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민주화, 시장경제 본말 뒤집어선 안 된다

  • 동아일보

시장경제의 근간인 ‘가격’ 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도록 한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개정안이 그제 국회를 통과했다.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가맹점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의 경제활동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당장 업계는 위헌법률심판 청구 검토에 들어갔고 정부도 4월 재개정 추진 방침을 시사했다. 대기업슈퍼마켓(SSM)의 심야영업을 규제한 유통산업발전법은 17일 유통업체가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를 향해 치달으면서 시장경제의 본말(本末)이 뒤집어진 형국이다.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당의 가치 및 정책방향으로 복지, 일자리와 함께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다. 총선과 대선 이후에는 헌법 119조 2항 ‘국가는…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1항의 시장경제 원리보다 앞세우는 ‘체제’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의 개방통상국가를 국가통제가 강한 사회민주주의로 바꾸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양극화에 대한 불만과 분배 요구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국에서도 정부의 역할 확대는 금융부문에 그치고 있다.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은 국가의 규제와 조정도 ‘균형 있는 성장’과 ‘적정한 분배’를 위해서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여전법에 이어 성장을 무시한 분배 강화 조치가 이어진다면 기업가정신은 위축되고 재산권이 위협받으면서 나라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위태로워질까 걱정이다.

일부 대기업이 탈법과 편법을 자행해 국민의 분노를 사고 규제를 자초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창출하고 3000억 달러(약 336조 원)나 되는 외화를 벌어들인 ‘경제안보의 첨병’이 바로 기업이다. 좌우 진영이 경제민주화라는 구실로 기업을 짓밟는다면, 선거가 끝난 내년부터는 무엇으로 국민을 먹고살게 할 것인가.

자본주의 위기론과 함께 자본가의 탐욕이 공격받고 있지만 정치판의 탐욕도 문제다. 올해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도 국익을 외면한 정치꾼들이 금융 및 자본과 유착해 규제를 통해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부(國富)를 키우고 개인의 자아 실현과 일터의 행복을 위해서도 헌법에 규정된 대로 시장경제 원리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보완을 해야 한다. 시장보다 유능하거나 도덕적이지도 못하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드는 정치꾼들에게 경제 주도권을 맡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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