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상하이 스캔들’의 시말

  • 동아일보

‘신정아 스캔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세간의 관심은 ‘상하이 스캔들’이었다. 두 여주인공은 남자의 권력을 배경으로 이권을 챙겼고, 여자들 눈엔 그리 미모가 아닌데도 숱한 남자를 사로잡았으며, 그중에서 한 남자로부터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닮았다. 물론 다른 점은 더 많을 거다. 신정아(39)는 학위 위조사건으로 죗값을 치르고 자서전까지 냈지만 덩신밍(33)은 중국 국적에다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우리 정부가 조사도 하지 못했다.

▷정부 합동조사단이 어제 ‘상하이 스캔들’은 스파이 사건 아닌 ‘심각한 수준의 공직기강 해이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덩신밍을 통해 유출된 자료가 국가기밀에 해당되지 않고, 비자 장사 의혹도 금품 수수 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합조단은 수사 의뢰를 하지 않았다. 결국 상하이 총영사관 내 상당수 영사가 덩신밍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자료 유출, 부적정한 비자 발급의 행위를 했는데도 정부는 해외공관 근무자들의 ‘잘못된 복무자세’만 따져 행정처분을 할 모양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관대한 정부 때문일까. 공직자들의 기강해이 비리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도 외교부 직원이 상하이에 오면 외교활동비로 룸살롱에 데려가고, 패키지 관광을 시켜준 사실이 확인됐다. 접대하다 쌓인 자신들의 스트레스는 현지의 상사 주재원 등에게 골프접대와 향응을 받아 푼 것 같다. 현지 언어를 못해 현장에 못 나가면서 비자업무를 무기 삼아 교민과 상사원들 위에 군림하고, 본부 상관과 정치인은 하늘처럼 모시는 ‘골방 외교’ 식 관존민비(官尊民卑) 행태는 여전하다.

▷외교부는 어제 재외공관 평가전담 대사를 신설하고 결과에 따라 조기 복귀나 소환을 실시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했다. 김성환 장관이 작년 10월 취임 일성으로 밝힌 ‘감사담당 대사 신설’의 재탕이다. 작년 장관 딸 특채파동이 터졌을 때 외교부는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조직이 거듭나는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도대체 깎을 뼈나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21세기 국력은 외교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보은(報恩)인사가 계속되고, 권력을 휘둘러 사익을 챙기는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국내에선 신정아, 국제적으론 덩신밍 같은 스캔들은 또 나올 수밖에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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