개혁 효과를 실감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에 “문민독재니, 1인 통치니 하는데 이상하다”는 답변은 윤 대통령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86운동권과 달리 진짜 민주화투사였던 YS는 비밀이 새어나갈까 우려해 혼자 결단을 내리는 버릇이 몸에 배어있었다. 내각은 동료 아닌 병졸처럼 여기곤 했다. 취임 첫돌 무렵의 언론 질문이 국민의 소리다. 그때 대통령이 잘 받아들였다면 97년 정권 말 외환위기 같은 건 안 겪었을지 모른다.● DJ “의원 빼내기, 잘못 많다” 인정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DJ) 대통령도 99년 2월 25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했다. 98년 말 DJ는 “연두기자회견 대신 직접 국회에 나가 한 해의 국정방향과 정책에 대해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방법으로 생각된다”고 했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자 연초 청문회에 설 연휴가 겹쳤으니 2월 21일 ‘국민과의 TV 대화’, 25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연달아 열겠다고 했다. 국민과의 TV 대화 다음 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대화인가, 홍보인가’였다. 경제위기 극복 성과를 일방적으로 알리는 TV쇼였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실도 작년 말 국민 패널 100명이 등장한 ‘국정과제 점검회의’가 기자회견보다 낫다고 믿고 싶겠지만 기자라는 ‘밉상 직업’이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윤 대통령은 연금 개혁에 대해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 ‘연금 개혁의 완성판’이 나오도록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그때까지 시동이나 걸면서 어떻게 연금개혁 하는 정부랄 수 있느냐”고, 그때 그 자리에 기자가 있다면 당장 질문했을 거다.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DJ는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서 존경하고 협조하겠다”며 사과했다. 여소야대로 출범한 탓에 무려 36명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을 탈당시켜 34명을 새정치국민회의(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시킨 일을 언급한 거다. DJ가 ‘야당 의원 빼내기’를 않겠다던 기존 입장에서 나아가 “우리 잘못도 많다”고 인정한 건 기자들이 묻고 또 캐묻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장면이었다. ● 언론의 질문할 권리가 민주주의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022년 1월 22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제하고 미국 경제를 재건하겠다는 선거 공약이 지나친 약속이 아니었느냐는 날카로운 질문도 쏟아졌다.미국이나 한국이나 기자들 좋다는 대통령은 없는 모양이다(죄송합니다…). 아이젠하워는 1953년 “나는 매주 십자가에 올라가 못 박힌다”며 무례한 기자들에 대해 치를 떨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들이 기자회견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 기자회견은 민주주의의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마사 조인트 쿠마 ‘프레지던트 메시지’). 국민의 알권리를 대신해 언론이 공직자에게 질문하는 권리는 민주주의와 연결돼 있고, 선출된 공직자들은 기자들이 묻는 까다로운 질문에 답하면서 정책을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1943년부터 백악관을 출입했던 1번 질문 기자 헬렌 토머스(1920~2013)는 “기자회견은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이 사회의 유일한 공개토론의 장이다. 만일 기자회견이 없다면 대통령은 칙령을 내려 통치하거나 왕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퇴임 1년 지나 자꾸 나오면 안 반갑다도어스테핑도, 신년회견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않는 윤 대통령에게 “초심을 기억해 달라”고 외치고 싶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정직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정직한 대통령이란 국민과 소통, 의회 지도자들과 소통, 언론과 소통, 내각·참모들과 소통을 잘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물론 소용없는 소리일지 모른다. 또 물론 윤 대통령은 2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 때 많은 얘기를 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궁금한 게 아직 많다. “변화가 느린 부분, 변화의 방향을 조금 더 수정해야 되는 부분”을 말했는데 무엇이 느리고 또 무엇이 수정할 부분인지도 알고 싶다. 지금이니까 대통령 생각이 알고 싶지, 대통령직 떠나면 알고 싶지도 않다. 현직 떠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국민에게 잊힐까 갖은 애를 쓰며 자꾸 등장하는(그러나 전혀 반갑지 않은) 전임 대통령을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대통령만이 누릴 수 있는 찬란한 특권임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5-05 14:00 
[김순덕 칼럼]송영길과 86좀비그룹, 이젠 제발 안녕이다윤석열 대통령이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리는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24일,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의혹’의 핵심 인물 송영길 전 대표가 귀국한 것은 상징적이다. 1984년 민정당사 점거사건 때 “광주 학살범 처단”을 외친 연세대 첫 직선 학생회장이 송영길이었다. 그는 1980년대 대학을 다녔고 60년대 태어난 운동권 86그룹의 맏형이고 그들을 관통하는 코드가 반미(反美) 친북(親北)이다. 도덕성을 코에 걸었던 이른바 진보의 민낯이 윤 대통령의 방미 출국일 폭로된 형국이다. 검찰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당 대표 후보 관계자들이 그를 당선시키려 최소 9400만 원의 돈봉투를 만들어 돌린 것으로 본다. 그와 가까운, 그가 당선된 후 없는 자리를 만들어 임명한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통화 녹음파일에선 “(송)영길이 형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많이 처리를 했더라” 같은 충격적 내용도 나왔다. 그런데도 송영길은 돈봉투에 대해 “모르는 사안이 많다”니 무책임했거나 무능했다는 얘기다. 정계 은퇴 요구에 대해서도 사실상 거부했다. 구질구질하다. 원로 정치인 유인태가 다 털어놓고 정계 은퇴를 하라고 권하는데도 82학번 김민석은 “(송영길은) 물욕이 적은 사람”이라며 싸고돈다. 86그룹은 이렇게 끈끈하다. 인천공항에 몰려든 개딸들이 “송영길은 청렴하다”고 외치는 걸 보니 ‘조국 시즌2’가 온 것 같다. 제 코가 석 자 넘어 삼천 자는 되는 이재명 대표 역시 송영길 처리를 묻는 기자들에게 “(국민의힘) 김현아는요?” 하고 물타기를 시도하고 나섰다. 그래야 자신의 퇴진 요구도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작년 초 송영길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86그룹 용퇴설’과 함께 민주당 쇄신설까지 나왔다. 그래 놓고 이재명이 대선에서 패하자 송영길은 “지방선거 불출마라곤 안 했다”며 서울시장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지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그도 정치인으로서 정도전 같은, 이성계 같은 큰 뜻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86그룹은 불사조가 아니라 징그러운 좀비다. 송영길이 그들을 이끌고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으로 마지막 책무를 마쳤으면 한다. 이유는 첫째, 문재인 정권 5년간 86그룹이 원하는 것은 다 했으나 국민은 되레 불행해졌기 때문이다. 임대차 3법이 낳은 지금의 ‘전세 사기 대란’이 단적인 예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8월 민주당의 임대차 3법 강행 처리 때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연설을 했다. 좌파이념에 치우친 법으로 전세시장을 교란시키면 아파트 전세 매물이 사라지고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분명히 경고했다. 그 결과가 빌라 갭투자이고 대규모 전세사기다. 민주당 대표 시절 “문 정부는 안보와 성장을 잘한 정부”라고 상찬했던 송영길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 민노총 같은 상위 10% 노동자와 유착해 민주화의 과실이나 따먹어 온 집단이 86그룹 정치인들이다. 이들이 내년 총선에서 또 금배지 달겠다고 고개를 들이민다면 다수 국민에게는 재앙이다. 둘째, 송영길을 비롯한 86그룹이 추구하는 가치는 반(反)인권적, 반(反)자유주의적 북한에 가깝다. 그가 대표 발의한 반(反)인권적 대북전단금지법이 대표적이다. 북한 김여정이 “광대놀음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명을 내리자 2020년 6월 송영길은 서둘러 이 법을 대표 발의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 기본권, 표현의 자유 같은 외부 정보가 북한엔 못 들어가게 막는 법이고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를 갖는다”는 우리 헌법에도 어긋난다. 북핵을 ‘협상용’이라고 믿는 송영길과 86그룹에게 더 이상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맡길 순 없다.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를 중히 여기지 않는 86그룹은 젊은 날 민주화 투쟁을 한 게 아니었다.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외치다가 민주화 세대로 ‘포장’돼 정치인으로 발탁돼선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 속에 특권을 누린 거다. 무엇보다 송영길이나 조국, 이재명을 비롯한 86그룹은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무오류성으로 상식적 민심을 조롱해왔기에 더는 정치할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 법치를 존중하지 않는 소위 깨시민의 도덕성 공정성 진리독점권, 심지어 그 딸과 개딸들의 깡총거림을 더는 봐줄 수 없다. 우리나라를 조국(祖國)으로 보지 않기 때문인지, 나라의 정통성은 북조선에 있다고 믿기 때문인지, 서로 봐주고 덮어주는 수구적 향촌공동체에 살고 있어서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 한시가 바쁜 21세기 자유와 인권의 시대,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으로 미래 세대 앞길을 막는 좀비 86그룹을 내년 총선에서 또 공천한다면 민주당도 안녕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2023-04-27 00:00 
[김순덕의 도발]“백범이 김일성에게 당했다”는 태영호가 맞다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또 구설수에 휘말렸다. 이번엔 백범 김구에 관해서다. 야당은 물론이고 사방에서 “백범을 폄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같은 당 의원들도 국민 상식과 괴리된 망언이라고 쌍지팡이를 짚고 나섰다.그러나 구소련 붕괴 뒤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그 상식과 다르다면 어쩔 것인가. 태영호는 좌파세력이 은밀하게, 음흉하게 진행해온 ‘역사전쟁’을 지적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대해선 함부로 말하면서 백범엔 말도 못하는 현실은 온당한가. 그런데도 웰빙당 국힘은 그저 공격당하는 게 무서워 지킬 걸 못 지키고 있다면?● 바쁜 독자를 위해 요약하면…노파심에 백범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고 시작하겠다. 글이 길면 냅다 맨 끝으로 내려갈 독자를 위해 3개항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① 태영호는 KBS ‘역사저널 그날’을 언급하며 “김일성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막고 공산정권을 세우기 위해 김구 선생을 이용한 것”이라고 월간조선 5월호 인터뷰에서 말했다.② 1월 22일 방영된 ‘한국사 최대 라이벌 김구 vs 이승만’에서 방송 진행자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백범과 달리 ‘구차한 안일을 위해 단독정부를 세운 인물’처럼 표현했다.③ 1990년대 발굴된 소련 정보장교 레베데프 비망록 등에 따르면, 백범이 참석한 1948년 4월 평양 남북연석회의는 소련의 배후 조정 아래 마련된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이었다.● “KBS 역사물 보고 놀랐다”태영호는 뜬금없이 백범을 말한 게 아니다. 월간지 인터뷰에서 질문자가 “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된다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더라”고 운을 떼자 그는 답했다.“지난 구정 때 KBS의 ‘역사저널 그날’이란 프로그램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김구 선생은 마지막까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암살됐다는 식으로 역사를 다루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북한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걸 봤을 때는 김구 선생이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겠지만, 북한의 대남 전략 전술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는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겁니다. 김일성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막고, 공산정권을 세우기 위해 김구 선생을 이용한 겁니다. 그런 북한의 전략까지 알려줘야 정확한 비교가 되지 않습니까.” (맥락을 봐주세요. 어디가 잘못된 대목인지)● 좌우합작은 공산당 통일전선전술그 프로그램을 TV클립으로 보았다. 우리 역사를, 역사적 인물을 이렇게 다뤄도 되나 싶을 만큼 얄팍하다는 느낌이었다.“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는 백범의 1948년 2월 10일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을 소개하면서 진행자들은 굳이 “투(To) 이승만”을 덧붙이며 웃었다. 젊은 그들이 이승만을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운 인물’처럼 취급하며 찧고 까부는 모습이 나는 불편했다.1930~4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좌경화 바람이 불 때, 누구보다 앞서 공산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본 사람이 이승만이었다. 