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창원]日 원전만큼 심각한 당국의 ‘신뢰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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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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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원 도쿄 특파원
김창원 도쿄 특파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불안한 하루하루가 2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사태 초기에는 예상치 못한 대지진이 일어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쿄전력과 원자력안전보안원 등 일본 원전 당국의 석연치 않은 정보 공개와 무책임한 뒷수습은 낙제점을 면키 어렵다.

도쿄전력은 23일 밤 긴급자료라며 방사선 수치를 발표했다. 원전의 방사선량이 시간당 500mSv(밀리시버트)로 원전 사태 이후 최고치에 이르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태 초기인 15일에 측정된 수치였다. 원전 사태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전 국민에게 8일이나 지난 자료를 내놓은 것이다. 보안원은 24일 뒤늦게 실시간 자료를 공개했다. 원전이 정상 가동될 때의 1만 배에 이르는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충격적 내용이었다.

이틀 전 발표된 중성자 검출 횟수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11일 이후 중성자가 검출된 사례가 2번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13번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성자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핵 분열할 때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로 원자로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 당국은 관측 장비를 잘못 읽어 벌어진 실수라고 변명했다.

최근 3호기에서 연이어 회색과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올 때 원전 당국은 하루 종일 “원인을 알 수 없는 연기가 발생했다”는 말만 하다 연기가 사라지자 “문제가 없어 복구 작업을 재개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연기가 없어졌으니 문제도 없어졌다는 식이다.

6개의 원자로가 하루에도 수차례 호전과 악화를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원자로 관련 수치는 안전 여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원전이 이 정도로 위험한 지경에 있음을 원전 당국이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심각한 사실 은폐다.

기업이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사장이 직접 나서 머리를 조아리는 일본 사회의 낯익은 풍경도 사라졌다. 도쿄전력의 시미즈 마사타카(淸水正孝) 사장은 13일 이후 공식석상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일본 원전 당국은 방사선 수치를 발표할 때마다 ‘신체에 해롭지 않다’며 국민의 냉정한 자세를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빨리 제공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일본의 행정은 답답하리만치 느리지만 ‘그래도 믿고 따르면 최소한 탈은 없겠구나’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일본 행정은 신뢰까지 잃어가고 있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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