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美-中 ‘고래싸움’에 한국의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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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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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베이징특파원
이헌진 베이징특파원
“부야오추스(不要出事·사고가 생기면 안 됩니다).”

최근 중국 중앙정부의 관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권력교체기를 앞둔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중국 관가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을 다스릴 새 지도부 구성을 코앞에 두고 공무원들이 바짝 입단속과 몸조심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무원 부패 적발 기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이동 소식도 잦아지고 있다. 내년 초부터 TV에서 오락 방송을 대폭 축소하는 조치도 나왔다. 공무원의 몸 사리기와 더불어 중국의 사회 분위기는 가라앉고 있다.

중국 밖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중국은 세계무대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주제 중 하나다. 침체의 터널에 들어선 세계경제의 ‘구세주’로, 요동치는 세계정세의 ‘캐스팅보트’로 끊임없이 중국이 호명되고 있다.

한편으론 중국 견제가 행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인 미군의 호주 주둔, 50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미 국무장관의 미얀마 방문 등 최근 미국 지도자들은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이 중국 관련 발언과 조치를 쏟아냈다. 미국과 일부 중국 주변국들은 조직적으로 대(對)중 연합전선을 꾸리고 있다. 아프리카 중동 등 중국의 텃밭에도 반중 정서가 꿈틀댄다.

중국은 아직까지는 차분하다. 외교부는 “중국은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합법적인 권리를 존중한다”면서 “미국도 중국의 권리를 존중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관영 언론에서도 공식적으로는 격한 반발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어디까지나 외교적 언사일 뿐이다. 속마음은 180도 다르고 대응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한 지인은 최근 중국의 한 주요 부처가 비공개로 마련한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발언자마다 미국을 성토하는 것이 ‘반미 궐기대회’를 연상케 했다고 전했다.

미군의 호주 주둔 선언이 나온 지 14일 만에 중국 국방부는 늦은 논평을 내놨다. “냉전적 사고의 구현으로 평화 발전 협력이라는 시대 조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교적 강경한 어조였다. 홍콩 밍(明)보는 중국 정부 부처 내에서 의견 조율이 잘 안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 내부의 혼선은 이처럼 현재진행형이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17일 ‘2012년 세계의 비상사태와 중국 전략’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무려 13시간 동안 중국의 최고 학자 50여 명이 한자리에서 정치 경제 군사 문제 등을 논의한다. 이런 초대형 세미나는 환추시보로서도 처음이지만 중국 역사상으로도 이례적이다. 중국의 고심도 그만큼 깊다는 방증이다.

속으로는 부글거리지만 중국이 당분간 저자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100년 동안은 초강대국 미국을 넘보지 말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재주를 감추고 실력을 기른다) 전략을 되새김질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뜻밖의 돌출행동이 나올 수도 있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는 말처럼 나무가 아무리 고요히 있고자 해도 바람이 자꾸 흔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더구나 권력 교체기는 감정적이고 민족주의적 주장이 득세하기 쉬운 때다.

이 같은 상황은 대척점에 선 미국도 마찬가지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패자 한 명은 나왔다는 보도가 있다.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중국을 비판하면서 중국이 패자이자 ‘동네북’이 된 것이다.

미중의 패권 다툼은 양국의 권력 교체기인 2012년으로 접어들면서 격렬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으로서는 미중 사이 더욱 지혜로운 줄타기가 요구된다.

이헌진 베이징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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