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전승훈]프란치스코처럼 개혁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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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파리 특파원
전승훈 파리 특파원
지난달 말 염수정 추기경 서임식을 취재하기 위해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을 찾았다. 베르니니가 만든 청동 기둥,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놓인 유서 깊은 공간에서 교황과 전 세계 추기경들이 함께 집전하는 예식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됐다.

미사 시작 전 성가대의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교황이 십자가 지팡이를 손에 쥐고 천천히 입장했다. 뒤쪽 신자석부터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서더니 모두들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번쩍번쩍.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신자나 취재진뿐이 아니었다. 자줏빛 수단을 입은 주교들까지 체면 불고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교황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이 곳곳에서 이채로웠다. 삼종기도 때 교황을 보기 위해 광장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에게도 교황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 스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지 1년. 소탈하고 검소한 생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안아주는 따뜻한 웃음, 인간성을 말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교황의 ‘심플함’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뿐만이 아니다. 가장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조직인 바티칸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프란치스코는 현실 정치인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가 내세운 원칙은 간단했다. 바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스스로의 존립을 위한 규칙과 절차에만 얽매이는 집단에서 벗어나 병든 사회의 ‘야전병원’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거리에서 병든 노숙인을 안아주고 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의 행보는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정치권 내부의 복잡한 싸움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경고로도 해석된다.

프란치스코는 또한 ‘낡은 규칙의 파괴자’였다. 교황궁 대신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잤고 교황 전용 방탄차 대신 승용차를 탔다. 중세 황제를 연상케 하는 ‘알현식’도 없앴다. 그는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불려온 바티칸 은행에 대한 감사를 글로벌 민간 회계기업에 맡기는 등 재정개혁을 위해서도 과감히 칼을 들이댔다. 상식처럼 굳어져 버린 인습을 타파하는 것, 낭비와 비효율을 과감히 줄이는 것은 이 시대 정치개혁의 필수과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개혁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에는 조급함과 변덕스러움도 엿보인다. 기대 수준이 높아진 대중들은 프란치스코가 취임 1주년이 지난 뒤에도 뭔가 가시적인 개혁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를 의식해서였을까. 교황은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슈퍼맨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선거 때만 되면 개혁이 화두로 떠오른다. 후보들은 복마전 같은 부패 타파를 약속하며 자신만이 적임자요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개혁을 하면서 자신을 내세우거나 세력을 키우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을 내려놓고 나눠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변화를 향한 희망을 이끌어냈다.

올해 8월 교황의 한국 방문은 세계의 시선을 동아시아로 집중시킬 것이다. 그가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반도 주민들에게 어떤 치유의 말을 해줄지 기대된다. AP통신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뒤 “가톨릭이어서 행복하다”는 신자들이 크게 늘었다며 이를 ‘프란치스코 효과’라고 분석했다. 우리에게도 ‘한국인이어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지도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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