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 가드 콤플렉스(God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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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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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 출신 대니얼과 피치.

전형적인 협잡꾼인 두 사람은 절도와 총기밀수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다 인도에서 추방된다. 둘은 아프가니스탄 동부 산악지대의 나라 카피리스탄에 가서 통치자 노릇을 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안고 악전고투 끝에 눈 덮인 힌두쿠시 산맥을 넘는다.

마침내 카피리스탄에 도착한 두 사람. 전투에 뛰어들어 대니얼이 가슴에 화살을 맞지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 실상은 가슴에 찬 탄띠 덕분이었으나 불사의 몸으로 오인한 원주민들은 그를 알렉산더 대왕의 화신으로 떠받든다. 기원전 4세기 이 지역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신격화돼 있었던 것. 졸지에 왕이 된 대니얼은 알렉산더 대왕의 보물까지 차지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신격화된 대니얼이 점점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기 시작한 것. 친구인 피치에게 충성맹세를 강요하고, 심지어 자신이 옛날 여기에 와본 것 같다는 망상에 빠진다. 신이 되려 했던 인간 대니얼과 그의 친구 피치는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다….(영화 ‘왕이 되려던 사나이’·The Man Who Would Be King·1975)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고래(古來)로 신이 되길 갈망해왔다. 이 때문에 자신을 신 또는 신의 아들로 신격화하려던 인물을 동서양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알렉산더 대왕이다.(‘알렉산드로스, 침략자 혹은 제왕’·마이클 우드)

현대 서구에선 자신을 신이라고까지 믿지는 않아도 △자기가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이며 △자기 판단이나 의견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보다 언제나 옳다고 믿는 증상을 ‘가드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심한 경우 자기가 사회의 일반적 상식이나 규칙보다 상위에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직업 중에서는 인간사를 심판하는 판사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수술실의 외과의사 등이 가드 콤플렉스에 취약한 직종으로 꼽힌다. 그들의 판단이나 처치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오류를 인정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

최근 형사 단독 판사들이 연달아 내린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 폭력 무죄→전교조 시국선언 무죄(전주지법)→PD수첩 무죄’ 판결을 보면서 가드 콤플렉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법관의 양심’이 아닌, ‘자신의 양심’을 ‘사회의 건전한 상식’보다 우위에 둔 판결을 했다.

이 때문에 비판이 빗발쳤지만 해당 판사들이 이를 수용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것 또한 가드 콤플렉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세종시 문제는 또 다른 가드 콤플렉스의 경연장이다. 저마다 자기가 옳다며 다른 의견은 들으려 하지조차 않는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그가 ‘국가정책의 신뢰’를 앞세우는 건 백번 수긍한다. 하지만 ‘이미 어떻게 결정하겠다는 것을 밝히고 토론하는 것은 토론이 아니다’ ‘당론이 바뀌어도 안 된다’, 심지어 ‘충청 여론이 바뀌어도 나는 변함이 없다’며 사실상 당내 토론마저 봉쇄하는 데는 적지 않은 국민이 ‘좀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다.

오늘의 대한민국 발전은 박 전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여러모로 부친을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 그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박정희 식 가드 콤플렉스만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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