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천광암]한국 경제가 일본을 추월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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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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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경제부장
천광암 경제부장
11일 오전 내내 올림픽 축구 한일전의 짜릿한 여운이 가시지 않아 도쿄(東京) 특파원 시절 앨범을 꺼내 봤다.

2008년 봄, 필자는 도쿄한국학교(한국 기업의 도쿄 주재원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 3학년생이던 아들을 따라 도쿄 국립축구경기장에 갔다. 홍명보 감독이 일본의 축구 스타와 함께 도쿄한국학교와 일본 초등학교의 축구부원들에게 기본기를 가르쳐주고 이야기도 나누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선수 풀’의 차이가 크다고는 하지만 양국 초등학생들의 실력차는 민망할 정도였다. 유치원 시절부터 철저하게 기본기를 다지는 일본식 교육과, 기초는 대충 건너뛰고 다짜고짜 실전연습과 선행(先行)에 들어가는 한국식 교육이 빚어낸 차이가 여실히 보였다. 나중 일이지만 일본의 한 초등학교를 상대로 한 축구경기에서 도쿄한국학교가 0 대 13으로 지는 것을 보면서도 필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들이 수영을 배울 때도 비슷했다. 일본에서는 6개월 내내 물에 뜨는 연습만 시키는 바람에 팔 한 번 저어보지 못했는데, 한국에서는 6개월 만에 평영 자유형 배영은 물론이고 접영까지 배워왔다. 일본에서 2년 반 동안 피아노를 배우면서 체르니는 근처에도 못 가고 바이엘만 쳤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한국 부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양국 교육문화의 차이는 기업 경쟁력과도 관계가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산업구조의 변화는 완만했다. 기업의 경쟁력은 결함을 줄인 제품을 얼마나 균일하게 생산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개인 간 편차를 최소화하면서 평균치를 끌어올리는 데 강점이 있는 일본식 교육의 힘은 생산관리를 산업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도요타 방식’이 그것이다. 이런 패러다임 아래서 한국이 경제로 일본을 앞서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천재 1명이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되면서 사정은 변했다. 일본에 비해 영재·엘리트 교육에 상대적 강점이 있는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거기에서 길러진 인재들의 경쟁력이 나름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김연아 박태환이 나온 것도 그렇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거듭 칭찬하는 것이 단적인 예일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일본 기업을 압도하는 한국 기업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창의성과 속도가 중요한 전자나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한국의 일본 추월론’이 본격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은 6월 말 한류 관련 포럼에서 “(한국이) 일본 경제를 앞지르는 일도 최소 5년 안에 일어날 것”이라고 확언했다. 또 일본 경단련(한국의 전경련에 해당) 산하 21세기정책연구소는 203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 것이라고 4월 전망했다.

한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양국 드라마산업을 한번 비교해 보자. 제작사들의 자금력이나 원작의 질과 양 등에서 한국은 일본에 크게 뒤처진다. 일본은 완전한 사전 제작을 통해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를 만들지만 한국은 ‘쪽 대본과 초치기 촬영’이 체질화돼 있어 ‘완성도’라는 용어를 꺼내기조차 무색하다. 그런데도 국제무대에서 일본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 앞에 명함도 못 내미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빙산 아래 감춰진 일본의 실체를 어느 정도 아는 필자는 솔직히 말해 일본이 두렵다. 하지만 필자가 만약 일본인이었다면 한국에 대해 느끼는 무섬증은 더 컸을 것 같다. ‘겨울연가’, ‘대장금’, 김연아, 박태환, 쏘나타, 갤럭시S, 소녀시대 그리고 일본 선수 4명 사이를 무인지경으로 헤집고 다니는 박주영을 보면서….

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한국 경제#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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