나치즘 파시즘처럼 전체주의 속성을 지닌 공산당은 다른 정당과는 공존이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좌우합작, 즉 통일전선전술이란 한반도를 공산화로 이끌 함정이라고 이승만은 판단했다.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중국 국공합작이 보여주듯, 통일전선전술은 세계 공산혁명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술로 꼽힌다. 마오쩌둥은 중일전쟁 때 팔로군 간부를 모아놓고 “10%만 대일작전에 쓰고 70%는 공산당 발전에, 20%는 국민당과의 타협에 쓰라”며 절대 애국주의에 현혹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이런 기만술을 어떤 당이 당해낼 수 있겠나.● “김구가 김일성 흠모해 찾아왔다” 선전‘역사저널 그날’엔 백범이 1948년 4월 22일 평양서 열린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연설 장면도 나온다. “조국분열의 위기를 만구(挽救)하기 위하여 남북의 열렬한 애국자들이 일당에 회집하여 민주 자주의 통일독립을 전취할 대계를….”훌륭한 연설이지만 백범은 빈손 귀경할 수밖에 없었다. 구소련 붕괴 뒤 발굴된 소련 정보장교 레베데프(평양 25군 군사회의 의원) 비망록에 따르면, 이 회의는 소련이 배후 조정한 것이었다. 백범이 회의를 방해하면 ‘미제 간첩’으로 몰아세운다는 계획도 서 있었다. 스탈린은 1948년 4월 12일 ‘김일성 동지를 위한 조언’ 지령문에서 남조선 단독선거를 보이콧하게 만들라고 적시했다.당시 김구, 김규식 측근들로 성시백(1950년 6월 27일 간첩죄로 처형)이 포섭한 김일성의 첩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북한은 김일성 집권 내내 김구가 김일성을 흠모해 북한을 찾아왔다고 김구의 방북을 이용했다(정주진 2018년 논문 ‘소련 군정기 북한정보 체계 형성 과정’). 태영호가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일 터다. 그래도 그가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김일성에 속았다고 폄훼인가?물론 국가보훈처는 백범에 대해 “임시정부 시절 좌우합작을 일구어냈고, 환국한 뒤에는 통일국가 수립운동에 몸을 던졌다”고 소개한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태영호가 말한 대목을 다시 보시라. 그가 백범의 공로를 부정했는가?김일성의 평양 연석회의 초청장을 들고 김구에게 온 성시백은 김일성이 심어놓은 북로당 공작원이었다. 물론 좌파는 조작된 간첩이라고 주장하지만(지금 세상에 없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1997년 5월 26일자 북한 노동신문은 ‘민족의 령수(김일성)을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 혁명렬사’라는 제목으로 희대의 간첩 성시백을 찬양했다.백범은 통일을 위해 몸을 던지면서도 공산주의자의 속성을 모르고, 간첩인지도 모르고, 김일성의 통일전선전술에 당했을 수 있다. 공산주의자에게 속았다고 하면 폄훼인가? 백범이 속을 리 없다는 건가? 대체 왜 태영호가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태어나선 안 될 나라’ 좌파의 역사왜곡‘그들’이 교묘하게 전개하는 역사전쟁의 틀이 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통일을 바라는 민족의 염원을 외면하고 미국을 끌어들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웠다는 거다. 이것이 1948년 이래 오늘까지 집요하게 되풀이되는 김일성 패거리의 건국사 왜곡 담론이라고 이영일 헌정회 통일특위원장은 최근 저서 ‘건국사 재인식’에서 지적했다.이런 논리라면 이승만은 ‘분단의 원흉’이다. 김구는 단독정부 반대하고 협상통일 부르짖다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에게 피살된 위대한 민족지도자다. 소련은 이미 1946년 2월 위성정권으로 북한에 단독정부(북조선인민위원회)를 세웠는데 이런 북의 반민족적 책동은 그냥 가려진다.즉 우리나라는 태어나선 안 될 나라, 북조선은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으로 해방된 정통성 있는 나라라는 지긋지긋한 좌파 역사관이 그대로 살아나는 거다. 이렇게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해선 함부로 말해도 되지만 백범은 거의 성역이다. 태영호는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이 나라에 왔다. 그런 사람에게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할 자유를 뺏는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 국힘은 나라 정통성 지킬 수 있나이제 국힘에 묻고 싶다. 시시비비도 안 따지고, 사안의 경중(輕重)도 모르면서, 우리 근현대사를 잘 아는 것 같지도 않고, 정통성도, 민생도, 국민의 생명과 안보도 지키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을 지키겠다고 당신들은 정권을 잡은 것인가(아…미안. ‘나의 기득권’이라고 말하지 마시길. 그리고 암만 못해도 이재명의 민주당보단 낫다고도 하지 마시길).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4-20 10:00 
[김순덕 칼럼]국민의힘, 총선 포기하고 대선 승리 바라나따지고 보면 기이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정권 견제론이 나온단 말인가. 내년 4·10총선 때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36%,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라는 갤럽 지난주 여론조사를 보고 나는 혼자 갸우뚱했다. 총선 1년 전 여론조사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4년 전에도 똑같은 설문조사가 있었다. 결과는 무섭게 정확했다. 2019년 4월 11일 ‘정부 지원론’이 47%, ‘정부 견제론’이 37%였는데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비례정당까지 합쳐 180석 압승이었다. 국민의힘 중진들은 12일 김기현 대표에게 지난달 당 대표 선출 이후 당 지지율이 떨어졌다며 말조심, 국민정서 조심을 주문했다. 핵심을 벗어난 조언이다. 정권 견제론은 단순히 설화 때문에 나오지 않았다. 1월 정진석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 윤 대통령의 성과로 총선을 치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다수 국민이 정권 견제를 원한다는 것은 윤 대통령의 얼굴과 성과에 불만이 많다는 의미인 거다. 물론 윤 대통령은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지지율이 0%, 1%라도 해야 될 일을 하겠다”며 탈원전, 남북관계 등 문재인 정권 5년간 잘못된 국정운영을 바로잡겠다고 당당하게 나설 땐 박수 치는 지지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설명 없고, 공감 없고, 사과 없고, 책임지는 사람 없는 4무(無) 스타일이다. 지지율이 올라갈 일도 되레 깎아먹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일본 요미우리신문 3월 15일자 인터뷰에서 “대통령 되기 전부터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방일 전 이렇게 친절하게 우리 국민이나 언론에 설명한 적이 있나 싶어 눈물이 났을 정도다(방일 후 국무회의 모두발언으로 읽은 23분간의 담화문은 설명 아닌 설교였다). 이태원 참사 때도 윤 대통령은 “책임이라는 것은 (책임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싸고돌았다. 대통령 취임 전엔 대통령 부인의 활동도 없을 것이라더니 제2부속실도, 특별감찰관도 안 두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실은 대통령보다 오만해 보인다. 당 대표 경선 중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께서 나경원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려 결국 주저앉혔다. 정무수석은 안철수 당 대표 후보를 향해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조폭처럼 협박했다. 유신독재 시절 서슬 퍼렇던 중앙정보부장들도 이토록 공개적으로 당내 경선에 개입하는 행태는 보인 바 없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월 초 에너지 바우처 7000원 추가 인상을 발표했음에도 경제수석은 며칠 뒤 갑절로 올린다고 발표하는 등 ‘청와대 정부’ 뺨치게 내각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는 적폐 재생산을 자행하고 있다.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태에서 보듯 검찰 출신으로 그득한 대통령실에선 인사 검증을 해도 검찰 출신의 갑질쯤은 별일 아닌 걸로 뵈는 모양이다. 문제는 이런 대통령실에서, 그리고 윤 대통령과 같이 일했던 검찰 출신들을 중심으로 내년 총선 출마설이 나돈다는 사실이다. 육사 출신도, 무능한 운동권 출신도 정권을 운영했는데 똑똑하고 유능하며 윤 대통령 뜻을 빠릿빠릿하게 받들 특수통 검사 출신들은 훨씬 잘하고도 남을 거라는 소리가 거짓말같이 나돌고 있다. 이러다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나는)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올 초 한 신문과의 인터뷰가 현실이 될 것만 같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지지율 0%가 돼도 할 일을 하겠다”며 진짜 검찰 공천을 밀어붙일지 모른다. 총선에 이기고 2027년 대선에서 지느니, 차라리 총선 포기하고 정권 재창출을 하는 게 성공한 정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0년 총선 승리하고 2022년 대선에서 패한 문재인 정권보다는 2000년 총선에선 졌지만 2002년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김대중 정권 모델이 백번 낫다는 계산을 할 수도 있다. 김기현 대표가 총선 공천을 하며 윤 대통령과 맞설 리 없다. 그러나 ‘검찰 공화국’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당’이 된 국민의힘이 총선을 포기한들, 대선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이 부인을 대하듯 국민에게 좀 더 친절하게 다가오길, 그리하여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좋은 점수를 받길 바랄 뿐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2023-04-13 00:00 
[김순덕의 도발]북 비핵화? 노무현-문재인은 국민을 속였다꼭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돼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2012년 대선 과정 중 논란이 됐던 ‘노무현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문제가 가라앉지 않자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2013년 6월 24일 회의록 전문을 전격 공개했던 거다.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정상회담 회담록은 30년 지정기록물로 분류돼 있다. 당시 초미의 국민적 관심은 고인이 생전에 대통령으로서 김정일에게 과연 NLL 포기 발언을 했는지 여부였다. 회담에 배석했던 이들은 그런 적 없다고 일제히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어찌 아는가. 대화록은 30년 후에야 공개되는데? ● 본질은 대화록 실종 아닌 대통령 발언발단은 2012년 10월 통일부 국정감사였다.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김정일과 정상회담에서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남북이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말했다고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주장했다. 방북 후 “남북정상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던 노무현이었다. 지금은 북한이 NLL을 우습게 침범하지만 그때만 해도 NLL은 성역이었다. 그런데 정문헌이 여기다 “비밀대화록이 존재한다”고 꼬리를 붙여 폭로하면서 사안의 본질이 흐트러졌다. 그 뒤 8개월을 대화록이 있느냐 없느냐, 사초(史草) 증발 사건이냐 뭐냐… 엉뚱한 싸움이 돼버린 거다. 마침내 국정원장이 불타는 애국심으로 정상회담 회의록을 확 까고 말았다. 노무현이 김정일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30년 후가 아닌 당대의 국민이 똑똑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10년 후인 지금, 신문지면으로 다시 보니 섬뜩하다. 노무현은 NLL 포기만 말한 게 아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한다. NLL은 바꿔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 보기(2013년 6월 26일자)● “서해평화지대, 위원장 승인해주신 거죠?” 당시 10·4 선언 초안까지 만들었던 대통령비서실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그리고 2017년 대통령이 돼서는 2007년에 못했던 일들을 현실로 밀어붙였다. 우리 군의 무장해제나 다름없는 9·19 남북군사합의, 서해평화수역… 2012년 대선 후보 때는 “NLL을 확실히 수호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던 것과 딴판이다. 유훈 통치는 북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던 것이다. 먼저 NLL을 보자. 10년 전 노무현 재단에선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설이 날조라고 했다. 회의록을 보니 노무현은 그보다 더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하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항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거든요. 여기는 자유통항구역이고, 여기는 공동어로구역이고, 그럼 거기에는 군대를 못 들어가게 하고. (중략) 헌법문제라고 자꾸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중략) 위원장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 거죠?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들어가자 심지어 김정일은 말을 더듬기까지(혹은 천천히) 했다. “그건 아니…정전협정 문제가 우선…그게 풀어진 조건에서…평화협정을…중간에 시범적으로 하고…그렇게 되어야지 지금은 아마…그 전 단계로서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노무현의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다. 김정일이 보기에도 대선이 불과 두 달 앞이고 정권교체가 될 게 뻔한 남한 대통령이 너무 앞서가는 게 기막혔던 모양이다.● “핵무기 신고 안 한다”하자 노무현 “잘 하셨다” NLL 무력화보다 심각한 게 있다. 회담이 열린 날은 6자회담 성과로 나온 9·19 공동성명(북한은 모든 핵무기 및 핵계획 포기하고 미·일은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약속한다는 내용)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가 발표된 날이었다. 