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34>아내는 ‘왕따 엄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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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낯선 환경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일본계 룸메이트한테 얕보이지 않으려는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헤어질 때에도 꿋꿋하기만 했다. 남자는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아내와는 사이좋은 척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가 도망치듯 외국으로 떠나게 된 모든 잘못이 아내에게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런데도 남자는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아이를 보내기만 하면 전부 해결될 것처럼 밀어붙인 아내가 미웠다. 학비 부담은 어쩔 것이며, 당장 급한 것은 아니지만 노후 대비는 또 어쩌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 방에 들어가 보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책상이며 옷장에 침대까지. 그런데 아이만 없었다. “아빠” 하고 반갑게 불러줄. 마침내 남자는 욕실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잠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거실에선 아내가 한 시간째 친구와 통화 중이었다. “명문학교는 무슨…. 비결이 어디 있겠어? 그냥 애가 알아서 한 거지.”

남자는 새벽까지 뒤척였다. 시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것인지, 아이가 그곳에서 잘해낼 수 있을지, 이것이 가족을 위한 최선인지, 생각을 거듭해도 결론을 낼 수 없었다.

동이 틀 무렵, 생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아야만 했는지, 아내는 왜 그렇게 밀어붙여야만 했는지. 남들은 잘만 다니는데.

“일어나. 오늘이 휴가 마지막 날이잖아.”

아내가 그를 깨웠다. 맞벌이인 부부는 아이를 배웅하기 위해 여름휴가를 이제야 냈다.

동네의 샌드위치 전문점. 아내가 주문을 하러 간 사이, 뒷자리 초등학생 엄마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네 엄마는 어떡할까? 은근히 끼고 싶은 모양이던데.”

“거기는 일하잖아. 괜찮겠어? 이혼도 한 것 같던데.”

“정말? 어쩐지 애가 조금 이상한 것 같더라. 우리 애한테….”

남자의 머릿속에서 퍼즐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의문의 반쪽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내에게 들은 적 있지만 설마 하고 넘겼던.

아이가 학교에서 내내 겉돌았던 잘못이 아내 혹은 아이에게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분노조차 느낄 겨를이 없이 맥이 빠져버렸다. 자기들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일본의 한 초등학교가 ‘엄마들의 세력구도가 아이들의 학교생활까지 지배한다’면서 학부모 간의 교류를 금지하는 통지문을 보냈다더니.

아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서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문자 왔어. 거기 애들이랑 친해졌다네. 이젠 발 뻗고 잘 수 있겠다.”

남자는 환하게 웃는 아내가 안타까워서 코끝이 찡해졌다.

한상복 작가
#한상복#남자이야기#아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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