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번엔 어르신 병원 참사… 안전점검 즉각 다시 하라

  • 동아일보

자고 일어나면 사고다. 이번에는 어르신들이 희생됐다. 어제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에서 화재로 21명이 목숨을 잃었다. 순식간에 부모를 잃은 자식들은 “병 고치러 왔다 화를 당했다” “편안하게 잘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라며 울부짖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사회적 불효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경찰은 치매에 걸린 80대 환자를 방화 용의자로 보고 있다. 노인 환자가 밤중에 병원을 돌아다녀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병원의 야간관리는 허술했다. 병원 측 자체 화재대응 지침에는 야간과 휴일에 당직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24명이 근무해야 하지만 병원에는 16명밖에 없었다. 300여 명이 입원한 병원에서 화재가 난 직후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대피시킬 사람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보건복지부가 전남도에 공문으로 통보한 안전관리 점검표에 따르면 화재 대처방법과 환자 대피 및 위기관리 매뉴얼 관리 등 7개 분야 31개 세부항목을 점검해야 한다. 전남도는 효사랑병원의 자체 점검 한 차례, 보건소 직원과의 또 한 차례 점검 후 “이상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어떻게 점검을 했길래 환자들을 대피시킬 사람이 없어 생목숨을 못 구하는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혼자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려다 끝내 숨진 간호조무사 김귀남 씨의 살신성인(殺身成仁)만 빛났을 뿐이다.

이 병원에는 화재가 났을 때 불을 끌 스프링클러와 유독가스를 차단할 방화셔터가 없었다. 노인들이 있는 요양병원은 2008년 690개에서 올해 1284개로 두 배로 늘었으나 안전 관리는 너무나 취약하다. 복지부는 작년 1월 인증제도를 만들었지만 인증기준에 안전 관련 항목은 ‘금연 규정을 준수한다’ 등 5개에 불과하고 ‘화재 안전’은 필수항목에서 빠져 있다. 장성 요양병원도 복지부 인증을 받은 300여 개 기관 중 하나였는데도 화재에 속수무책이었다면 이런 제도는 의미가 없다.

어제 서울 지하철 3호선에서 70대 조모 씨가 전동차 의자에 불을 질러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8명이 사망한 26일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도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형마트와 영화관이 입점해 특별한 안전관리가 필요한 곳인데도 불이 나자 용접공은 사라지고, 대피 안내 방송은 미흡했으며 스프링클러와 방화벽이 작동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의 판박이였다.

무사안일 무책임 무능 같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은 대통령이 아무리 정부개혁, 국가개조를 외쳐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23일까지 도로 항공 철도 등 재난 위험이 있는 시설물 4000여 곳을 대상으로 안전점검을 벌였으나 고양종합터미널은 빠져 있었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일차적으로 안전관리 감독을 책임지는 지방자치단체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국가안전처를 100개 만든다고 해도 소용없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대형 재난 사고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은 대한민국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에 더욱 휩싸였다. 정부는 즉각 안전점검을 제대로 다시 하기 바란다. 안전 관련 법안도 조속히 정비해야 할 것이다.
#효사랑요양병원#화재#치매#안전관리#안전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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