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00년을 돌아보고 100년을 함께 꿈꾸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일 03시 00분


亡國의 역사가 명령하는 ‘국민통합 自强不息’

우수한 한국인 ‘우린 할 수 있다’ 입증한 반세기

국운 융성 好機, 온 국민 손잡으면 재도약 가능

2010년 새날이 밝았다. 지난 한 해 온 국민이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며 글로벌 경제위기를 비교적 잘 헤치고 나와 맞이한 새해여서 감회가 새롭다. 경인년(庚寅年) 첫날 아침 떠오른 태양은 희망의 빛으로 눈부시다.

시간의 흐름에는 매듭이 없지만 인간은 긴 시간의 마디마디에 새겨진 의미를 되새기며 내일을 설계한다. 새해 첫날 동아일보는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온 국민과 함께 새로운 100년을 꿈꾸려 한다. 올해는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주년, 6·25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세기는 국권의 상실과 치욕으로 시작했지만 2010년은 경제의 재도약,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품격 있는 선진문화국가로 달려 나가는 원년(元年)으로 맞이해야 한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자중자애하고 자강불식(自强不息)해야 한다. 자학하고 자해(自害)할 이유가 없다. 서로 헐뜯고 대립 분열하는 것은 스스로를 약화시키고 세계의 변방으로 내모는 어리석은 일이다. 언젠가 다가올 남북 7400만 민족의 통합을 준비하면서 남쪽 5000만과 세계 동포들의 에너지를 모아야 할 때다.

지구의(地球儀)를 돌려보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국토, 중국의 거의 30분의 1밖에 안 되는 인구로 광복 후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국가로 일어선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 한국인의 우수성과 근면성이 따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연말 우리는 프랑스 일본 등 막강한 경쟁국을 제치고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세계질서를 새롭게 설계할 주요 20개국(G20) 올해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의장국이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저력이 발휘된 결과라고 자부할 만하다. 지금 자랑스러운 코리안은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세계 곳곳에서 낭보를 전해오고 있다. 이런 잠재력을 하나로 모은다면 대한민국은 약진하고 웅비해 국운 융성의 새 시대를 맞을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런데 나라 안을 둘러보면 정치권은 시정잡배 패싸움하듯 사사건건 충돌하고 파열음을 높인다. 명색이 대의(代議)민주정치의 전당인 국회에서 다수결 원칙이 무너지고, 타협과 양보의 정신은 실종됐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나라 예산조차 제때 제대로 짜지 못하는 서글픈 상황이 해마다 되풀이된다. 이런 난장판 정치의 틈바구니에서 온 국민이 경제위기를 막아내고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는 것이 또 하나의 기적 같다.

이제 더는 안 된다. 정치가 화합과 통합을 견인하기는커녕 거꾸로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면서 분열의 한 축이 된 상태로는 세계적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밝히기 어렵다. 1910년 일본에 강제 병합돼 35년간 나라 잃은 질곡 속에서 살아야 했던 통한(痛恨)의 역사를 오늘 되새겨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바로 100년 전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 앞에서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직면했는데도 지도층은 세계의 조류를 보지 못하고 소아적(小我的) 이익에 눈이 멀어 집안싸움에 급급하다 국권 상실의 비운을 맞았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도 결코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와중에서 남북이 대치하며 북의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100년 전 망국(亡國)을 재촉한 내부의 요인들을 거울삼아 다시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 이념 지역 계층갈등을 부추기는 대립과 분열은 이 나라 국운을 쇠잔케 할 뿐임을 각계각층이 깊이 깨닫고 망국적 행태를 불식하기 위해 마음과 힘을 합쳐야 한다.

올해 발발 60년을 맞는 6·25전쟁은 김일성 집단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침략전쟁이었다. 양측의 군인 사상자만 243만 명에 이르고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을 남긴 채 정전상태로 대치 중이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지난해 ‘원조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도움 받는 나라에서 도와주는 나라로 대변신을 이루었다. 이에 비해 북은 주민 대다수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빈곤 상태에 있다. 인권 상황도 세계 최악이다. 김정일 정권은 심지어 어떤 공산 독재국가도 시도하지 못했던 3대 세습을 획책하고 있다.

올해도 남북관계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북이 지난해처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같은 도발을 되풀이할 수 있다. 북-미 간 물밑 대화를 통해 북-미, 남북관계에 큰 변화를 초래하는 돌발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한미동맹을 탄탄히 다지면서 한일, 한중관계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북핵과 북의 적대적 태도에 구체적인 변화가 없으면 미국과 2년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수정 논의를 늦어도 올해는 시작해야 한다. 북의 화폐개혁과 3대 세습 시도로 말미암아 벌어질지도 모를 예기치 않은 변란에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핵 없는 세계’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일면 압박하고 일면 설득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

올해 각각 50주년과 30주년을 맞는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은 민주화의 밑거름이 된 사건들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헌법정신과 법의 지배를 따르고 정파적 이해를 떠나 세계 공통의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화 완성의 길이다.

올해엔 지방선거가 있다. 우리는 선거를 진정한 민주주의 축제로 만들어야지, 정쟁과 무책임한 공약 경쟁으로 민주주의를 얼룩지게 하고 결국 국민에게 경제적 부담마저 가중시키는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유권자들도 눈앞의 달콤한 약속에 현혹되지 않고 대한민국의 지속적 발전 속에서 함께 복리(福利)를 나눌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내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할 줄 알고, ‘떼법’이 아닌 법과 원칙을 통해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며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해야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계에서 자기책임과 사회적 신뢰의 자본을 축적해야만 국격(國格) 높은 선진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21세기 국제사회에서는 하드파워에 못지않게 국가의 품격이나 이미지 같은 소프트파워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국회 폭력이 난무하고 거리에서 기초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수준으로는 국격을 말하기 어렵다.

올해로 창간 90주년을 맞는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숱한 정간과 기사 삭제를 당하면서도 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1940년 끝내 폐간을 당했다. 1945년 12월 1일 복간한 뒤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해 반(反)민주 권위주의 정권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든 좌파 정권을 향해 시시비비로 맞섰다. 동아일보는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국리민복을 위한 정론(正論)을 펼 것이며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에 미래가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영광과 치욕이 교차한 격동의 역사를 넘어 일류 선진국, 선진국민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설 날을 기약하는 새해를 함께 만들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