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병 속의 남자를 꺼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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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레이, 퍼즐 병, 1995년, 유리, 채색나무, 코르크, 34×9.5×9.5, 휘트니미술관 뉴욕
찰스 레이, 퍼즐 병, 1995년, 유리, 채색나무, 코르크, 34×9.5×9.5, 휘트니미술관 뉴욕
코르크 마개가 닫힌 투명한 유리병 속에 한 남자가 들어있다. 남자는 잔뜩 긴장된 표정과 자세로 그가 얼마나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 말하고 있다. 병 속의 남자는 이 작품을 창작한 미국의 예술가 찰스 레이다. 찰스 레이는 자신의 몸을 직접 본뜬 작은 마네킹을 제작해 유리병 속에 갇혀 있도록 연출했다. 그는 왜 실물과 똑같은 자신의 모습을 축소시킨 마네킹을 밀봉된 유리병 속에 넣은 것일까?

병 입구를 코르크 마개로 막은 것은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질식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투명한 유리병은 다른 사람의 고통마저도 쇼윈도의 마네킹을 바라보듯 구경거리로 삼는 비정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병 속의 남자가 일상이라는 감옥을 탈출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문장에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

‘두목,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긴 줄 끝에 묶여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인간의 머릿속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하죠. 얼마를 썼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두니까 줄을 자를 수 없지요…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욕망이라는 이름의 줄을 자르고 가진 것을 다 걸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리라. 그런데도 병 속의 남자에게 왜 이렇게 묻고 싶어지는 걸까? 너는 진심으로 또 간절하게 자유를 원하는가?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유리병#찰스 레이#현대인#심리상태#욕망#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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