정상회담 전에 어떻게든 2단계 조치를 타결해 10·3 합의문을 내놓으려 한국은 북한과 함께 미국을 윽박질렀을 정도였다. 김정일은 막 합의를 마치고 온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내용을 설명하도록 했다. =김계관: 우리가 핵계획, 핵물질, 핵시설 다 신고합니다. 그러나 핵 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한다. 그 다음 핵계획과 관련해서는 농축우라늄 문제가 해명되는 차제로 한다.(중략) =대통령: 수고하셨습니다. 현명하게 하셨고, 잘 하셨구요. 김계관은 이미 만든 핵무기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폐기’(CVID)에 응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더 중요한 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문제다. 북한이 우라늄탄을 제조하기 위해 비밀리에 HEU프로그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돼 2002년 2차 한반도 핵 위기가 시작된 거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 앞에선 핵무기 보유와 HEU프로그램 존재를 시인했던 북한은 그러나 곧바로 말을 뒤집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때도 한사코 HEU 존재 자체를 부인했고 지금도 HEU 시설의 존재를 시인하지 않는다.● 우라늄프로그램, 노무현 듣고도 “잘 알았다” 북한 핵무기 제조 방식이 기존 플루토늄 방식에서 우라늄 방식으로 전환된다는 건 심대한 의미가 있다. 수공업으로 만들던 것을 자동화 시스템으로 바꾼 것 같은 획기적 변화다. 영변 핵시설은 플루토늄프로그램이고 2000년대 초부터 비밀리에 개시한 핵무기 제조방식은 우라늄 프로그램이다. 영변 핵시설은 이제 별 의미 없는 고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AEA가 감시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진 거다(이용준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이렇게 중요한 HEU에 대해 2007년 김계관은 “해명되는 차제로 한다”(6자회담에서 이견이 해소되면 한다)며 신고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모든 (개)소리를 듣고 난 노무현의 답변이 “예,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였다.이토록 죽을 힘을 다해 지켜낸 HEU프로그램으로 북한은 김정은 대에 이르러 핵무력을 완성한 것이다. 2018년 신년사에서 “2017년을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해”라고 외친 것이다. 그 이면엔 북이 죽자고 숨겨온, 노무현과 문재인이 현장에서 듣고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던 HEU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이다.● 고철 영변 핵시설 거래에 김-문 손 잡았다김정은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세기의 회담에도 성공했다. ‘미-북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미군유해 송환’(순서가 중요하다)에 합의해 원하는 걸 다 얻어내며 트럼프는 바보라고 생각했을 터다. 2019년 2월 발걸음도 가볍게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김정은은 영변 원자로를 폐기할 테니 대북 제재 4건을 해제해달라고 요구했다. 영변 원자로가 고철에 불과하다는 걸 트럼프가 모를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트럼프는 알고 있었다. 비밀 농축우라늄핵시설이 따로 있다는 것도. 그래서 단호히 거절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문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이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해맑게 주장했다.누구 죽으라고 문재인은 김정은의 살 길과 핵무기 양산의 길을 열어주려 했는지 소리쳐 묻고 싶다. 고철 덩어리 영변 핵시설을 모두 없앤대도 HEU프로그램이 잔존하는 한, 아무 소용 없다. 외려 더욱 은밀하고 효과적인 핵무기 생산의 길을 열어줄 뿐. 그래서 하느님이 보우하사 하노이 회담이 깨지고 트럼프도, 문재인도 정권이 교체된 것이다.● 정말 알고 싶다, 문재인은 대체 왜?2018년 3월 8일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온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고 발표했다. 참내. ‘주한미군이 철수하면’(이것이 포인트다)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소리라는 걸 북핵 문외한인 나도 알겠다. 더구나 공산주의자들에게 기만(欺瞞)이란 너무나 쉽고도 당연한 병법의 기초다. 1994년 제네바합의부터 지금까지 온갖 합의를 다 해놓고는 얻을 것 다 얻고, 판판이 다 깼던 나라가 북한이었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에 성공한 것 자체가 성공적 기만의 사례일 수 있다는 논문도 나와 있다(박휘락 국민대 교수의 2020년 논문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의 전략적 기만 분석’). 2018년에도 한미 양국은 ‘비핵화’를 핵무기 폐기로 오해해 협상을 시작했다. 박 교수는 북한 기만의 핵심적 표적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고 문 전 대통령도 비핵화=북한 핵 폐기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지만, 나는 의문이다. 진정 핵 폐기를 믿었다고? 믿는 척 한 것이 아니고? ● 블랙핑크 공연을 대북 확성기로 전파하라대한민국 안보와 국민 생명을 담보로 삼았던 9.19 군사합의는 북이 이미 파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 초 북한 무인기 대응전력 보고를 받으면서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 침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검토하라”고 국가안보실에 지시했다. 대통령이라고 반드시 우리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다. 대통령 잘못 뽑았던 탓에 이제 우리는 핵 보유국인 북한과, 핵을 포기할 의지가 절대 없는 북한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새롭게 각오를 다져야 할 때가 됐다(앞으로 대통령은 군을 경험한 사람을 뽑았으면 한다. 여성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K팝 걸그룹 블랙핑크 공연을 대북 확성기로 북한에 꽝꽝 전파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4-07 14:00 
[김순덕 칼럼]요즘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어디 있느냐고?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다. 북한이 민노총 간부에게 청와대 등 주요 통치기관들 전기를 끊을 준비를 하라는 지령문을 내려 보냈다는 국가정보원 발표. 화성·평택지역 군사기지, 화력발전소, LNG저장시설 등의 자료를 수집해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내용도 있다고 했다. 정의당을 장악해 국회에 진출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북한 지령까지 보니, 생각난다. 꼭 10년 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 사건이다. 이석기는 2013년 5월 130여 명이 모인 비밀 회합에서 통신·유류·철도 등 국가기간시설을 조직적으로 파괴하자는 발언 등으로 2015년 대법원에서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당국은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알아내진 못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밝혀진 진실이 어디 한둘이던가. 다만 이상한 점은 있다. 이석기는 1999년 북한 지령을 받은 지하정당 민혁당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있었으나 두 차례 특별사면으로 비례대표가 될 수 있었다. 두 번 다 노무현 정권 문재인 민정수석 때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총선 때 ‘종북좌파’는 사악한 말이라며, “연대는 필요하다”며, 통진당과 민주당의 야권연대 필요성을 유독 강조했다. 물론 문 전 대통령이 그보다 더 감싼 건 북한이다. 암만 무도한 김정은이라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인권 문제다. 그래서 북한 주민 앞에선 자상한 아버지로 보이고 싶어 자신과 부인 리설주를 반반씩 닮은 딸 주애에게 240만 원이나 되는 디올 패딩을 입혀 미사일 발사장까지 데리고 다닌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문재인은 유엔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결의안이 올라오자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자”고 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연히 북한은 “남측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고 협박조로 나왔다. 결론은 북한을 위한 ‘기권’이었다. 비서실장으로서 초안을 만들었다는 2007년 10·4 선언문도 지금 보면 기이하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식일 뿐 핵 폐기 같은 단어는 없다. 북핵 용인, 주한미군 철수에 이용되기 딱 맞는 내용임에도 그는 2011년에 낸 책 ‘운명’에다 ‘어디 가서 만세삼창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썼다. 그러니까 전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떠밀려 2017년 사악하지 않은 종북좌파 대통령이 뽑혔던 셈이다. 우리 헌법 66조 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국가안보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민생도 중요하나 국가의 존립은 더 중요하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2012년 대통령감으로 뜰 때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가 아니라 “빨갱이가 어디 있습니까” 했다지만 북한이 존재하는 한, 아니 인류가 있는 한 스파이는 언제나 있다. 재임 중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미국에 고철덩어리나 다름없는 영변 핵시설과 미국의 제재 완화 교환을 끈덕지게 요구했다. 북한에 편파적 중재를 함으로써 한미동맹이 거의 와해될 만큼 상처를 입었다고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을 쓴 이용준 전 북핵 담당대사가 말할 정도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대체 왜 그랬는지. 하느님이 보우하사 북-미 회담이 깨져 한국은 국가의 계속성을 지킬 수 있었다. 정권교체도 했다. 그러나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로 사실상 무장해제가 돼버린 바람에 우리 군은 작년 말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한 바퀴 휘젓고 돌아가도 격추에 실패하는 상황이 됐다. 2020년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돼 내년부터는 국정원이 눈 뜨고도 간첩을 못 잡게 된다. 북한 김정은이 남한 겨냥 전술핵무기에 탑재할 전술핵탄두를 공개한 28일, 동아일보 1면엔 대통령 방미 때 국가안보실 잘못으로 블랙핑크 공연을 날릴 뻔했다는 기사가 났다. 북한이 또 미사일을 날리는 것보다는 낫지만 참 한가하고 한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첫날 용산 대통령실 지하벙커인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찾아 “안보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했다. 최고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보다 초등학교 동창을 국가안보실장으로 앉히고, 민간인을 대통령 전용기에 태워도 문책 한번 못 하는 기강이니 대통령 주변부터 엄중함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2023-03-30 00:00 
[김순덕의 도발] 대통령의 5792자 발언이 설득에 실패한 이유정치는 말(言)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대통령감으로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것도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였다. 국정원 댓글 수사와 관련해 2013년 10월 국감에서 나온 불후의 명언이다.일제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서도 이 정도 발언은 나올 줄 알았다. 윤 대통령이 진정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면 말이다. 아니었다(기억에 남는 발언이라면 ‘미로에 갇힌 대통령’ 정도?) .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읽은 5792자 분량의 원고는 국무위원 교육용이라면 몰라도 국민 설득용으로는 형식과 내용 모두 실망스러웠다. ● 일본신문 인터뷰보단 친절했어야나는 지난번 ‘도발’에서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썼던 사람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국민에게도 좀 더 마음을 썼으면 좋겠다고 썼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한일 정상회담 뒤에도 비판 여론이 꺼지지 않자 대통령이 직접 설명에 나선 건 좋다. 방일 전에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늦더라도 일단 나섰으면 국민 기대치보다 한발은 더 나갔어야 했다. 적어도 일본인을 대상으로 했던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보다는 자국민에게 친절했어야 마땅했다는 얘기다. 정석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다. 대통령은 하지 않았다. ‘날리면’ 파문 이후 도어 스태핑도 없애고 신년 기자회견도 달랑 모 조간신문 한 곳과 했던 윤 대통령이 한국인 기자들한테 껄끄러운 질문 던질 멍석을 깔아줄 리 없다(자국 기자를 피하는 건 자국민의 ‘알 권리’를 외면하는 것과 같다는 걸 모르는지 안타깝다).● 국무회의 의장석에 앉아 대국민 담화?질문은 받기 싫고, 할 말은 많은 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건 담화문밖에 없을 터. 국어사전에 따르면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한 견해나 태도를 밝히기 위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글’이 바로 담화문이다. 