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보다 싼 수가 진료, 오리지널약보다 비싼 복제약 먹는다? [기고/이주병]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0일 03시 00분


이주병 대한의사협회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성분명 처방 저지 위원장
이주병 대한의사협회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성분명 처방 저지 위원장
지난 9월 여당 소속 일부 의원은 의사가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처방할 때 상품명 대신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에 따라 의약계 간에는 ‘성분명 처방 의무화’라는 화두가 등장했다.

약사회는 의약품정책연구소의 ‘성분명 처방 모델 개발연구’ 최종 보고서 분석 결과를 인용하며 성분명 처방을 도입하면 무려 7조9000억 원이라는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모든 처방 약을 유통되는 약 중 가장 싼 복제약으로 처방한다고 가정하면 7조9000억 원이 절감된다며 성분명 처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보고서에는 또 다른 놀라운 구절도 있다. 5개 주요 질병군에서 외국의 복제약 평균 약값으로만 적용해도 약 4조7000억 원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복제약이 오리지널 약보다 약값이 높은 경우가 54.6%에 달해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11월 26일 정부는 복제약 약값 인하 정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제약업계는 국내 제약산업의 붕괴를 이야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약사회는 보험 재정을 위해 약값을 내리라고 주장하기보다 약효도 검증되지 않은 최저가 성분명 처방이 유일한 재정 절감책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가 받는 수가는 외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2016년 기준 한국의 위내시경 수가는 4만2259원인 데 반해 영국 공공병원은 60만7381원(영리 병원의 경우 415만1000원), 일본도 12만6832원이었다. 한국의 진료 수가가 영국의 14분의 1,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은 영국의 14분의 1 수가를 받고 일하는 의사의 말은 외면한 채 오리지널 약보다 비싼 복제약을 파는 약사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대한의사협회가 11월 27일 리얼미터를 통해 1007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성분명 처방 대국민 여론조사를 보자. 62.4%의 국민이 성분명 처방으로 인한 약화 사고 등 ‘국민 건강 위험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또 응답자의 70.2%가 가격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의사가 처방한 약을 더 선호한다고 답했다. 약사의 선호도는 7.3%에 불과했다. 수급 불안정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가 직접 약을 조제·투약(원내 조제)하는 방안에는 70%가 찬성했다. 더 나아가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바로 약을 받거나 원하면 약국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는 선택 분업 제도 도입에 74.2%의 응답자가 찬성했다. 이 결과를 보며 그래도 아직은 국민이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대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외국보다 싼 수가로 진료를 받으면서 오리지널 약보다도 비싼 복제약을 먹는 국민에게 진정으로 현재의 의약분업과 성분명 처방이 효과적인 의료 정책이고 보험 재정을 절감하는 정책일까? 의약분업으로 폐기되는 국내 폐의약품의 규모는 약 3조8000억 원까지 추산된다고 한다. 선택 분업에 의해 원내 조제를 하면 폐의약품 절감에 더해 의약분업으로 인한 약국 관리료, 조제 기본료, 복약 지도료, 처방전에 의한 조제료 절감 등을 합쳐 7조9000억 원 이상의 절감 효과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거기에 외국 평균 수준의 제네릭 약가로 인하 조치까지 적용한다면 절감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다.

건전한 보험 재정 유지와 국민 건강 수호 등을 고려할 때 성분명 처방과 환자 스스로 약의 조제를 선택하는 선택 분업 중 어느 것이 옳은 정책인지는 자명하다. 정부와 국회는 ‘직역 이기주의자’들에게 매몰돼 잘못된 보건의료 정책의 길을 가지 말고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과 올바른 의료 제도의 항구적 정착만을 위해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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