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류길재]남북 정상회담, 당일치기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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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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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마는 남북 간에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이 있었나 보다. 접촉이 있었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의 특사 조의단 방한부터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발언까지 정상회담의 분위기는 이미 잡혀 있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논의할지, 다시 말해 회담의 의제와 형식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상회담 개최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유화책으로 치부되어 보수에게는 불만을, 진보에게는 박탈감을 불러일으킬지 모르지만 지금의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상황을 고려하면 적절한 타이밍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국민이라면 보수건 진보건 대화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정상회담을 백안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상회담이야말로 국가 간 대화채널 중에서 최고의 지위를 갖는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위가 절대적인 북한 체제의 특성으로 볼 때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푸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냉전시대 남북 대화의 서막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을 대신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당 조직지도부장의 접촉에 의해 열렸다. 그만큼 정상의 의지와 소통이 중요하다.

적대와 불신을 오랫동안 간직한 한반도에서 정상회담은 형식성과 상징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기 마련이다. 지난 두 번의 정상회담이 그랬다. 분단 반세기 만의 정상 간 회동이니 그럴 만도 했겠지만 분단 현실과 북핵 문제로 점철된 상황에서 축포를 쏘고, 감동이 흐르는 자리만은 아니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보다 더 쌓여 있다.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서로를 신뢰하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정상회담을 준비한다면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북핵 문제는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여야 하지만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북핵 문제는 북-미 회담과 6자회담에서 논의돼야 한다. 남북 간에 핵문제를 너무 많이 논의하면 오히려 관련국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일괄타결안을 설명하고 김 위원장의 의견을 듣고 해법을 찾는 데 다소의 진전을 거둘 수만 있다면 대성공이다.

둘째, 과거 중동을 누빈 비즈니스맨 출신인 이 대통령의 경제관을 김 위원장에게 성의껏 설명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를 극도로 혐오하는 북한에 실용주의의 세계인 비즈니스의 안목으로 북한의 경제 재건에 필요한 경험담을 전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의기투합하면 시범 경협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도 나눌 수 있겠다.

셋째,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상회담은 실무적이면서도 간소하게, 조용하게 개최해야 한다. 대통령도 늘 강조했듯이 만남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거창한 의전이나 행사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겠다. 이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이 이제 ‘역사적인 상봉’으로서의 자리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넷째,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면 김 위원장의 답방 형식이 바람직하다. 경호상의 이유가 있으니 제주도가 좋지 않을까 싶다. 한일 셔틀 외교처럼 오전에 와서 오후에 돌아가는 방식도 고려해 봄 직하다. 이렇게 돼야 남북 정상이 자주 자리를 함께하고, 핵문제로 인해 위기가 고조돼도 한반도의 긴장은 상당히 누그러질 것이다.

정상회담 전망은 불확실하지만, 기회가 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주변국과의 일대일 관계를 관리해 들어가려는 북한의 노력도 역력하다. 물론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해서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만들어지거나 핵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벤트로서가 아니라 소통의 장으로서의 정상회담은 필요한 때가 왔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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