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순길]한-EU 항공협정, 상호평등하게 맺어야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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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주권이란 개념은 1919년 파리 협약과 1944년 시카고 협약을 통해 영공주권주의가 생기면서 나왔다. 오늘날 국가 간 호혜평등을 바탕으로 한 항공협정 체결의 근간이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주권을 회복한 8·15 광복 이후에도 국가 간 협정에서 일부 불평등한 관계를 감내해야 했다. 대표적 사례가 과거 한미 항공협정이다.

문제의 불평등 협정은 1957년에 체결됐는데 내용을 보면 미국의 항공기는 자국 내 어느 도시에서나 출발해서 아무 제한 없이 중간 경유지를 거쳐 한국 내 어느 도시에나 취항할 수 있었다. 한국을 거쳐 제3국으로 계속 운항하는 이원권에도 제한이 없었다. 반면 한국 항공기는 미국 2개 지점에만 취항이 허용됐다. 미국에서 제3국으로 계속 운항하는 이원권은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1991년에는 미국 내 12개 도시로 가는 운항권을 확보했으나 이원권은 3개 지점만 허용됐다. 1998년 한미 항공자유화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했으나 41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 및 항공산업 발전에 따라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 중국 유럽국가와의 항공협정에서는 처음부터 호혜평등의 원칙 아래 균형 있는 권리교환이 가능했다.

그런데 과거의 불평등 협정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1998년 체결한 한미 항공자유화 협정에 이어 유럽연합(EU)과도 항공자유화 협정을 추진했는데 EU는 자기에게만 유리한 내용, 즉 EU 소속 항공사는 국적에 관계없이 대한민국에 제한 없이 취항할 수 있다는 규정만을 분리하여 우선적으로 별도의 협정으로 체결하고 운항권 등 나머지 권리는 추후 협의하자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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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요구를 수용하면 국내 항공사가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는 아무것도 없는 반면 EU 소속 항공사는 아무런 제한 없이 한국에 운항이 가능해진다. 한국이 최종 목표로 하는 한-EU 항공자유화 체결에 대한 확실한 보장도 없이 EU의 요구만 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한번 체결한 불평등 협정을 시정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경험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양측이 원하는 내용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EU의 개별 회원국과 항공자유화 협정을 하나씩 체결하는 점진적인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부의 협상 주무부서는 항공산업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치밀한 협상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하기 바란다.

홍순길 한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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