21일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 중간에 “국민 여러분,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해야 합니다”라고 국민을 호명한 부분이 담화문임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것이 “(담화문 아닌) 대(對)국민 담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양심에 찔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나라라 해도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적엔, 공적 인물이 국민(을 대신하는 카메라) 앞에 바른 자세로 서서 담화문을 읽는 게 원칙이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세 차례나 담화문을 발표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게 했다. 사진 자료를 뒤져보니, 대통령이 앉은 자리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예는 제5공화국 독재자 전두환 정도다. 4·13 호헌 조치 같은 담화문을 국무회의 아닌 대통령 집무실에 홀로 앉아 거만하게 읽었다. 이번처럼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의장 자리에 앉아 모두발언 형식으로 ‘대국민 담화 수준’을 읽는 경우는 처음 봤다. ● 박정희만큼의 공감 능력도 없다니 국민을 존중하는 태도가 안 보이는 ‘대국민 담화 수준’이란 형식은 사소한 문제라고 쳐주자. 국민을 설득하려는 대통령이라면 무엇보다 국민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라도 해봤어야 한다. 그것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수십 번 읽었다는 ‘설득의 심리학’ 같은 책에 나오는 소리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원고에 국민의 정서를 배려하는 대목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1964년 3월 24일 서울에서 5000여명의 대학생들이 한일수교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자 26일 내놓은 특별담화문에서 “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에서 더욱이나 국가장래를 위한 우국충정의 일념에 불타는 젊은 학생들이 한일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시위에 나선 그 심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했다. 그다음에야 “그러나…”하고 설명을 하는 식이다.윤 대통령 연설에는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해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등 대통령 자신의 기분과 입장만 나온다. 국민의 상처받은 자존심에 대해선 관심도 없는 것 같다. 피해자에 대해서도 “정부는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한 줄 뿐이다. 그리고는 ‘이것도 몰라?’ 식으로 전임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고발하고 각종 역사적 사실과 경제·안보적 기대효과를 복잡한 숫자와 함께 마구, 욱여넣듯 나열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5792자를 썼다고 해도 이런 접근으론 (지지층 아닌) 다수 국민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원고를 이 따위로 써온 참모는 경질당해 마땅하지만…그럴 수도 없다. 대통령의 빨간 펜이 이런 내용을 낳았다는데 누가 감히 무슨 말을 하겠나.● “갈등 있어도 만나야” 한다며 왜 국내선 그리 못하나전임 정부가 망친 한일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외치(外治)는 옳다. “때로 이견이 생기더라도 한일 양국은 자주 만나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도 너무나 옳다. 밖에다 대고는 그렇게 말했던 대통령이 안에선 그리 못할 때, 우리는 ‘위선적’이라고 한다. 취임 일 년이 다가오도록 윤 대통령은 야당과 회동 한번 한 적 없지 않은가.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를 풀고 한발 나아가려면 야당의 도움은 필요하다. 방일 뒤 윤 대통령은 야당과 만나 한일회담 결과를 설명할 수도 있었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일본 야당이 우리 야당을 만나 설득해준다고 할 때 윤 대통령은 부끄러웠다는 말은 너무했다. 대통령은 왜 남의 나라 사람도 만난다는 우리 야당을 만날 생각도 안하는가. 그러고 보니 윤 대통령이 일본 정치인들이나 언론에 보여준 환한 웃음을 우리 정치인(친윤 빼고)과 언론에 보여준 적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검찰 DNA를 벗지 못해선지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국민도 (아직 잡아들이지 않은) 피의자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이번 길고도 지루한 23분간의 ‘대국민 담화 수준’을 들으면서 나는 마주치기 싫은 꼰대한테 딱 붙잡혀 되게 깨지는 기분이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3-24 14:00 
[김순덕의 도발] 더 이상 과거사에 매여 살 순 없다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한(恨)서린 경험은 들을 때마다 아프고 죄스럽다. 국민학교 때 반장이었던 양금덕 할머니(94)는 중학교에 보내준다는 일본인 교장 말에 속아 일본에 건너가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일했다. 월급은커녕 사과도 못 받은 것이 원통해 1990년대부터 일본서 소송을 냈지만 줄줄이 패소했다. 내 나라에선 다르겠지 싶어 할머니는 우리 사법부에 소송을 냈을 것이다. 2012년 대법원 김능환 대법관이 ‘건국하는 심정으로’ 일본기업에 손해배상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한일관계뿐 아니라 국가 미래를 흔들 수도 있는 원폭이었다. 여기서 판결자체를 따지진 않겠다(끝도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전임 문재인 정부는 그 여파를 방치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사실이다. ● “외교와 안보책임은 대통령에 있다” 대통령은 분명 고뇌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수행해야 할 외교와 안보, 국방, 이 모든 정책의 책임은 내게 있다”고 참모진에게 말했다고 한다(그걸 왜 국민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요).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피고기업들 대신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발표에 흔쾌히 박수칠 국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이 방안이 최선이라고 본다. 바쁜 독자를 위해 계속 이어질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현실적으로 다른 방책이 없다. 전쟁 빼고②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22년 “한일협력”을 말했다③ 독일도 식민 지배를 배상하진 않았다 ④ 과거에 매달리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참여하지 못했다 ⑤ 손배소송 돕는 일본단체들은 공산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⑥ 이제 한일관계-한미일 공조는 굳건해질 것이다⑦ 김건희 여사가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일본 총리와 일왕 지금까지 53번 사과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건 일본 정부와 피고기업의 직접 사과와 배상이다. 그러나 상대는 일본(기업)이고 국내에 있지 않다. 그쪽에선 ‘죽어도 못한다’는데 모가지라도 끌고 와 강제 실현할 방법은…없다. 그래서 전임 문재인 정권은 무책임하게 외면했던 거다. 일본 정부의 사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15년 한일 정부가 어렵게 매듭지은 위안부 피해자 합의 당시 외상(外相)이었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중략)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합니다”라고 일본 정부를 대표해 밝혔다. 그랬던 그에게 또 사과하라는 건 온당한가. 서울시립대 이창위 교수가 작년 말 쓴 책 ‘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에 따르면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부터 2018년 아키히토 일왕까지 일본 총리와 일왕은 53번이나 한국에 사과를 했다.역대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 역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입장이었다.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과 ‘피징용자의 손해보상’도 포함된 건 물론이다. 하지만 ‘빨갱이’의 기원이 일본 제국주의라는 문 전 대통령에게는 공산주의자보다 일본이 더 증오스러웠던 모양이다. 취임하자마자 위안부 합의를 뒤집었던 그는 대법원 폭탄 판결이 나오고, 일본이 무역보복으로 맞서자 2019년 8월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 문재인도 “한일협력은 미래 위한 책무”그 여파로 한미일 공조가 깨져 우리 안보가 위태롭든 말든 ‘신한반도체제’만 성립되면 문파좌파는 행복했을 거다. 그러나 북조선에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욕이나 퍼부을 뿐 호응이 없자 문 전 대통령은 2022년 3.1절 기념사에서 다늦게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 “한일양국의 협력은 미래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책무”라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송혜교는 이럴 때를 위해 이런 대사를 남긴 바 있다. “그 입을 찢어버려야 하나.” 죽어도 일본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아내겠다면 무리수가 있긴 하다.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은 작년 말 대법원 앞에서 미쓰비시 국내자산을 압류 매각하는 판결을 촉구하며 시위성 회견을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1인당 2억원에 달하는 정신적 위자료를 속히 받게 해달라는 거다. 만일 ‘김명수 대법원’이 그런 국제법에 반(反)하는 결론을 또 내놓는다면…한일간 전쟁까진 아니어도 외교파탄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 어떠냐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나 2년 후 외환 위기가 닥치자 일본에 도움을 요청했다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꼭 보복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일본과의 경제안보협력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도 살만큼 살게 된 나라다. 언제까지 치사하게 일본에 돈 내놓으라고 외쳐야 하는가. 강제징용 피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는 서럽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당시 혜택 받았던 기업들이 나서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X팔림을 느끼고 깊이 반성한 일본과 차원 높은 교류협력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 독일도 식민 지배를 배상하진 않았다물론 우리가 당했던 혹독한 일본 식민 지배는 TV드라마만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근대화에 앞섰다는 이유로 비(非)백인으로선 유일하게 식민제국을 경영했던 일본은 ‘동아시아의 영국’을 자처했다. 아시아에서 문명화를 하겠다며 잘난척했던 그들의 가장 만만한 희생자가 우리나라였다.독일과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처절하게 패한 일본은 그래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에서도 독일과 종종 비교된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태인 희생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1990년대 들어 나치 독일에 강제 동원된 외국인 희생자들의 문제가 불거지자 독일 의회는 2000년 ‘기억·책임·미래재단’을 설립 법을 통과시켜 정부와 기업 부담으로 100여개 국가166만 명의 피해자에게 43억7000만 유로를 지급했다. 그러나 이것이 독일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은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나치 만행에 대한 법적 책임도 아니고 정치적, 도덕적 책임이라는 것을 독일은 유독 강조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이탈리아가 2009년 리비아 식민 지배를 사과하고 배상 명목으로 투자를 합의한 정도랄까). 2차 대전 종전 당시 독일과 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이고 미국 영국 등 승전국조차 식민지를 가진 나라였기 때문이다. ● 미국은 과거 아닌 미래를 중시했다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종결지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전후 국제질서를 결정한 다국간 합의다. 이 조약 14조엔 전쟁 배상에 대한 내용은 있어도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조항은 없다. 조약 체결 당시 식민주의가 문제라는 인식은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다(이석우 인하대 로스쿨 교수 2022년 논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과 식민지 문제 인식’). 일본이 치러야 할 전쟁 배상 조항도 매우 관대하다. 일본은 배상을 지불할 자원이 없다고 미국이 시사해 놔서 일본과 교전한 48개 연합국 중 구미 열강을 포함한 45개국은 대일 배상을 포기했다. 때는 1951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되면서 미국의 동맹으로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중시된 까닭이다. 결국 청구권 포기 없이 1960년까지 일본에 배상을 받아낸 나라는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4곳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는 이 조약을 맺는 회담에 참여도 못했다. 1950년 5월 초안을 만들 때까지는 참가 및 서명국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1951년 5월 미국에 보낸 답신서에서 ‘임시정부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부터 일본과 교전상태에 있었으므로 연합국 자격이 있고, 재일 한국인은 연합국 국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대마도와 맥아더 라인까지 요구하는 등 과하고 불합리한 주장을 했다. 