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종시의 방’과 ‘다른 어젠다의 방’을 분리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7일 03시 00분


설을 쇠자마자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 계파 갈등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이 세종시 당론 결정을 위한 의원총회를 소집하기로 한 데 대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권 5당은 어제 세종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설 연휴에 여야 의원들이 만난 지역민심은 약간의 온도차는 있지만 대체로 ‘먹고살기 어려운데 세종시 문제로 싸우지 말고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라’는 주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귀를 막았는지 온통 세종시 문제에 매달려 다른 국정은 내팽개친 듯한 싸움에 빠져 있다.

국민은 531만 표라는 사상 최대 표차로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을 출범시켰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국정 각 분야에서 국민의 여망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책무가 있다. 정부 여당은 3일 열렸던 고위 당정회의에서 2월 임시국회의 성격을 산적한 민생법안을 처리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일자리 국회’ ‘국운 융성을 위한 디딤돌 국회’로 규정했다. 당정은 서민과 지역, 미래를 위한 중점법안 114개를 처리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처리된 법안은 하나도 없다. 이런 상태로는 다음 달 2일 회기 종료 때까지도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높다.

세종시는 세종시대로 따지면서 다른 국정도 챙겨야 할 텐데 지금 국회와 한나라당은 세종시 싸움으로 영일이 없다. 수학문제가 안 풀린다고 국어 영어 사회 과학 책까지 내던진 수험생 같다. 그러고도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겠는가. 모든 국정 현안이 세종시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표류하는 가장 큰 책임은 한나라당에 있다. 한나라당은 지금 세종시 문제를 놓고 대선 전초전을 연상시키는 권력투쟁에 휩싸여 집권당의 책무를 상당 부분 방기하고 있다. 어떤 계파의 의원이건 국정의 공동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의 일원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에는 방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종시 방’에서는 말꼬리 잡기가 아니라 원안과 수정안을 비교 검증하는 충분한 토론을 하면서 ‘다른 국정의 방’에서는 민생 관련 국정을 논의하고 처리해나가면 된다. 국회는 무엇이 국익에 부합하는지를 구체적 근거와 논리로 가려 법안 심의 절차를 거쳐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은 세종시 문제는 풀어내지도 못하면서 국정과 민생을 모조리 진흙탕에 처박아버리는 무책임한 정쟁에 무한정 끌려가고 있는 듯하다. 여당이 대오각성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선거를 통해 매섭게 책임소재를 가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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