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일관계]일본은 역사에 겸허하고 한국은 대범하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6일 03시 00분


《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제68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국내, 북한, 일본 등에 대한 국정(國政)기조를 밝혔다. 6개월간의 실전 경험과 현실을 반영한 신임 대통령의 첫 광복절 경축사는 늘 주목을 받아왔다.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타당하며 구상은 실현 가능한가. 》

한일 관계는 지난 1년간 완전히 얼어붙었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올 4월 “침략의 정의는 확실하지 않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 등으로 양국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양국에 새 정권이 들어섰으나 정상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출구없이 마주 달리는 형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독도, 위안부 등 3대 현안에 대해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상대방의 아픔을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 달라고 주문했다. 일본 정치인이 용기 있는 리더십을 보여 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같은 날 일본의 일부 각료와 90여 명의 의원은 A급 전범(戰犯)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로 몰려갔다. 아베 총리도 정부 주최 기념식에서 역대 총리들이 해온 ‘가해와 반성’ 및 부전(不戰) 맹세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당분간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부 전문가는 양국이 현재 서로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상대방에게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국제질서는 냉엄하고 언제 풍향이 바뀔지 모른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있는 두 나라의 불편한 관계는 국익에도 반한다.

일본의 정치인은 더는 한국의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독도는 한국에 영토 이전에 아픈 역사의 일부다. 군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라는 눈을 통해 다시 봐야 한다. 헌법 개정이나 집단적 자위권 확보 등은 주변 국가들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의 우익 정치인과 국민을 분리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9월 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는 것도 방법이다. 가시적인 결과를 걱정하기보다 현재의 비정상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서 일본을 빼놓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양국 정상 모두 국내 분위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한국이다. 양국 관계에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치다. 사람, 돈, 물건은 지장 없이 오가고 있다.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정치적 난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지도자뿐이다.

[바로잡습니다]

◇본보 16일자 A31면 ‘한일관계’ 사설에서 일본 국회의원 90여 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했으나 102명으로 최종 집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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