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갑식]독일에서 본 종교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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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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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문화부 차장
김갑식 문화부 차장
이달 초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취재하다 서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하이델베르크 시에 하루 머물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도시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대와 고성(古城)으로 유명하다. 유유히 흐르는 네카어 강가에서 바라본 언덕의 고색창연한 성. 가까이 다가서면 의외로 여기저기 파괴된 흔적이 많다.

그 당당한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오랜 세월뿐 아니라 종교전쟁의 상처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팔츠 선제후였던 성의 주인 프리드리히 5세가 1618년 보헤미아의 왕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30년 전쟁’이란 종교전쟁의 광기를 비켜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마르틴 루터가 1517년 ‘95개 논제’로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뒤 치열한 신·구교 간 갈등이 벌어졌다.

500년 가깝게 흐른 현재의 독일은 어떤가. 흥미롭게도 독일 국민들은 매년 소득세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이른바 ‘종교세’를 내고 있다. 인구 8200만 명 중 65%가 가톨릭이나 개신교인 루터교회 신자다. 가톨릭과 루터교회 신자 수가 엇비슷하다. 해외 이주민이 늘면서 이슬람교 신자도 300만 명을 넘어섰다. 종교세는 두 종파의 신자들에게만 부과되며 다른 종교의 신자들은 세금을 낼 의무가 없다.

주일(일요일)마다 성당이나 교회에 가는 열성 신자는 많지 않지만 이 세금에 대한 거부반응은 거의 없다. 오랜 기독교적 정서와 유아세례를 시작으로 성년식과 결혼, 장례 등을 종교에 맡기는 전통 때문이다.

신자들이 낸 종교세는 해당 종교의 관리 기구가 각 지역의 성당이나 교회 등에 배분한다. 성직자들은 개인의 의사와 지역 사정에 따라 순환 형식으로 근무한다. 자연스럽게 대형교회나 교회의 세습, 개척교회 같은 단어는 생소하다. 성당과 교회는 주민들을 위한 종교행사 또는 자선행사를 함께 개최하곤 한다.

하이델베르크의 늦은 저녁, 소문난 맥주 한 잔을 먹은 뒤 파키스탄 출신의 이슬람교 신자가 운전하는 택시를 탔다. 그는 “고향에서 나의 신앙은 이슬람교의 새로운 분파여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종교에 따른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9·11테러에 함부르크에 근거를 둔 이슬람 신자가 연루됐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어 이 대답은 의외였다. 종교세는 기독교 정서가 강하고 종교 간 반목으로 큰 고통을 받아온 독일의 지혜일 것이다. 하지만 제도나 법에 앞선 해법도 있다.

독일 한인 교회의 한 목사는 이웃종교 또는 정교(政敎) 간의 평화를 상징하는 말로 ‘레벤 운트 레벤 라센(Leben und leben lassen)’을 꼽았다. 우리말로 옮기면 ‘살고 (그대로) 살게 하다’ 정도다. 정치와 종교를 떠나 최소한의 공존을 위한 독일인의 평균적인 마음가짐인 셈이다.

최근 종교인들의 말이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 지진은 하나님의 경고” “청와대 1km 반경을 18세 이하 미성년자 출입을 금하는 우범지대로 설정하라” “정부에 항의하는 불교계 의지를 쓰나미(지진해일)처럼 보여줘야” 등 종교인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종교를 포함한 세상의 평화는 상식적인 말과 행동이 기본이다. 특정 집단을 벗어난 국민적 존경과 사랑은 자기 것만의 고집이 아닌 상식적인 사랑과 나눔이 가득했던 결과다. 그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던 종교전쟁의 역사를 지닌 독일이 만들어가고 있는 종교의 평화를 이제는 우리 종교계가 배워야 한다.

김갑식 문화부 차장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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