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미래는 직접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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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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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전자산업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1970년대 말, 금성사(LG전자)가 ‘기술의 상징, 금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980년대 들어 삼성전자가 ‘첨단기술의 상징, 삼성’을 슬그머니 들이밀자, 금성사는 곧바로 ‘최첨단 기술의 상징, 금성사’로 격상(?)시켜 버렸다.

광고에서 ‘과학’이나 ‘기술’, 또는 ‘첨단’이라는 용어는 상품의 품질이나 성능을 자랑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단어다. ‘침대는 과학’이라는 유명한 카피부터 ‘○○과학으로 만든 ◇◇’ ‘△△기술로 완성한 □□’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기업의 이념을 홍보할 때도 ‘과학’이나 ‘기술’이 필요하다. ‘휴먼테크’나 ‘드라이빙사이언스’ 같은 새로운 용어를 비롯해 ‘당신을 생각하면 기술이 보입니다’나 ‘사람은 꿈꾸고 기술은 이룹니다’처럼 사람에게 초점을 두는 따뜻한 슬로건도 과학과 기술을 표방한다.

기업의 캠페인에도 과학이나 기술이 동원된다. 1980년대 후반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기초과학을 튼튼히 해야 창조적 기술이 있습니다. 대우가 있습니다’라며 ‘대우가족’ 캠페인을 벌였다. 최근에는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는 슬로건 아래 시작한 한 대기업의 ‘노벨프로젝트’ 광고가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옛날엔 많은 아이들이 과학자를 꿈꿨었죠. 그런데 언제부터 아이들이 같은 꿈만 꾸게 된 걸까요? 아이돌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겐 과학자가 더 많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기업이 상품을 소개하고 기업의 이념을 알리며 사회 캠페인을 펼치는 데 과학과 기술을 앞세우지만, 정작 연구개발(R&D) 투자를 제외하면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사회적인 기여에는 매우 인색하다. 홍보용으로 그칠 뿐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을 ‘빙자’한 엄청난 홍보예산에 비해 실제 투입하는 몫은 너무 작거나 거의 없는 편이다.

사회공헌활동을 보면 거의 대부분 사회복지, 환경보전, 문화예술, 국제교류, 자원봉사 같은 뻔하거나 편한 영역에 머물 뿐 과학이나 교육을 위한 활동에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라 내세우고 싶은 장학금 지급도 대부분 불우한 학생을 위한 사회복지 차원이다.

다행히 올해 들어 한국공학한림원이 추진하는 주니어공학기술교실에 현대모비스, 대한항공, 포스코, 현대제철 같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을 통해 아모레퍼시픽, 롯데, GS칼텍스 같은 기업이 교육기부에 발 벗고 나서고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과학 분야의 사회공헌활동은 아직 불모의 땅처럼 보인다.

전략경영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동아일보와 채널A가 지난해 말 주최한 ‘동아비즈니스포럼2011’에서 기업의 사회적 활동이 ‘기부’에서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거쳐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로 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공계 기피가 심각하고, 과학기술 인재가 부족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한탄할 때는 지났다. 과학기술 분야의 공유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기업이 직접 나서야 한다. 현대 경영학을 창시했다고 평가받는 석학 피터 드러커도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만드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create it)’라고 하지 않았던가.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이공계#과학기술#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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