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불멸(不滅)의 메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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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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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8월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한 여배우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읽는 순간 새로운 작품의 영감이 떠올랐다. 워홀은 그녀가 주연했던 영화의 홍보용 사진을 구한 뒤 이를 실크스크린으로 복제한 초상화 시리즈를 발표했다. 그는 작품에 담긴 얼굴의 숫자와 바탕색을 달리한 50여 점의 연작(連作)을 남겼다. 이 중 하나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돼 있다. 2007년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 스티븐 코언은 또 다른 작품을 약 8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740억 원)에 사들여 화제를 뿌렸다.

▷워홀은 할리우드 배우의 화려한 삶을 부각하면서 대중스타란 미디어를 통해 조작된 정형화된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 연작의 주인공은 5일로 타계 50주기를 맞은 메릴린 먼로(1926∼1962). 금발에 뇌쇄적 미소,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가진 먼로는 생전에는 만인의 연인으로 극장의 은막을 흔들었다. 죽은 뒤에는 워홀을 비롯해 전 세계의 작가들이 즐겨 다루는 테마로 환생해 미술관으로 입성했다.

▷국내에서도 강형구 김동유 유영운 씨 등 여러 작가들이 먼로를 소재로 작품을 발표했다. 먼로를 주제로 한 기획전도 열렸다. 특히 인물 속에 인물을 그리는 ‘이중 그림’으로 알려진 화가 김동유 씨의 작품에선 먼로가 단골로 등장한다. 멀리서 보면 먼로의 모습인데 가까이서 보면 우표만 한 마오쩌둥 주석의 얼굴이 모여 있는 ‘메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의 경우 200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3억2000만 원에 낙찰됐다. 당시 한국 생존 작가로는 해외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이다.

▷먼로는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결혼해 일본에서 허니문을 즐기던 중 1954년 2월 16일 미군 장병들 위문 공연차 방한해 4일 동안 10회의 공연을 했다. 백성희 최은희 씨가 대구 동촌비행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전후의 폐허 속에서도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소동이 벌어졌다.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스타로 명성을 누렸고 시대를 뛰어넘어 예술을 통해 불멸(不滅)의 아이콘으로 사랑받는 여배우는 36세의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먼로가 마지막 인터뷰에서 남긴 말은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만든다. “나는 평생 한 번도 행복에 적응하지 못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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