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스마트폰 알림 메시지가 계속 울렸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이 잇달아 긴급 속보를 올리던 때였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창이어서 이와 관련된 뉴스로 짐작했지만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Scholastic Assessment Test), 10여 년 만의 대개편’ 소식이었다. 학부모들이 수백 개의 댓글을 달 만큼 이곳에서도 대학 입시는 핫이슈다. 지금 SAT를 보는 게 좋을지, 바뀌는 2016년 봄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지를 묻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바뀌는 SAT가 한층 쉬워질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현재 SAT에 출제되는 단어는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꽤 있을 정도로 난도가 높다. SAT를 주관하는 비영리 민간법인인 칼리지보드 데이비드 콜먼 대표는 “학생들이 고교 1학년 때부터 쓸데없는 곳에 너무 많은 노력을 허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교육정책을 설계하고 2012년에 취임한 콜먼 대표는 고교 교과과정에 충실한 방향으로 SAT 개편을 약속했다.
칼리지보드가 방향 수정을 한 데는 경쟁 대학수학능력시험인 ACT(American College Testing)가 결정적이었다. 대입 수험생들은 원하는 시험일을 선택해 둘 중 하나의 점수를 대학에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ACT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이 최근 급증해 지난해 처음으로 SAT 응시생(170만여 명)을 추월했다. 대학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춰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되는 영향이 컸다. 대학들까지 SAT를 외면하기 시작하자 칼리지보드의 위기감은 극에 이르렀다. NYT에 따르면 미 대학의 20% 정도만이 SAT 점수를 적합한 평가지표로 보고 있다. 경쟁에 뒤처진 칼리지보드의 선택은 수십 년간의 자존심을 버리고 ACT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한국은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도입된 이후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 출제를 ‘독점’하고 있다. 평가원은 거의 매년 시험 출제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정시 응시생들은 1년에 하루뿐인 시험일에 상당 부분을 걸어야 하는 ‘외통수 시스템’을 비켜 갈 방도가 없다. 수험생이 미국처럼 다른 시험을 선택할 수도 없고 정부의 세세한 지침을 따라야 하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이런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면 어떨까’ 하고 학생을 둔 몇몇 주재원에게 물었다. ‘순진하다’는 답이 돌아와 계면쩍었다. ‘지금도 사교육시장이 난리인데 더 부채질할 일이 있느냐’에서부터 ‘수십 년간 이어져온 정부 주도의 입시 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가 쏟아졌다.
1970년, 80년대 경제개발의 원동력이 된 우수한 인적 자원을 키워낼 때 정부 주도의 대입평가 시스템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생존전략은 창조경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위에서부터 거세게 불고 있다. 틀에 박힌 입시 시스템을 통해 걸러진 대학생들이 과연 창조경제에 더 적합한 인재로 성장할까. 새로운 유형의 인재를 길러 내려면 뽑는 방식부터 변화를 줘야 한다. 너무 높은 곳에 매달려 있다고, 혹시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꼭 따야 할 열매를 하염없이 쳐다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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