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월 9일부터 24일까지 백악관을 비운다. 부인 미셸과 두 딸 말리아와 사샤, 백악관 강아지 보와 함께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 주의 마서스비니어드 섬에 머무른다. 장장 16일이다. 매년 찾는 단골 휴양지다. 침실 7개, 욕실 9개짜리로 방만 17개인 대저택을 빌렸다. 1만2100평 터에 1200만 달러(약 120억 원)짜리 집이다. 수영장과 사우나, 테니스 코트에 농구장도 있다. 오바마는 공식 일정을 일절 접고 측근들과 골프를 치거나 딸들과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해변에서 자전거도 같이 탄다. 밤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미셸과 함께 춤추고 파티도 연다.
지난해 겨울 오바마 가족은 하와이에 17일간 있었다. 에어포스원 경비를 포함해 휴가비로 400만 달러(약 40억 원)나 썼다. 특수군용기가 동원되기도 한다. 수행원과 경호원들도 휴가에 따라붙는다. 지난해 오바마가 여름, 겨울 휴가 때 쓴 비행기 비용 739만 달러(약 74억 원)를 모두 국민 세금으로 댔다. 미국인 평균 여름 휴가일수 3.9일에 비하면 한참 과하다.
폭스뉴스 같은 반(反)오바마 미디어에선 “하와이에도 인터넷이 잘 터지는 하룻밤 90달러짜리 베스트웨스턴호텔 방이 있다”며 호화판 휴가를 비아냥대지만 백악관은 꿈쩍도 않는다. 백악관에서 자동차로 움직일 수 있는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 가면 한 번 띄우는 데 10억 원이 넘는 에어포스원 값을 아낄 수 있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섬 휴가지를 고집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보통 미국인들이 거리감을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일에 찌든 대통령을 휴가 때만큼은 놔두자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세계의 대통령으로도 불리는 미국 대통령이 일이 없어 휴가를 오래 가는 것은 아니다. VIP의 휴식 권리를 존중하는 문화의 영향이 크다. 국제적 분쟁과 의회와의 대립 등 대통령이 간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나흘째 청와대 관저에 머물고 있는 박 대통령의 휴가가 정상은 아니다. 쉬는 건지 일하는 건지 모호하다. 이런 대통령에게 어떤 장차관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휴가원을 들이밀 수 있을까. 하물며 부처 국과장이나 비서관 행정관은 말할 나위도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판국에 대통령이 무슨 휴가냐”며 비난하지만 지나친 정치 공세다. 세월호특별법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게 어디 대통령 때문이었나.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다가 때만 되면 어깨동무하면서 외유를 즐기는 의원들이 대통령의 관저 휴가에 돌팔매질이라니. 8월에 퍼스트클래스 타고 우르르 해외로 몰려갈 의원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통령이 제발 좀 푹 쉬고 충전한 뒤 맑은 머리로 국정을 펼치라는, 그런 품격 있는 정치를 우리 야당은 할 수 없나.
대통령이 이번에 당당하게 청와대를 벗어났다면 어땠을까. 세월호 참사는 잊지 말아야 하지만 이젠 극복할 때도 됐다. 대통령이 제대로 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일상으로 돌아갈 때’라는 메시지로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까. 관저에 남아 밀린 보고서 읽는, 휴가를 ‘나머지 공부’로 활용해서는 창조경제를 백날 외쳐봐야 공허하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는 영어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휴가 때마저 참모들 쪼아대는 일중독 대통령은 피곤한 상전(上典)이다. 공부할 에너지 일찌감치 다 써버리고 무기력해지는 ‘번 아웃(burn out) 학생’은 학교에서 바보 소리 듣기 일쑤다. 제발 관저에서 불 밝히고 보고서 읽거나 전화기 돌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청와대를 나서시라. 이러다간 청와대에 대통령여가오락비서관이라도 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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