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소연]하늘로 가신 별, 하늘에 띄운 별

  • 동아일보

어릴 적, 우주라는 것이 그저 만화 속에서 별로 가득 찬 까만 배경만이 아니라 실제로 공부도, 연구도 할 수 있는 대상임을 알게 된 계기는 좀 우습긴 하지만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주말 저녁이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은 우리 가족을 웃게 만든 ‘몰래카메라’는 아직까지도 종종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이용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즐겨 보던 프로였다. 희생자 대부분은 인기 연예인이었지만 이따금 사회 저명인사나 유명 학자, 종교인도 등장했다. 그중에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9년 미국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이 한국 텔레비전에서 중계될 때 해설을 맡았던 조경철 박사님도 계셨다.

제작진이 미리 우주선이 착륙했던 흔적을 만들어 놓은 뒤 그곳에 박사님을 모셔 진위를 여쭤보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지켜보는 우리는 웃음을 위해 미리 꾸민 것임을 알았지만 박사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진지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셨다. 외계인(ET)으로 변한 이경규 씨가 등장해 이 모든 것이 꾸며진 내용이라고 밝히기 전까지 땅에 까맣게 그을린 자국이나 파인 부분을 보면서 우주와 우주선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시던 모습은 나에게 아주 인상적이었고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어른이 된 뒤 보았던 TV 프로그램의 경우, 당시에는 크게 놀라기도 하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기까지 했던 부분도 시간이 지나면 왜 그랬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릴 적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은 가끔 대화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가 기억이 날 정도로 생생하다. 최근 열심히 배우고 외웠던 가요는 뒤돌아서면 곧바로 가사를 잊어버리는데, 어릴 적 무의식적으로 따라 불렀던 만화영화 주제가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 것처럼….

우주인 꿈 길잡이 된 조경철 박사님

그래서인지 우주인이 되고 난 이후 가장 조심스러운 대상은 한창 꿈을 키우는 어린아이들이다. 가끔 강연에서 내가 한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해내는 아이들을 마주칠 때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섭기도 하지만, 직접 얘기한 나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을 생생하게 알고 있는 그들을 볼 때면, 과거 웃기기 위해 만들었던 ‘몰래카메라’를 심각한 표정으로 보며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나 자신을 보는 듯한 생각에 친근함이 느껴질 때도 있다.

하나의 사건이 나를 우주인으로 이끌어주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 조경철 박사님은 우주인이 되기까지의 긴 항해 동안 나를 인도해준 많은 별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동안 박사님을 포함한 수많은 별이 꿈을 키우는 우리의 긴 항해를 인도해 준 덕분에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얼마 전 박사님의 별세 소식을 전한 각종 매체의 제목 중 ‘조경철 박사 영원한 별이 되다’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았다. 또 어딘가에는 ‘대한민국 우주과학의 큰 별이 지다’라는 제목이 쓰이기도 했다.

이러한 제목을 보면서 문득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지는 별을 안타깝게 쳐다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 같은, 꿈을 이루기까지 긴 항해 동안 우리를 인도해 줄 별이 더 필요하다면 만들어서 쏘아 올리기라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별이 이제는 만들어 쏘아 올릴 수 있는 대상이 된 듯하다. 요즘은 수많은 교통수단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길을 찾지만 과거에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뱃길을 찾았음을 생각하면 인공위성도 별로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1992년 말 그대로 우리의 별인 ‘우리별’을 쏘아 올린 이후 우주로 많은 별을 쏘아 올렸다. 물론 이미 수백 개의 별을 가진 우주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적은 수이긴 하지만 밤낮없이 꾸준히 지구 주변을 돌며 우리를 인도하는 우리의 별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편리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4월 20일이면 통신이나 해양, 기상에 관련된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서 과학기술 선진국을 향한 우리의 항해를 책임질 별이 하나 더 늘어나는데, 이 별은 프랑스에서 발사될 통신해양기상위성이다.

기상위성도 밤하늘 별도 우리 별

이제까지의 기상예측은 대부분 일본과 미국 위성을 통한 기상 자료에 의존했는데 이 별을 쏘아 올리면 좀 더 정확하고 신속한 기상 자료를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진짜 바다 위 항해에도 도움이 되는 별인 셈이다. 실제 전 세계에서 이런 능력을 가진 별을 소유한 나라는 열 개 안팎인 데다 정지궤도상에서 해양 관측을 하는 별을 갖기는 우리가 처음이라고 하니 뿌듯하기까지 하다.

많은 사람을 안내할 멘터로서의 별, 우주로부터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전해주는 별,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영화와 텔레비전 속의 별, 그리고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별까지 수많은 별이 있다. 무엇이든 별은 대한민국 많은 이의 꿈인 동시에 그들을 꿈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기도 한 것 같다.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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