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당, 글로벌 통상국가의 집권당 될 자격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7일 03시 00분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의 취임 한 달 기자회견문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대목이 한 줄도 없었다. 기자들이 한미 FTA 폐기에 관한 의견을 묻자 “총선에서 승리하면 반드시 한미 FTA에 대한 재재협상을 하겠다”며 “재재협상 내지 전면 재검토가 불가능하다면 폐기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8일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한미 FTA는 국가 이익이 실종된 것이어서 이 상태로는 발효시킬 수 없다”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공개서한까지 보낸 데 비하면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세계에서 발효 중인 FTA 297건 가운데 한 나라의 일방적 요구로 협정이 파기된 사례는 없다. 한미 양국 의회가 비준한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는 민주당에 정권을 맡겨도 되겠느냐는 회의론이 일기 시작하자 몸조심 모드로 돌아선 것 같다. 이용섭 정책위의장도 “재재협상이 일관된 방침”이라고 말을 다듬었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는 아직도 한미 FTA 폐기 및 반대론자들이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분위기와 선거 지형의 변화에 따라 또 말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정동영 의원은 한미 FTA를 을사늑약이나 유신헌법과 동일시하는 발언을 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언급되는 빈도가 8위에서 5위로 뛰었다. 반(反)FTA로 ‘장사’가 된다 싶으면 전을 펴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FTA 체결을 ‘개방형 통상국가’ 전략의 하나라고 판단했다. 그는 “FTA는 이념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2007년 1월 23일)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제 환경은 그때보다 더 악화했다. 좁은 땅에서 자원도 없이, 그야말로 통상으로 먹고사는 한국에 한미 FTA는 수출 생산 투자를 증대시키고 고용과 내수를 늘릴 수 있는 희망의 동아줄이다.

한미 FTA를 시행해보고 문제가 드러난다면 그때 재협상을 하면 된다. 한미 FTA에는 무역위원회 및 서비스투자위원회를 장관급으로 구성하고 최소 연 1회 FTA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 한미 FTA가 발효도 되기 전에 폐기니, 재재협상이니 하며 발목을 잡는 것은 민주당이 한미 FTA 반대론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증거다. 민주당은 왜 한-유럽연합(EU) FTA는 괜찮고 한미 FTA는 안 되는지 설명하지도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대체 무엇으로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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