미국은 공산침략에 맞서는 자유세계의 최전선이라는 한국의 현재적 가치를 중시했지만 한국은 임정의 독립투쟁 등 과거의 가치만 강조한 것이다(정병준 이화여대 교수 2020년 논문 ‘한국의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 참가문제와 배제과정’). 결론은 한국 배제였다. 과거에 스토커처럼 집착하는 과오를 언제까지 되풀이할 순 없지 않은가. ● 식민 지배 받았던 대만은 청구권 포기그나마 다행이라면 일본이 전후배상 및 청구권 지불을 자신들의 부당한 침략과 지배에 대한 참회와 반성의 인식 없이 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거다. 오히려 일본은 은혜를 베푸는 차원에서 경제협력이나 원조를 제공해왔다(이원덕 국민대 교수 2007년 논문 ‘일본의 전후처리 외교연구’). 가난했고, 원조자금이 아쉬웠던 우리나라는 유상 2억 달러, 무상 3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받기로 하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및 제반 협정을 맺었다. 기본조약 전문에 과거사 청산에 대한 내용은 일체 없다. 샌프란시스코조약을 바탕으로 한 1965년 체제의 한계다. 그러나 14년 간 끈질긴 외교전쟁을 이겨냈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종자돈이 됐다고 이 교수는 평가한다. 경제발전 가치가 우선시됐기에 피해자 구제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와 유이(唯二)하게 일본 식민 지배를 받았던 중화민국은 그런 돈을 받지 않았다. 1952년 일화강화조약 때 ‘일본국민에 대한 관대와 선의의 표징으로’ 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다만 1974년 대만 출신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서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나는 일본병이다” 외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덕분에 대만 출신 일본군과 유족에게 위로금 200만 엔(약 3000만 원)을 지급하는 법률이 1987년 제정됐다). 대만보다 통 크고 싶었던 중국도 1972년 일본과 수교하며 배상 포기를 선언했다. ● 피해자돕기 일본 측 단체, 공산당과 연관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다.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냐고. 언제까지 우리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에 그 돈 내놓으라고 외쳐야 하느냐고. 이제는 우리가 우리 피해자들을 지원하면 안 되느냐고. 특히 일본서 반드시 돈을 받아내야 한다고 징용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본 측 단체들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2018년 결성된 단체들은 ‘일본의 한국병합은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로 원천무효’라는 천사 같은 소리를 하는 세력과 가깝다. 주로 일본 공산당계, 구 일본사회당계에 뿌리를 둔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과 연계됐던 이들이 1965년 한일협정도 쌍수들고 반대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일조약은 본질적으로 한일 군사동맹이어서 남북분열을 고정시켜 (북한 주도) 통일을 방해한다는 거다. 정말 믿고 싶진 않지만 죽창가를 부르던 과거 집권세력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 김건희 여사가 피해자들을 찾아보면 어떤가 우리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한지 1시간 쯤 지난 미국시간 5일 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그만큼 한일관계 개선과 그에 따른 한미일 공조 회복이 긴요했다는 의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신냉전구도가 공고해지면서 향후 한반도와 대만해협 위기는 한미일 군사공조와 경제안보협력 없이는 헤쳐나갈 수 없을지 모른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결단을 내린 대통령이다. 이제는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국민에게도 좀더 마음을 썼으면 좋겠다. 7일 국무회의에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은 세계 전체의 자유 평화 번영을 지켜줄 것이 분명하다”고 했지만 그런 간접화법으론 국민 가슴에 와닿을 수 없다. 한일협정 체결 뒤 박정희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했었다. “한일협정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비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개인의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일이 있다면, 이번에 체결된 협정은 치욕적인 제2의 을사조약이 된다”고 박 대통령은 둥둥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처럼 국민의 심장을 뛰게 했다(물론 반대시위가 격렬했고 대통령은 욕을 먹었다. 그러나 결과는 오늘의 한국이 증명한다). 윤미향 같은 피해자 대변인격에게 마냥 맡겨둘 순 없다. 이번엔 대통령이 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보면 어떨까. 그래서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이런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준다면 설령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해 가슴치던 피해자들이 그간의 한을 조금은 풀 수 있을 듯하다. 국민도 모처럼 대통령(부인)과 통하는 느낌을 가지는 건 물론이고.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3-10 14:00 
[김순덕의 도발]이재명은 뱀 같은 가스라이팅을 멈추라2022년 미국 미리엄 웹스터 사전이 뽑은 ‘올해의 단어’가 가스라이팅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을 가스라이팅했다(선거사기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는 식으로 정치, 미디어에서 주로 쓰이면서 검색량이 전년도에 비해 17배나 폭증해서다.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1938년 초연된 연극 ‘가스등’(1944년 영화로도 나왔다)에서 나왔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다. 본래 의미는 ‘오랜 심리적 조작으로 피해자의 판단력을 잃게 함으로써 가해자한테 의존하게 만드는 행위’지만 요즘 미국 정치판에선 사적 이익을 위한 거짓말, 대(對)국민 사기를 심플하게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트럼프가 쏟아낸 가짜뉴스를 모아 ‘가스라이팅 아메리카’라는 책까지 나왔겠나. ● 트럼프와 이재명은 닮은 꼴 희생양?“법치를 빙자한, 법치의 탈을 쓴 사법사냥이 일상이 돼 가고 있는 폭력의 시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둔 23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윤석열 정부를 비난했다. 사법사냥의 희생물은 즉 이재명 자신이라는 소리다. 그는 “대선에서 제가 부족했기 때문에 패배했고 그로 인해 제 개인이 치러야 할 수모와 수난은 제 몫”이라고 했다. 2022년 대선에 졌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정적이 돼서는 없는 죄를 뒤집어썼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다.트럼프도 그런 소리를 했다. 작년 미국 중간선거 때도 공화당 후보 지지 연설에서 “나는 두 번 대선에 출마해서 모두 다 이겼다”며 “2020년에는 2016년보다 수백만 표를 더 얻었다”고 미국을 가스라이팅했다. 그 선동적 발언에 자극받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미 의사당에 난입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한 사건이 1·6 미 의회 폭동사태다. 작년 11월 미 법무부가 이를 조사할 특검을 임명하자 트럼프는 “매우 불공정하고 정치적 수사”라며 자신이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꼭 이재명처럼. ● 민주당 제보자 “대장동 몸통은 이재명” 하지만 이재명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재명의 범죄(혐의)를 잡아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재명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정적 제거를 위해, 권력 강화를 위해 남용한다”며 윤 대통령을 공격했지만 그의 죄를 처음 폭로한 쪽은 이재명과 같은 민주당 안에 있었다. 대선 경선 때 이낙연 캠프다. 2021년 8월 말 대장동 비리 의혹을 첫 보도한 박종명 경기경제신문 기자는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 8일 페이스북에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핵심 관계자가 제보를 해줬기에 사실 확인을 거쳐 기사를 썼다”는 글을 올렸다(이재명 성남시장의 전횡으로 엄청난 손해를 본 대장동 원주민들이 이낙연 선거 캠프에 문건을 들고 와 읍소하더라고 최근 중앙일보에도 소개됐다). 박종명은 모두가 궁금해하는 ‘대장동 몸통’까지 페이스북에 적어놨다.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정된 후 ‘대장동 몸통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라고 국민에게 호도한다…분명히 밝히지만 대장동 특혜 의혹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같은 당 핵심 후보 측에서 ‘이재명 후보가 몸통’이라고 제보한 것”이라고. ● “의원선거 떨어지면 생명 끝장, 끽”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이재명의 죄가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그는 오종종하게 대선 패배 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나섰던가. 5월 23일 지역구 유세 중 이재명이 제 손으로 제 목 치는 시늉까지 해가며 “이번에 이재명 지면 정치생명 끝장난다. 진짜요. 끽” 했던 영상이 엄연히 존재한다. 의원 불체포특권 없이는 성남시장 시절 자행한 범죄(혐의)에 대해 보호받지 못하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 터다. 그러면서도 바로 전날인 5월 22일 그는 충북 청주 지원 유세에서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 100% 동의할 뿐만 아니라 제가 주장하던 것이다. 10년 넘도록 먼지 털듯이 탈탈 털린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당시 국민의힘에선 의원 불체포특권이 ‘범죄특권’으로 악용되지 않게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지금껏 통과되지 않았다). 금배지를 달고나서도 불안한지 이재명은 2022년 8월 굳이 당 대표로 나섰다. 그리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찰이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한다면 (불체포특권 포기도) 당연히 수용하겠지만 경찰복을 입고 강도행각을 벌인다면 판단은 다를 수 있다”고 요설을 펼쳤다. 23일엔 불체포특권 포기도, 대표직 사퇴도 생각 없다고 딴소리를 했다. 하긴 이재명의 말 뒤집기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 가스라이팅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또 뭔가더욱 놀라운 건 이재명의 가스라이팅,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토하는 데 똑똑한 의원들도, 극성맞은 개딸들도 잘도 넘어간다는 것이다. 대선 때 이재명은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말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고 스스로 밝혔던 적도 있다.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하게 여겨야 할 신뢰 자본은 약에 쓰려고 해도 못찾을 정치인이 이재명일성 싶다. 그가 27일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비명계 의원들까지 면담하며 “공천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은근한듯 표 단속을 했단다. 음하하, 아직도 이재명의 약속을 믿는 의원들이 계셨다는 거다. 의원들이야 공천이 포도청이어서 이재명한테 목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른바 진보임을 자부하는 개딸을 비롯해 민주당 지지층은 대체 왜 이재명한테 빠진 건지 나는 궁금했다. ‘정치지식 무지, 오인;오답의 특성을 중심으로’라는 유재성 계명대 교수의 2021년 논문에서 단초를 발견했다. 대통령 임기 같은 정치지식에 관해 틀린 답을 한 사람들(오답자)은 특이한 속성을 지녔다는 거다. ‘모른다’고 답한 사람들이 중도적 성향을 보이는 것과 다른 성향이었다. ● 민주당이 이재명 개인정당이냐자신 있게 틀린 답을 말한 오답자들은 정답을 답한 사람들(정답자)처럼 정치에 관심도 많고 투표 참여율도 높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정치적 태도와 행태에서 오답자들은 민주당을 선호했고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깊은 침묵…). 그 오답자들이 지금도 이재명을 지지한다고 추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래서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정확한 정보를 잘 갖춘 시민(교육/정신)이 중요하다고 학교 다닐 때 마르고 닳도록 배웠다. 그래서 이재명에게 당부하고 싶다. 정녕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다면, 23일 국민 앞에 쏟아냈던 궤변을 판사 앞에서 당당히 반복함으로써 구속영장 기각을 받아내주기 바란다. 그리고 재판에서도 무죄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럴 자신 없다면, 제발 그 세치 혓바닥 대(對)국민 가스라이팅을 멈추시라. 설령 성남시장 때 시정농단을 하지 않았다 해도, 민주당은 이재명 사당(私黨)이 아니다. 의원들 시간과 에너지를 당 대표 멋대로 징발해 개인 방어에 쓴다는 건 혈세 도둑질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2-24 11:00 
