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을 순찰 중인 국가유산청 ‘순라봇’.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일 서울 창덕궁 후원. 높이 1m 남짓의 상자형 로봇이 흙길 위를 지나다녔다. 꽁무니에 달린 빨간 매듭 노리개를 흔들며 연못 근처를 지날때, 한 직원이 시험을 위해 휴대용 부탄가스 토치로 로봇 가까이 불을 갖다 댔다. 그러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라는 경고음이 울리며 경광등이 켜졌다. 창덕궁 상황실 화면에는 즉각 “오전 11시 8분 화재” 경고창이 떴다.
이 로봇은 국가유산청이 조선시대에 궁중과 도성 안팎을 순찰하던 ‘순라군(巡邏軍)’에서 이름을 따 10일 시범 도입한 궁궐 최초의 로봇 경비원 ‘순라봇’이다. 고궁 가운데 울퉁불퉁하고 굴곡진 길이 많은 창덕궁에서 다음 달 9일까지 성능을 시험한다.
순라봇은 인공지능(AI)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 기반해 자율 주행한다. 시범 운영 기간에는 낮 2회, 밤 7회 순찰한다. 후원 내 충전소에서 출발해 약 40분간 애련정(愛蓮亭)과 부용지(芙蓉池) 등을 점검한 뒤 충전소로 돌아오는 코스다. 별도 조작하지 않아도 정해진 순찰 일정에 맞춰 알아서 ‘출퇴근’을 한다. 같은 로봇이 대한민국 공군의 대구 종합보급창 등에서도 쓰이고 있다.
화재나 침입 등을 감지하고 관제센터로 즉시 알리는 기능을 갖췄다. 반경 150m를 3차원 탐지하는 라이다(LIDAR) 센서와 전후좌우 카메라, 화재 감지 센서가 장착됐다. 고감도 마이크로는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의 위치까지 파악 가능하다. 이를 개발한 ‘도구공간’의 강경순 본부장은 “AI 딥러닝을 통해 비명과 아기 울음소리, 유리창 파열음 등을 분간한다”며 “높이가 비슷한 어린아이와 입간판을 시각적으로 구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순라봇의 도입은 2008년 숭례문 방화, 2023년과 지난해 발생한 경복궁 낙서 사건 등에서 거듭 지적됐던 문화재 관리 사각 문제를 일부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창덕궁(54만 m²)과 경복궁(38만 m²) 등 부지가 넓은 궁궐은 관리의 허점이 생기기 쉽다. 김철용 궁능유적본부 복원정비과장은 “인력과 폐쇄회로(CC)TV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틈이 있다. 순라봇이 상시 조력자가 돼줄 것”이라고 했다. 강 본부장은 “창덕궁 전체 권역 기준으로 총 3대 투입되면 사각지대 상당 부분을 메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보완할 점이 눈에 띄기도 했다. 바퀴 특성상 5cm가 넘는 궁궐 문턱을 스스로 넘지 못해 전각 곳곳을 살피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일부 구간에서는 통신 오류가 생겨 CCTV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송되지 않기도 했다. 국가유산청은 시범 운영을 거쳐 확대 적용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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