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생큐 장한나, 생큐 마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4일 03시 00분


문득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괴테의 말이 떠올랐다. 그만큼 다케우치 마리야(竹內まりや)의 노래는 울림이 컸다.

그녀는 2007년 “이제 52세,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라며 ‘데님’이라는 음반을 발표한다. 거기에 실린 ‘인생의 문(人生の扉)’이라는 노래.
I say it's fun to be 20

You say it's great to be 30

And they say it's lovely to be 40

But I feel it's nice to be 50

I say it's fine to be 60

You say it's alright to be 70

And they say still good to be 80

But I'll maybe live over 90
Fun 20, Great 30, Lovely 40, 그리고 Nice 50…. 앨범 표지에 실린 그녀의 데님 치마가 내겐 구름 사이로 언뜻 얼굴을 내민 푸른 하늘처럼 보였다.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읊조렸다. ‘Nice 50, Nice 50…’ 혹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할까 봐 걱정됐던지 그녀는 “몇 살이 되어도 그 나이의 나 자신을 좋아하고 싶다”며 인생의 문을 여는 용기를 두드려 깨웠다.

시건방진 얘기지만, 올해 우리 나이로 50이 되면서 내 안에 작은 변화가 하나 생겼다. 시간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에이징(aging·나이먹기)에 대한 자각이 시작됐다고나 할까. 50이라는 숫자가 주는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농담 삼아 ‘Fifty Shock(50의 충격)’라고 떠벌리기도 했다. 그러나 다케우치는 뭘 해도 즐거웠던 20대, 대단했던 30대, 매력적이었던 40대를 되돌아보라며 “50대도 멋진 나이가 될 것”이라고 속삭였다.

구원의 여성은 또 있었다. 첼리스트 장한나였다.

엊그제 재방영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강호동이 첼로에도 나이가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물론이라며 “내 첼로는 253세”라고 했다. 강호동이 특유의 짓궂은 표정으로 “많이 골골거리겠다”고 하자 장한나는 “첼로의 소리는 250년에서 300년 사이가 가장 좋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강호동이 다시 물었다. 사람으로 치면 몇 살이냐고. 그 순간 장한나의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도 주저 없이 “50요”라고 대답했다.

마치 다케우치가 “나이스 피프티”라고 노래하는 듯했다.

다케우치의 ‘인생의 문’은 어떤 의미에선 초고령사회 일본의 모습을 실감케 해준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국은 2008년 기준으로 기대수명이 80.1세가 됐다. 40년 만에 기대수명이 18년이나 늘어났다. 2030년, 그러니까 20년 뒤면 한국이 G20 국가 중에서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많은 ‘빅4’가 될 것이라는 보고까지 나왔다. 신문이나 TV에서 안티에이징(anti-aging·항노화)이 키워드가 된 지도 이미 오래다.

4대강도 중요하고, 보수·진보도 좋지만 우리의 삶이 유한(有限)의 경계에 다가갈수록 에이징의 지배력은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Nice 50’을 노래할 수 있으면 ‘Fine 60’ ‘Alright 70’ ‘Still good 80’도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60대, 70대 독자들께서도 20년, 10년 뒤 ‘나, 아직 쓸만해’라고 큰소리칠 수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의 안티에이징에 성공하셨으면 좋겠다.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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