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여중생 악마’ 패밀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청소년판 ‘악마를 보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윤 일병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들끓는 판에 이번엔 김해 지역 여고생 살해 사건이 상상을 절한다. 가출한 여고생을 함께 지내던 여중생들이 잔인하게 살해하고, 범행 은폐를 위해 시신까지 훼손했다. 범행 수법도 잔혹하지만 가해자들의 나이가 열다섯 살에 불과하다는 점은 더 놀랍다. 우리 사회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 극히 일각의 극단적인 단면인지 혼란스럽다.

▷여고에 갓 입학한 윤모 양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알게 된 20대 남성의 꾐에 가출한 것이 3월 15일. 처음엔 자신에게 잘해주는 남자와 지내다 남자의 강요로 성매매를 했다. 윤 양 아버지의 가출신고를 눈치챈 가해자들은 ‘아빠를 안심시키라’며 2주 만에 집에 돌려보냈다가 다음 날 윤 양의 교회까지 찾아와 다시 끌고 갔다. 윤 양의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했으나 단순 가출로밖에 수사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윤 양은 가혹행위 끝에 4월 10일 숨졌다.

▷집 나온 청소년들은 혼자 숙식을 해결할 수 없어 같은 처지의 청소년들이 모인 가출 패밀리(가출 팸)에 합류하게 된다. 가출 팸도 일종의 가족이므로 방값 생활비, 여기에 유흥비까지 필요하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이 쉽게 하는 일이 SNS를 통한 성매매다. 가출 팸이 강도 절도 성매매 등 10대 범죄의 온상이 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은 20대 남성들이 여학생에게 접근해 가출을 유도하고, 여학생들은 서로 싸우고 감시해 팸을 이탈하지 못하도록 한 점에서 더 악랄하다.

▷남자들의 강요로 범행에 가담한 여중생들에게 일부 동정론이 없지 않다. 하지만 열다섯 살은 그런 잔혹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까지 모르진 않는 나이다. 범행을 주도한 성인들은 물론이고 여중생들도 엄벌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를 보는 마음은 편안치 않다. 한창 예민한 여중생들의 보금자리가 돼주지 못한 가정, 울타리의 기능을 상실한 학교, 성매매를 하는 사회가 ‘어린 괴물들’을 키워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윤 일병 사건#성매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