[김순덕의 도발]당정일체 잘(못)하면 문 정권처럼 된다지난주 이 자리에 ‘노무현은 “당정분리 재검토” 작심토로 했었다’고 썼다가 목매달 뻔했다. 댓글 수위가 북한 김여정의 “삶은 소대가리…”저리가라였다. 그래도 친윤 쪽에선 반색을 한 모양이다. 윤핵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당정이 하나 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정당정치의 책임정치가 무엇인지 논쟁으로 승화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도발한 의도가 바로 그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3월 10일 대통령 당선 바로 다음 날 “대통령이 된 저는 모든 공무원을 지휘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의 사무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래놓곤 집권당 당 대표 선출에 노골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여러 번 들켰다.정치인에게는 설명의 의무가 있다. 정 관여하려면 들키지 말든가, 자기 말을 뒤집으려면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차라리 당헌당규를 개정해 대통령이 당당하고 투명하게 당 대표를 겸임하는 게 낫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 누구를 위한 당정분리인가당정분리가 옳은지, 당정일체가 옳은지는 당정의 입장에선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의 편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작년 4월 22일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 여야 합의 사건을 기억하시는가.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이었다. 윤핵관 권성동 국힘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안한 중재안을 민주당 원내대표와 덜컥 받아버린 거다. 검찰 직접 수사를 기존 6대 범죄(경제·부패·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에서 경제·부패 수사만 남기고 박탈하되, 중대범죄수사청이 설치되면 완전 폐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국힘 의원들도 박수로 추인해 버렸다.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을 친다)”이라며 검찰총장직을 박차고 나온 사람이다. 다수 국민은 “검찰총장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 대통령이 돼 하겠다”는 기개에 환호했고,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이 지긋지긋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문 대통령 퇴임 직전 민주당이 급살 맞게 밀어붙인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대로 갈 경우, 6대 범죄는 경찰로 넘어가 수사되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한다는 분석이 쏟아지면서 국민 분노가 날로 타오르는 것이었다.● 국민의 편에 서면 답이 나온다그러자 당선인 반응도 달라졌다. “여야 합의를 존중한다”(22일)→ “일련의 과정을 국민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지켜보고 있다”(24일)를 거쳐 25일 “헌법가치 수호가 정답”으로 급선회한 거다. 결국 국힘은 ‘법안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26일 당선인 대변인이 강조했다. “당선인은 원내대표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은 것이지 어떠한 개입이나 주문을 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다시 드린다.” 여기서 윤핵관의 위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성동은 대통령의 관심이나 국민 이익보다는, 자기 이해관계(과거 검찰 조사받은 경험 등)를 먼저 따져 합의안을 받았다. 국힘도 윤핵관이니 당선인과 교감했겠지… 하고 이를 추인했다. 당선인은 내 사람이니 잘 했겠지… 싶어 대충 들었을지 모른다. 심지어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국민투표가 필요하다” 식의 엉뚱한 소리까지 던졌다. 윤핵관이라는 무능한 간신배가 존재하는 한,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당선인이 국민의 편에 섬으로써 상황은 종결이 됐다. 이것이 당정일체다. 퍽 거칠고도 의미심장한 윤석열 당정관계의 전조이자 예고편이었던 거다. 그러나 묻고 싶다.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어도 대통령은 당에 관여하면 안 된단 말인가. ● 당정일체가 꼭 옳은 것도 아니다당정일체가 반드시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다. 군소리 없이 당정일체만 하다 정권을 잃은 문재인 정권을 떠올리면 안다. 2019년 11월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큰소리쳤다. 2020년엔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선 “‘임대차 3법‘을 비롯해 정부의 부동산 대책들을 국회가 입법으로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정부의 대책은 언제나 반쪽짜리 대책이 되고 만다”고 협박했다. 거대 여당이 “아니되옵니다” 한번 없이 악법까지 통과시켜준 결과, 문 대통령은 매일 신났겠으나 문 정권은 망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의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이슈’ 연구를 보면, 투표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가 부동산정책 실패였다.문 정권에서 부동산 정책을 건설교통부도, 민주당도 아닌 청와대가 주도한 것도 비정상이다. 정당법 2조는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로 나와 있다. 민주당이 과연 부동산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기나 했는지 알 수 없다. 대체 대통령 보좌에 불과한 청와대비서실에 왜 정책실장까지 두고 내각을 지휘했는지부터 기형적이었다. 결국 ‘국민의 대표’인 집권당 의원들이 대통령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못했기에 문 정권은 실패했던 것이다. ● 이낙연 당 대표, 통합 메시지 냈다가 사과 문 정권 초대 총리였던 이낙연 당 대표가 제 목소리를 낸 적은 있다. 2020년 1월 총리직을 떠나 4월 의원, 8월 당 대표가 된 다음이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가 됐으니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자기편만 보며 정치했던 민주당과 차별성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2021년 1월 1일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적절한 시기에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 문 정권 아킬레스건인 ‘통합’의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결과는 지지율 반 토막이었다. 신중하기 짝이 없는 이낙연이 청와대와 사전교감 없이 대통령 권한인 사면에 관해 공개 발언을 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당정 반응은 싸늘했다. 그해 5월 광주에서 이낙연은 “국민의 뜻과 촛불정신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아픈 성찰을 계속했고 많이 깨우쳤다”며 사과해야만 했다. 친문 지지자들은 이재명에게 옮겨갔다는 분석이다(그러나 중도 및 보수는 완전 떠나갔다).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 이재명은 그 당을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지금은 ‘이재명의 볼모’로 만들고 있다). 그럼 뭐하나. 민주당도 싫지만 이재명은 더 싫다는 유권자가 많은데. 갤럽 대선 사후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에게 투표한 이유는 첫째가 정권교체(39%), 둘째가 상대 후보가 싫어서(17%)다. 결과는 이재명 대선 패배였다.● 대통령만 기쁘게 하다간 망한다당정일체로 대통령만 기쁘게 하다간 정권이 망한다. 문재인 정권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당정분리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당정분리도 잘만하면 당 대표가 대통령을 딛고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게 정권 재창출이다. 하지만 여당 속 야당같이 당 대표가 대통령을 들이받아야만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낙연처럼 실패한 경우도 있다(어쩌면 윤석열처럼 제대로 저항하지 않아 실패했는지도 모르지만). 윤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혹은 불안해)하는 것도 바로 이것일 터다.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당 대표가 탄생해 나를 들이받지 않을까 하는 것! 그러나 앞에 구구절절 썼듯, 국민한테 이익만 된다면, 당 대표는 대통령과 당정일체가 되는 게 옳다. 당 대표가 자기 정치 하겠다고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국민이 용서치 않는다. 공천을 놓고도 마찬가지다. 깜도 되지 않는 인물을 대통령 사람이라고, 당 대표 사람이라고 밀어붙이면, 국민은 반드시 총선에서 표로 심판한다. ● 당 대표가 “아니다” 해야 할 때가 있다 단, 정책이든 인사든 대통령의 방향이 틀릴 경우 당 대표는 “아니다” 말해야만 한다. 그것이 당정분리이고, 견제와 균형이다. 그러려면 주 1회는 정기적으로 회동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도 알았으면 한다.겉으론 당정분리가 원칙이라며 정기적 회동도 없이 기싸움 공천싸움 권력다툼에나 골몰하면, 그러고도 무능한 윤핵관과 대통령실을 통해 말펀치만 날린다면, 2024년 총선은 끝이다.2027년 윤 정권도 망하고, 다음 정권은 좌파 세력에 바로 넘어간다. 검찰 체질, 국힘 웰빙당 DNA 못 버리고 그렇게 죄를 지어서 무슨 낯으로 국민을 또 볼 텐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2-17 11:00 
[김순덕의 도발] 노무현은 “당정분리 재검토” 작심토로 했었다새로운 팩트를 알게 되면 생각과 주장도 달라져야 한다. 나는 ‘당정 분리’가 민주적 원칙 또는 상식이고 따라서 대통령이 당 대표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은 반(反)민주인줄 알았다. 그래서 작년 9월 ‘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고 칼럼도 썼다. ▶[김순덕 칼럼]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참여정부 출범 때 당정분리를 최초로 도입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07년 “당정분리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작심 발언했다는 걸 난 최근에야 알았다(이런…). 그렇다면 당정분리 명분으로 대통령의 당 총재 겸임을 금지한 것도 재검토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어 급히 정당개혁과 민주주의 관련 자료를 뒤졌다. ● 바쁘신 분들을 위해 요약하면…결론은 역설적이고 착잡하다. 바쁜 분들을 위해 전체 흐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당정분리 실패를 공개 인정했다. ②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1월 “참여정부가 잘못한 부분 중 하나가 당정분리”라며 취임 후 당정일체를 실천했다.③열린우리당의 이른바 정당개혁은 한국 정당개혁의 원형이 됐다. 그러나 정당기능과 역할을 축소시키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반면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네트워크 정당모델이라는 논문도 있다. ④‘정당 민주화’가 포퓰리스트를 등장시켰다는 실증적 해외연구는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목도된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는 강한 정당의 ‘걸러내기’ 기능이 작동됐다면 통과될 수 없는 대통령이다. ⑤대통령제+우리 식 양당제에선 정부여당의 실패가 정권교체를 보장한다. 야당은 똘똘 뭉쳐 정부여당 발목을 잡는데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고수하는 건 온당한가.● 노무현 “당정분리는 책임 없는 정치”2002년 대선 후보 때부터 당정분리를 주장한 사람이 노무현이다. 그는 2002년 12월 26일 대통령 당선자로서 “당정분리가 나오게 된 계기가 대통령이 당 총재로서 당을 지배함으로써 빚어지는 하향식 문화를 막자는 것”이라며 “당정분리는 당직임명권과 공천권을 확실하게 배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개념은 계속 바뀐다. 당 운영에 간섭 않기, 정책은 협의하기, 나중엔 그것도 않기…마침내 2007년 6월 8일 원광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에선 이렇게 발언했다. ‘한국식 민주주의’, 말하자면 후진적 제도 몇 개를 개혁해야 됩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었지요….(중략) 한 마디로 5년 단임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 선진국 아니다는 증명이고요. ‘X팔린다’는 이런 뜻입니다.당정 분리, 저도 받아들였고 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만, 그동안 그랬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당정 분리를 채택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당정 분리도 재검토해 봐야 합니다. 책임 안 지는 거 보셨죠? 대통령 따로 당 따로, 대통령이 책임집니까, 당이 책임집니까? 당이 대통령 흔들어 놓고 대통령 박살내 놓고 당이 심판받으러 가는데…같은 겁니까, 다른 겁니까? 어떻게 심판해야 하지요? 책임 없는 정치가 돼 버리는 것이지요.● 문재인은 사실상 당정일체 운영 정치의 중심은 정당입니다.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의 정권은 당으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당정분리라는 것도 재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지난번까지는 부득이했지만 이제는 넘어설 때가 된 거 아니냐. 왜냐하면 당을 지배하는 제왕적 권리는, 이제 권력의 부작용은 많이 해소됐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노무현 스스로 정치개혁 하겠다며 도입한 당정분리였다. 이게 후진적 제도라고 자백하다니…아무리 말을 함부로 했던 대통령이라 해도 막말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노무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인정했다. 2017년 1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참여정부가 잘못한 부분 중에 하나가 당정분리”라며 이렇게 말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것은 제왕적 (당)총재가 돼서 공천도, 재정도, 인사도 좌지우지하는 제왕적 행태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이지 당정간 거리를 두는 당정분리는 정당책임정치라는 점에서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고. 심지어 2017년 3월 마지막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선 “당정일체로 ‘민주당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공언을 했다. ● 정당 실패해도 제왕적 대통령 잘 나갔다실제로 문재인은 집권 후 그렇게 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 민주당 의원 고민정이 7일 방송에서 여당 당 대표 경선 과정을 언급하며 “문 전 대통령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헹. 