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수]연예인만 꿈꾸는 우리 아이들

  • 입력 2009년 9월 1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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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말이 없었다. 29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내가 던진 질문은 “커서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신문을 보는 사람?”이었다. 초등학생 때 기자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나로선 적지 않게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재빨리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 이 어색한 순간을 무마할 수밖에….

11일 오전 7시 반경 눈이 떠졌다. 전날 야근을 하는 바람에 다소 피곤했지만 ‘일일교사’를 한다는 설렘에 아침부터 다소 긴장이 됐다. ‘얼마 만인가?’ 곰곰이 따져보니 다시 초등학교 교정에 발을 디디는 게 졸업한 지 29년 만이었다.

담임선생님의 안내로 6학년 5반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컴퓨터와 연결된 TV 모니터를 통해 ‘기자의 하루’라는 동영상을 보여준 뒤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등 신문사에 어떤 부서들이 있는지 소개했다. 심드렁하게 듣고 있던 아이들은 문화부 소개를 하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여기는 말이야. 책도 많이 읽을 수 있지만 연예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야. 가수나 영화배우 등 여러분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만나서 취재할 수가 있어.” “우와∼. 정말요?”

첫 수업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담임선생님과 함께 휴게실로 가서 잠깐 얘기를 나눴다. “요즘 아이들은 연예인에만 관심이 온통 쏠려 있어요. 사실 우리 학교에서 언론사에 일일교사를 요청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해주기 위해서거든요. 그런데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열이면 아홉은 연예인이 되겠다고 해요. 인기도 많고 돈도 많이 버니까요. 쟤들한테는 닮고 싶은 롤모델이 바로 가수나 탤런트 같은 연예인이에요.”

선생님의 안타까움은 이어졌다. “글쓰기도 아주 싫어해요. 요즘은 컴퓨터로 모든 걸 다 하니까요. 노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친구와 대화하는 것도 컴퓨터를 통해서 하죠. 직접 연필이나 펜으로 쓰는 걸 싫어해서 일부러 일기를 자주 쓰라고 지시해요. 손으로 직접 글을 써봐야 상상력이 발휘되는데….”

2교시 수업이 끝나고 질문을 받아봤다. 한 아이가 물었다. “기자가 되면 연봉이 얼마나 되죠?” ‘이런. 첫 질문이 돈 얘기라니….’ “아나운서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사진부 기자는 사진만 찍나요?”

몇 개의 질문을 받은 뒤 수업을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난 “무엇이든 마음속에서 꼭 되겠다는 꿈을 간직하면 나중에 이루어진다”고 말해줬다. 교실 뒤쪽에 있던 선생님이 “여러분, 기자님 얼굴 꼭 기억하세요. 평생 가도 기자님을 못 만날 수 있으니까요”라며 웃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 여학생이 사인을 요청해 멋쩍게 사인을 해주자 다른 아이들도 모두 나와서 수첩을 내민 것이다. 한 아이는 수첩 대신 자신의 등을 가리키기도 했다. 아마 나를 연예인은 아니더라도 유명인이라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회사로 돌아왔다. 우리 또래가 꿈꾸었던 기자, 대통령, 과학자, 의사보다 연예인을 장래 희망으로 꼽는 지금의 아이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마음이 심란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인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잘하셨어요?” “그래, 한나야. 재미있었어.”

아참, 가만히 생각해 보니 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였지….

김상수 사회부 차장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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