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상대]내진설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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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 환경공학과 교수 세계초고층학회 회장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 환경공학과 교수 세계초고층학회 회장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일주일 전 도쿄에서 고층건물을 보면서 ‘일본에서 어떤 지진이 발생해도 건물은 안전하겠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신 지진 이후 내진설계가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도쿄 지역의 심각한 건물 피해에 대한 보도는 보이지 않는다.

주변 국가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 언론은 이를 심층 보도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내진설계에 대해 염려한다. 그러나 지진 피해가 어느 정도 복구되면 다음 대지진이 올 때까지 모두가 침묵한다. 우리 정부는 어떠한가. 한신 지진(1995년), 대만 지지 지진(1999년), 쓰촨 성 지진(2008년) 등이 있을 때마다 내진설계 기준을 조금씩 강화했다. 최근 한반도에서 심각한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지진의 위험성만을 전제로 내진설계를 대폭 강화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지진이 생길 때마다 앵무새처럼 국내 내진설계의 필요성이나 강화를 운운할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문제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 고층건물과 저층건물을 비교하면 많이 있는 저층건물의 피해가 압도적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저층건물은 내진설계가 안 돼 있다. 다른 문제는 건축법에 따른 내진설계와 감리를 그 개념도 잘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부실 설계와 시공을 자초하는 것이다.

내진설계를 부실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문제는 설계 용역비다. 평당 분양가가 1000만∼2000만 원 하는 아파트의 구조설계비는 평당 1000원으로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내진설계를 포함한 구조설계비가 이 정도면 내진설계를 대충 하거나 비슷한 건물의 내진설계를 복사해 쓰라는 묵시적인 신호다.

건축설계 용역비를 최저가로 유도하는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기술력과 용역비를 동시에 중요시해야 함에도 많은 건축사업이 기술력보다는 저가의 용역비로 결정된다. 저가의 용역비는 결국 중소기업에 속하는 설계사무소를 출혈 경쟁으로 인한 도산과 부실설계로 이끌게 된다.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책임 있는 행정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곪아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이 터지기 전에는 예방하려는 지혜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동일본 대지진 참사가 잊혀지면 다음 대지진이 올 때까지 언론은 내진설계의 중요성만 거론했지 그 이면의 실상에 대해선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또 정부는 여론에 떠밀려 내진설계 기준의 강화에는 관심을 가질지 모르지만 현재의 실상과 문제점에는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면 내진설계를 제대로 해야 한다. 내진설계를 제대로 하려면 제도적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를 존중하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 환경공학과 교수 세계초고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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