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야 담합한 저축銀 특별법, 금융질서 허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부실 저축은행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특별조치 법안이 그제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2008년 9월 이후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18개 저축은행의 5000만 원 초과 예금자 또는 후순위채 보유자들에게 피해액의 55%를 보전해 주는 내용이다. 원래 금융기관이 도산하면 5000만 원이 넘는 예금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후순위채는 ‘상환순위가 가장 뒤’여서 떼일 수도 있는 채권이다. 금리가 높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 저축은행을 찾아갈 만큼 금리에 민감한 사람들이 사고가 터지자 “그런 상품인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기 어렵다.

특별조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해당 저축은행에 돈을 맡겼던 사람들에게 1025억 원을 새로 지급해야 할 판이다. 현재 예금보험기금의 저축은행 특별계정엔 빚만 잔뜩 쌓여 있다. 일반 은행이나 보험 고객들이 쌓아 놓은 기금을 빼 써야 한다. 저축은행과 아무 상관이 없는 국민이 피해를 본다.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시위를 계속 벌이자 4월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법안을 만들었다. 앞으로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피해자들이 이번 법안을 근거로 지원을 요구하면 정부는 거부할 방법이 없다. 떼를 쓰면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는 ‘떼법 만능주의’를 더 확산시킬 우려가 크다. 예금자보호법의 뿌리를 흔들어 금융질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법안이 현실화하면 정부가 추진 중인 다른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을 이끌 동력을 상실할 것이다.

국정의 책임을 맡은 여당 국회의원들이 이 법안을 주도한 것은 실망스럽다. 이진복, 이종혁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을 허태열 정무위원장이 대체 발의했다. 이들은 저축은행 사태의 시발점인 부산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올해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자를 많이 낼 예정인 민주통합당도 눈감고 담합했다. 이들은 “어차피 이 법안이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지역주민을 무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한다. 몇몇 의원은 “너무 논리가 안 맞아 창피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의원 스스로 입법권을 모독하고 있다.

정무위에서는 고승덕 권택기 김영선 김용태 김정 배영식 이범래 이사철(이상 새누리당) 조영택 강성종 박선숙 신건 우제창 의원(이상 민주당)이 이 법안에 찬성했다. 유권자들은 이들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회는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법안을 부결시켜야 하고, 국회를 통과한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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