인간 기억력을 우습게 보는 꾀꼬리 같은 소리다. 당 전체가 거의 친문이어서 누가 돼도 친문 당 대표인데 대통령이 뭐 하러 경선에 관여하겠나. 2020년 총선 공천도 그렇다. 고민정 자체가 당정일체의 증거다. 그럼 아나운서 말고 다른 경력도 없는 고민정이 무슨 수로 지역구 공천을 땄겠는가. 2020년 총선 당시 ‘문재인 청와대’ 출신 출마자 무려 30명(민주당 28명+열린민주당 2명) 중 19명이 국회 입성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호위무사를 국회로 보낸 이가 문재인이었던 거다.개혁의 화신 노무현이 2003년 11월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이후 모든 정당의 개혁 모델이 됐다. 그러나 2004년 총선에서만 반짝 성공했을 뿐. 그 뒤로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했고 2007년부터 소속 의원들이 줄줄이 탈당하면서 2008년 총선을 치르기도 전 자멸했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어지는데도. ● 집권당이 국정파트너가 아니면? 열린당은 대통령에게 당정관계 복원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대통령이 당직이나 공천에 관여하지 않는 건 좋다. 하지만 노무현은 2003년 3월 대북송금특검법안에 거부권 행사 않겠다, 4월 이라크 파병, 2005년 6월 야당과의 대연정을 불쑥불쑥 발표했다. 여당과는 한마디 협의도 없이. 대통령이 집권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게 강원택 서울대 교수 지적이다. 여당 의원이 고무도장에 불과하면 국민이 왜 비싼 세비를 세금으로 바쳐야 한단 말인가? 국가 통치자로서 노무현은 국민을 직접 상대했다. 정당을 기반으로 선거를 통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투입을 위한 정당의 역할은 최소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최장집 ‘어떤 민주주의인가’).노무현이 열린당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은 이후 정당들에 의식적 무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일종의 원형이 됐다는 연구결과는 의미심장하다(김인균 2020년 ‘3김의 퇴장과 정치개혁 담론, 그리고 정당개혁’) 의정논총에 실린 이 논문은 “이 사례를 통해 현재 한국의 정당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노무현이 불러온, 그래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가장 큰 문제는 노사모, 지못미, 개딸 같은 팬덤 정치다. 당정분리론이 산업사회에서 이어진 전통적 혹은 시대착오적 대중정당모델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인데, 요즘 시대에는 딱 맞는 ‘의원-유권자네트워크정당’모델로 보는 시각도 있다(채진원 2014년 논문 ‘노무현의 당정분리론과 비판에 대한 이론적 논의’).● 독재자 걸러낼 문지기가 정당이여야 바로 이 때문에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등장했다면 어쩔 것인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9년 ‘도발’ 첫회에서 소개한 그 책)는 정당이, 정당 지도자가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라마다 정당 민주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을 확대 개방했더니 도널드 트럼프 같은 선동적, 잠재적 독재자에게 홀랑 넘어가더라는 거다. 사회가 분열되고, 극단화 양극화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선거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유독 ‘촛불혁명’을 강조했다. ‘우리 이니’ 빽을 믿고 언론, 사법부, 검찰, 안보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5년 단임제였기에 현명한 다수 국민이 문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지만 4년 중임제라면 체제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책임 정당’이라는 책의 결론과도 일치한다.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라는 부제대로 강하고 위계적인 정당이 민주주의에는 필수라는 역설적 결론이다.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를 위해 정당 내에서 반드시 민주주의를 해야 할 것까진 없다는 연구결과는…섬뜩하다. 관객에게 최고의 발레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발레리나의 발은 처참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 “대통령이 여당 수장해야 정당이 바로 선다”왜 우리는 협치를 못 하느냐고 언론은 참 쉽게 썼다. 정치권도 이유가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처럼 대통령제+기율 강한 양당제인 정치문화가 최악이란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까지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실패가 곧 정권교체’로 믿고 죽자고 반대만 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여당이다. 이에 당정분리로 대응할지 당정이 연대해 대응할지 국민의힘도, 대통령도, 보는 국민도 복잡하다. 아니 나라가 잘못될까 걱정이다. 용산이 저 난리인 것도 그 때문일 터다(그래서 분탕질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여소야대 노태우 정부 시절 정무장관을 지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여당 대표로 나서 야권과 협치하라”고 진작 말했다(작년 9월 시사저널). 당정분리라는 명분 아래 대통령이 여당에서 분리됐는데 대통령이 여당 수장 역할을 해야 정당이 정당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삼권분립 원칙도 있지만 현실정치에선 혼란을 야기한다며 정치학자들이 좀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 당무개입, 하려면 당당하고 투명하게 물론 윤 대통령은 당무개입 않겠다고 수없이 공언했다. 그러고도 가만있지 않았음을 국민도 안다. 정말 선의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당당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하는 게 낫다.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 헌법 아래 2001년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지냈다. 이 헌법 아래서 대통령 김영삼(YS) 신한국당 총재도 1995년 총선 때 원희룡 남경필 홍준표 김문수 이재오 김무성 등 ‘새 피’를 수혈해 눈부신 승리를 이끌어 냈다. YS는 친YS만 공천하는 속 좁은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일 이번 대표 경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헌 7조 변경을 공약할 경우(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 조항을 겸임 조항으로), 다음번엔 ‘대통령 겸임 당 대표’가 나올 수도 있다. 혹시 아는가. 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동급으로 마주 앉아 제대로 협치할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2-10 11:00 
[김순덕의 도발] 아니, 대통령실이 기자들을 고발했다고?엄마들의 로망은 딸과 친구 같은 엄마가 되는 거다. 딸들은 그렇지 않다. 친구 많은 그들은 성모마리아 같은 엄마를 원하지, 엄마와 친구처럼 놀기를 원치 않는다. 내 딸도 그랬다. 설을 끼고 딸과 휴가를 갔는데(그래서 도발을 2주 제꼈답니다^^;) 갑자기 “엄마는 왜 늘 ‘아니’ 하고 말을 시작해?” 하는 것이었다.“아니, 내가 언제?”… 했다가 나도 놀랐다. 열두 살 때도 내게 테러를 감행해 날 충격에 빠뜨리더니 이번엔 한국인에게 ‘아니’로 말을 시작하는 부정적 버릇이 있다는 충격 발언으로 에미를 단박에 아다다로 만들었다.그러고 보니 옛날 코미디언 임희춘이 “아니, 그게 아니구요” 했던 게 생각난다. 아니 나는 부정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사전에는 ‘아니’에 부정이나 반대의 뜻도 있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쓰여 강조의 의미로 쓰이는 어법도 나와 있다. 아니 사실은, 아니 근데, 아니 내 말은, 아니 그게, 아니 있잖아…영어로 말하면 By the way! 아니, 라는 말을 안 하려니 그 담부터는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 돈 쓰고 내 딸 모시고 힘들게 돌아와선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는 걸 발견하곤 만세를 불렀다. 국방부 전 대변인 부승찬이다. ● ‘아니’는 나만의 말버릇이 아니었다부승찬은 작년 4월 1일 미사일전략사령부 개편식 행사 때 남영신 당시 육군총장이 화장실까지 쫓아와 이른바 도사라는 천공이 대통령직인수위 고위관계자와 함께 한남동 육군총장 공관과 국방부 영내에 있는 육군 서울사무소를 방문했다는 말을 했다고 ‘권력과 안보-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에다 썼다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람이다.그는 3일 KBS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나와 21분 55초간 방송하면서 무려 열아홉 번 ‘아니’를 말했다. 주진우와 주거니 받거니 한 것으로 치면, 우하하 줄잡아 1분에 한번 아니를 말한 거다. 그러니까 아니 아니 하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미리 밝혀두자면 이건 흉이 아니다. 글로 써놓고 보니 눈에 띄는 것이지 귀로 들으면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이번 기회에 각자의 언어습관을 점검해 보시어요. 참고로 대통령은 에, 에 하는 버릇이 있답니다). 천공의 관저 결정 개입설을 옳겨 썼다가 나까지 고소당할까 봐 분명히 밝히는데 이 글의 주제는 천공이 아니라 ‘아니’라는 부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다(후덜덜)!● 아니 공관장이 총장한테 허위보고 하겠냐고방송을 시작한 주진우가 “대통령실에서 고발했더라고요, 바로. 어떻게 보셨어요?” 묻자 부승찬은 “아니①, 저는 김종대 전 의원과는 달랐죠”라고 곧장 ‘아니’를 발사했다. 본인도 의식 못 했을 거다. 그리고는 “그러다 보니까 저는 지금 고발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하고 이어갔다.주진우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한테 들었다는 거죠?” 묻자 부승찬은 “공관장이 자기 즉 남영신 총장한테 보고했다”고 답했다.◆부승찬: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아니②, 용모를 보십시오. 흰 수염에 도포 자락 날리면 그게 말이 됩니까?◇주진우: “말이 됩니까?” 그러는데 총장이 뭐래요?◆부승찬: 아니③, 그러면 무슨 뭐 공관장이 허위 보고하겠냐고 총장한테.● ‘아니’만 들어도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전체 말고 부승찬의 ‘아니’가 나오는 부분만 들어도 맥락을 알 수 있다는 건 중요하다. 아니가 들어간 부분은 화자가 강조하고픈 대목이어서다. 부승찬이 아니 하는 부분은 기실 그가 의식하지 않고도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다. 그 부분만 발췌 소개한다.◆부승찬: 네, 핵심 인물 천공이 왔다. 저는요. 고발을 안 당할 자신 있는 게 뭐냐 하면 거기 뭐 경호처나 이런 사람들 저는 1도 관심 없어요. 이 사람들은 당연히 가야죠. 아니④, 의무잖아요. ◇주진우: 네, 네. 알아볼 수도 있죠.◆부승찬: 아니⑤, 그건 당연한 거고 그건 1도 관심 없어요. 저는 민간인 천공이 핵심이고 나머지 분들 뭐 일면식도 없다. 제가 일면식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까? ◇주진우: 만약에 (CCTV) 공개했는데 천공이 안 나오거나 천공하고 관련이 없다면 책임을 지셔야죠.◆부승찬: 아니⑥, 뭐 책임은 지는데 저도 기록…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겁니다.◇주진우: 그래서 기록하셨어요?◆부승찬: 아니⑦, 그래서 그때 당시 기록이었고 저장 날짜도 작년 4월이 마지막 저장이었고. 그러니까 이제 저는 그 기록을 가지고 아니⑧, 국방부의 어떤 군사 비밀을 제외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천공 기록이 있는데 이걸 빼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죠. ◇주진우: 알겠습니다. 경호처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하고 있고요. 그런데 당시 CCTV를 빨리 공개하면 될 일인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데 부승찬 대변인을 고발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언론사 두 곳은 어떤 이유로 고발됐을까요?◆부승찬: 아니⑨, 사실은 언론사 한쪽은 뉴스토마토죠. ◇주진우: 그러면 이 사실관계는 어떻게 밝혀야 됩니까?◆부승찬: 아니⑩, 그러니까 이게 제가… 결국은 이제 총장님의 큰 결단이 저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이고요. 그게 가장 우선시되고 그다음에 CCTV나 이런 것들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현행법들을 넘어서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주진우: 아무튼 참모총장께서 대변인하고만 얘기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대변인도 그 얘기를 듣고 혼자서 가슴을 끓이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부승찬: 아니⑪, 저는 그거는 명확히 말씀드리지만 지켰습니다. ◇주진우: 알겠습니다. 분명히 또 하기는 했을 텐데 이렇게 또 관저나 그리고 청사를 이렇게 기록하는 기록물들 있을 텐데. 카니발 승용차가 2대가 왔고 어디에 누가 탔고 그런 얘기까지 구체적으로 나왔어요?◆부승찬: 아니요(이것은 부사가 아니어서 세지 않았다). 제가 들은 거는… 아니⑫, 그거는 뉴스토마토에서.◇주진우: 알겠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천공 국회 청문회로 부르겠다.”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해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부승찬: 아니⑬, 그거는 어찌 됐든 지금 양분된 그런 국가적 분열 상태를 천공이라는 인물 하나로 해서 이렇게 되는 거는 정말 안타깝기 때문에 어찌 됐든 이거는 밝혀야 된다. ◆부승찬: 그렇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안 갔다는 뭐 육군공관 CCTV… 아니⑭, 지금은 안 되겠지만 그때 당시는… ◇주진우: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천공 의혹에 대해서 “김용현 경호처장한테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하더라. 폰이랑 CCTV 공개하겠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폰과 CCTV 공개할 것 같습니까?◆부승찬: 아니요(이것도 세지 않음). 전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주진우: 안 할 것 같아요? ◆부승찬: 네. 