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집단으로 예산 빼먹은 군청, 홍성郡뿐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3일 03시 00분


충남 홍성군청 공무원 108명이 지난 5년간 물품 구입을 가장해 군 예산 7억여 원을 빼돌리는 데 가담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전체 군 공무원 670여 명 가운데 16%가 연루됐으니 공무원들의 집단범죄라고 할 만하다. 이종건 홍성군수는 이권 청탁과 관련해 5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죄가 이달 10일 대법원에서 확정돼 이미 군수직을 상실했다. 윗물이 이 모양이니 아랫물이 흐려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공무원들의 예산 빼먹기 수법은 위아래로 박자가 척척 맞았다. 각 과의 서무담당자가 사무용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허위 서류를 꾸미면 경리과 재무담당자가 미리 짠 납품업체에 대금을 지급하고 그중 20∼25%를 세금 납부용으로 공제한 뒤 나머지를 다시 돌려받았다. 예산의 불법 사용을 감시 감독해야 할 부서까지도 한통속이었다. 과장급 2명은 부하 직원들이 빼돌린 돈 가운데 50만 원씩을 매달 활동비로 받았다. 이런 식으로 내부에서 끼리끼리 작당해 곶감 빼먹듯이 예산을 도둑질한 것이다. 갈수록 간이 커져 2005년엔 7000만 원을 빼돌렸으나 2009년엔 그 액수가 1억8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부서 운영비가 부족해 관행에 따라 이런 식으로 돈을 조달했다고 주장했다. 부서 운영비를 예산 빼돌리기로 충당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상당수가 사적으로 유용해놓고 거짓 진술을 했다. 검찰 조사 결과 어떤 직원은 4496만 원을 빼돌려 거의 대부분을 유흥비와 호화쇼핑비로 썼다. 다른 어떤 직원은 빼돌린 3941만 원 가운데 1700만 원가량을 고급 유흥주점에서 사용했다. 이런 공무원들에게 “5000원짜리 이상 점심을 먹지 말라”는 말은 하품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다.

홍성군의 재정자립도는 20.4%로 전국 평균 53.4%의 절반도 채 안 된다. 주로 정부와 충남도의 지원에 의존해 살림을 꾸리는 처지에 내부에서 줄줄 샜으니 군 행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1인당 매년 35만 원가량의 지방세를 꼬박꼬박 낸 주민만 속고 산다. 이런 곳이 어디 홍성군청뿐이겠는가.

공직자 비리가 자고 나면 터져 나온다. 현 정부의 부패척결 외침이 공허하게 들린다. 공직 부패를 뿌리 뽑지 않는다면 행정 개혁도, 국가 선진화도 도달하지 못할 꿈이다. 공직자의 탈을 쓴 세금 도둑을 모조리 색출해 엄중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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