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성진]분노와 슬픔 다음에 와야 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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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분노. 탄식. 허탈.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 더 아프게 우리의 가슴을 때리고 후벼 판 한없는 슬픔. 아,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책임 있는 관계자를 엄중히 처벌할 것이다. 비정상이 일상화된 회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행정당국도 철퇴를 받을 것이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 관계부처의 비효율성도 국민의 무겁고도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일단의 개선책을 강구해 갈 것이다. 보도 행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비판과 자성이 유례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워지지 않는 이 탄식과 허탈감은 도대체 어떻게 치유해야 된단 말인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 인재(人災)의 전말을 보면서 나는 먼저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된다. 25년 동안 검사로서 사람의 죄를 밝혀 처벌하는 일에 종사하였던 나는 과연 벌주어야 할 사람을 제대로 찾아내 누구나 수긍할 만큼의 벌을 주었는가.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업무가 과중하다는 이유로 눈앞의 범죄를 그대로 지나친 일은 없었는가. 피의자의 인권을 명분으로, 피해자의 이익이나 사회방위를 소홀히 생각한 일이 없었다고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만약 너를 포함한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 진작부터 더 엄하고 더 공인정신에 투철하였다면, 승객을 뒤에 둔 채 먼저 배를 버린 선장이나, 월급 270만 원의 1년 계약직 선장을 고용한 해운업주도 감히 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한 번 생각해 보기는 했는가.

명색이 대학의 교수 또는 총장의 이력을 가진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나는 깊은 회오와 반성의 마음을 가진다. 규칙을 어긴 젊은이들에게 나는 평소 얼마나 따끔히 잘못을 지적하거나 꾸짖으며 살아 있는 가르침을 주었는가. 만약 의무와 책임에 충실하고 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정신을 온몸과 마음으로 더 일찍 가르쳤다면, 참사의 원인을 제공하고 구조 과정의 혼란을 야기한 그런 선원, 그런 기업주, 그런 공무원들로 나라의 격이 삼류로 격하되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부끄러움도 지금보다 조금은 덜하지 않았겠는가. 온 국민이 느끼는 이 무력감으로부터도 조금은 일찍 헤어날 수가 있지 않았겠는가.

정부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 일했던 나는 또 다른 자괴(自愧)의 느낌에 온몸이 떨린다. 보고 위주의 행정과 민심을 차 순위의 고려사항으로 보는 행태가 이 정도로 심했단 말인가. 관료제의 합리성과 능률성은 어디로 가고 이제 형식성과 동조과잉(overconformity)만이 나라의 모든 부처에 남아 있단 말인가. 부끄럽다. 참으로 부끄럽다.

얘들아 미안해 차디찬 너희들을 이렇게 보내고
편히 있다는 것이 못 견디게 부끄럽고 창피해
우리 모두의 책임인데 아무 죄 없는 너희들이
대신 짊어지고 가는구나 얘들아 정말 미안해
이번에 세상 곳곳이 고장 난 걸 똑똑히 보았어
이제부터라도 원칙과 기본에 충실할게
내가 좀 불편해도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길을 갈게
(후략)

이것은 한양대 이희수 교수가 며칠 전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태평로모임’이란 자리에서 읽었던 진심 어린 글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국가경쟁력 22위(국제경영개발원·IMD 발표), 1인당 국민소득 2만6205달러(2013년)란 수치도 원칙과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동안 우리가 흘린 눈물의 참된 의미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믿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서 찾아야만 한다.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세월호#분노#슬픔#형식성#동조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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