아니⑮, CCTV에 대해서는 명확히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고요.◇주진우: 대통령과 관련됐기 때문에?◆부승찬: 아니⑯,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통령경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과 그다음에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서 이 법을 뛰어넘어야죠.◇주진우: 그러면 그냥 하는 말입니까, 이거?◆부승찬: 아니⑰, 저는 그거는 그냥 하는 말이라고 봐요.◇주진우: 그래요?◆부승찬: 네. 아니⑱, 본인들이 밝히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본인이 무슨 CCTV를 밝혀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핵심 관계자인 천공을 데려다 놓고 하면 돼요. ◇주진우: 아, 대통령경호법 이런 거 다 필요 없이 천공만 조사해 보면 된다?◆부승찬: 아니⑲, 당사자는 안 나서고 왜 대통령실에서 실드를 쳐주냐 이거지.● 아니 왜 천공은 조사 안하느냐고?부승찬은 왜 천공을 직접 조사하지 않느냐고 했다. 조사는 아니지만 취재한 사람 있다. 신동아 기자 출신 프리랜서 기자 조성식이 작년 10월 24일 천공 측 정법시대 법무팀장에게 질의서를 보낸 거다. ‘조성식의 통찰’이 소개한 법무팀장의 마지막 답변은 “스승님이 답변하시지 않을 것 같으니 편하게 보도하시라”였다.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 정도면 천공의 육참총장 공관 방문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봐야 옳다. 심지어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조성식은 작년 11월 하순 정보공개 포털을 이용해 옛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과 외교부 장관 공관(현 대통령 관저) 및 육군 서울사무소의 출입자 명부와 CCTV 영상에 대한 정보공개를 국방부에 청구했다. 12월 11일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결정통지서가 날아왔는데 날짜를 가리고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육참총장 공관을 관리하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은 2022. *.**. ~ *.**. 국방부 청사 내 육군서울사무소/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외교부 장관 공관의 출입기록 및 CCTV 영상은 개인정보 보호법, 국방 정보공개 운영 훈령,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공개가 제한됨을 안내 드립니다.즉 공개 못 한다는 얘기다.● 아니 영상을 쥐고 있는 건 정부 아닌가대통령실은 3일 “중대한 의혹을 제기하려면 최소한 천공의 동선이 직‧간접적으로 확인되거나 관저 출입을 목격한 증인이나 영상 등 객관적 근거라도 있어야 한다”면서 부승찬과 기자들을 고발했다.아니 영상을 쥐고 있는 건 정부인데 기자들한테 객관적 근거를 대라는 건 공정한가. 단언컨대 대통령 손바닥의 임금 왕(王)자부터 시작해 허연 머리 휘날리는 도사님 좋아할 ‘궁민’은 많지 않다. 정권의 비선실세라는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단속도 못 하면서 대통령실이 잘하는 건 기자들 고발뿐이다. 대통령실 만세다. 국정농단 의혹으로 번지는 사태를 막고 싶은가. 그러려면 천공을 잡으시라. 언론을 잡지 마시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2023-02-05 14:00 
[김순덕 칼럼]정당 국고보조금으로 바치는 혈세가 아깝다집권당이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엔 관심 끊을 작정이었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당’이어서 죽다 살아난 정당이 다시 대통령당 되겠다고 당헌까지 바꿨다. 민심을 받든다며 국민 여론조사 30% 반영하던 경선 룰을 당원 선거인단 투표 100%로 갈아 치운 건 일반 국민은 상관 말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그럴 바엔 정당 운영도 당비 100%로 할 것이지 왜 피 같은 세금으로 보조금을 받아먹나 싶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후보를 발견했다.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를 약속한 조경태 의원이다. 5선 의원인 그는 “후진적 한국 정치가 계속되는 이유 중 가장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가 정당 국고보조금”이라며 당비보다 많으면서도 통제받지 않는 국고보조금이 정당 자생력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당심 1위 나경원, 한때 민심 1위를 달리던 유승민이 ‘윤따’(윤석열 대통령의 따돌림) 끝에 불출마를 선언한 뒤 윤심과 윤힘(윤 대통령에게 힘) 후보가 양강을 다투는 가운데 신핵관, 심지어 대통령 부인 팬클럽 회장 출신까지 뛰는 판이다. 이 속에서 대통령 팔지 않는 후보가 당원들한테 인기 없을 게 뻔한 공약을 들고나왔으니 강심장이 아닐 수 없다. 안다. 정당 국고보조금제는 헌법 사안이다. 헌법 8조 ③항에서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헌법을 만들 때 도입된 것임을 알고도 고수할 자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당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신설됐다는 논문까지 봤다면 ‘민주 정당’으로서 면이 안 서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치자금 부패에 빠지지 않기 위해 국고보조금이 필수라는 정당인이 있다면, 중학교 사회 교과서를 봐주기 바란다. 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만든 단체라고 정의돼 있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정책을 만들고, 국가기관의 정책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며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정당 역할이다. 그런 정당이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보조금에 의지하면, 더 이상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들으려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 국가와 카르텔을 형성한 ‘카르텔 정당’이 되는 거다. 기득권 정당들이 민심에 따라 정책 경쟁을 하는 대신 여당은 윤심에만 신경 쓰고, 야당은 당 대표 방탄에만 골몰하는 것도 결국 돈 때문이다. 그들은 ‘살인마 정권’이 퍼주기 시작한 돈뭉치 속에 안존할 수 있어 좋겠지만 국민으로선 지지하지도 않는 정당에 강제 기부금을 바치는 꼴이다. 돈에 눈멀어 정당이 유지되는 추태도 벌어진다. 국민의당 비례의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2018년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가 바른정당과 합친 것도, 뜻이 다른 의원들이 서로 “네가 나가라”며 당에 붙어 있던 것도 돈 때문이었다며 선거보조금 타먹는 구태정당의 극치를 봤다고 회고록에 썼다. 민주주의에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당처럼 민심을 외면하고, 당내 다른 목소리는 내부 총질이라며 압박하고, 주군에게만 충성하는 정당들이 혈세에 의존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심지어 경상보조금 외에 선거가 있는 해엔 선거 전에 선거보조금, 선거 후엔 선거비용 보전금까지 이중 지급된다. 2022년 그렇게 부자 정당들에 퍼준 세금이 무려 1420억 원, 최근 정부가 취약 계층에 예비비로 긴급 지원한 난방비 1000억 원보다 많았다.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이 2021년 발간한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정당’에 따르면, 유럽 정당들도 국고보조금을 받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선거비용 보전을 받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특히 독일은 국고 지원이 당 자체 수입을 절대 넘지 못하게 규정해 놨고 국고지원 총액도 제한한다. 초당적 감시와 통제를 하는 건 물론이다. 우리처럼 2001년부터 2020년까지 1조2570억 원의 보조금을 받고도 감사 받은 적 없고, 홈페이지 공개도 않는 정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양대 진영 정당이 국가의 재정 지원으로 최대의 혜택을 누리고, 대안적 정당의 부상이 저지될 수 있게 했다”는 대목을 보면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윤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국고보조금 지원 체계를 재정비하겠다며 “국민의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 여러분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카르텔 정당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만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대선 비용 보조금 434억 원을 토해내야 할 것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2023-02-02 00:00 
[김순덕 칼럼]이재명은 그들의 도구인가, 아니면 ‘도끼’인가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대장동 비리 의혹 관련 검찰 출석 요구에 응한다고 밝혔다. 다만 “많은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주중엔 일을 해야겠으니 (소환 날짜) 27일이 아닌 28일(토요일) 출석하겠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민생 문제에 몰두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야당 대표로 알 판이다. 실제로는 입만 열면 주로 이재명 자신의 방탄이다. 12일 새해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도 “정치권 모두의 힘을 모아 민생과 미래 개척에 집중해야 될 때”라면서 “이를 위해 야당 말살 책동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기자들 질문 11개 중 첫 번째와 마지막 질문까지 6개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였다. 회견 제목은 ‘국민의 오늘을 지키고 나라의 내일을 바꾸겠습니다’지만 실상은 ‘이재명의 오늘을 지키려 나라의 내일도 바꾸겠다’는 선사후공(先私後公) 정당 선언이 된 꼴이다. 이재명이 현재 민주당 대표가 아니라면 어떨지 상상해 보시라. 민주당도, 나라도 이렇게 제자리 맴맴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가 57%나 되는데도 민주당 지지율이 30%대 초반(1월 둘째 주 갤럽 여론조사)에 머물 리도 없다. 요컨대 이재명이 당 대표로 있는 한, 다수 국민은 민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민주당이 지자체장 시절 비리 의혹이 덕지덕지한 이재명에게 ‘접수’당해 꼼짝 못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재명은 민주당 홈페이지에 “계파도 학벌도 지연도 없이 정치를 시작했기에 오직 국민을 믿고 의지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렇게 성남시장으로, 경기도지사로, 대선 후보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으로 국민이 저를 삶을 바꿀 도구로 써주셨다”고 썼다. 사실관계가 틀렸다. 2010년 그가 민주당 후보로 성남시장에 당선된 데는 이재명의 성남시민모임 활동과 김미희 민주노동당 시장 후보와의 단일화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2013년 9월 성남시의원 정용한은 시의회에서 “이재명 시장이 김미희 (통진당) 의원을 인수위원장에 앉히고 인수위원회에 종북 세력인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을 대거 영입했다”고 발언했다. ‘공동 정부’ 약속 때문이다. 시장 시절 이재명이 경기동부연합과 통진당 세력에 넘긴 행정 권한이나 이권 사업 등을 보면, 성남시는 민주당의 당적을 가진 이재명을 통해 엉뚱한 세력에 접수됐고 이재명은 그들의 도구가 아니었나 싶다. 검찰이 이재명과 ‘정치적 공동체’라고 규정한 전대협 출신 정진상은 성남시민모임에서 만난 사이다.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때부터 이재명을 도운 이재명의 측근 김용은 한총련 정책위 지도위원을 지낸 운동권 핵심이었다. 김용이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 간첩단 일심회와 왕재산 사건의 활동가 등과 연관된 종북라인 관리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재명이 이 모든 걸 알고도 그들의 도구가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영악한 이재명은 도구에 머물지 않았다. 소년공 출신 인권변호사로서 ‘변방 장수’가 됐다는, 기득권에 맞서는 이미지와 사이다 발언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낙마 이후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는 민주당 접수에 성공했다. 그가 2020년 7월 16일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무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를 받은 이틀 후 ‘자주통일충북동지회’는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문화교류국에 “이재명 지사가 민주·진보·개혁 세력 대선 후보로 광범위한 대중 조직이 결집되도록 본사에서 적극적 조치를 취해 달라”는 통신문을 보냈다. 이 단체 일부는 2021년 간첩죄로 구속돼 재판 중이다. 당시 북측은 “이재명이 대선 후보로 나서자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회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자체장 시절 이재명이 왜 그리 대북사업에 열성이었는지 의문이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받는 쌍방울의 대북송금 의혹, 쌍방울 사내이사 출신이 회장이던 아태평화교류협회가 ‘이재명 대북 코인’이라며 팔았다는 가상화폐 의혹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어제 이재명은 “검찰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편파적으로 권력을 남용한다”고 주장했다. 턱도 없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당 대표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이 이재명이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이재명이) 여의도와 국가 정치에 국정의 에너지와 공간을 잡아먹어 당의 리스크를 넘어서 국가의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이 계속 대표 자리에 앉아 권력을 남용하면 그는 민주당을, 우리나라를 까부수는 도끼가 될 수도 있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2023-01-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