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종전선언’ 서두른다고 될 일인가

  • 입력 2007년 10월 9일 03시 04분


“종전(終戰)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는 건데, 그중 종전선언만 미리 당겨서 한다는 것은 한국적 발상이다. 선언 같은 이벤트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미국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가 한 말이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8일 “(당사국 정상들이) 종전 협상 개시 선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종전선언은 평화체제 협상 개시 선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이 전문가는 이어 “이제 한국 정부가 원하는 그림이 명확히 눈에 보이는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한국 언론들은 남북한 정상이 평화체제의 물꼬를 텄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이미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 평화체제 협상을 갖는다’고 합의한 바 있다. 미 행정부도 그동안 비핵화가 진전되면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거듭 밝혀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 정상 간 합의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분리 가능성인 것 같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 관계자도 “지난해 11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하노이 선언’ 이후 종전선언을 먼저 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미국식 접근법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정전(停戰)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해선 평화협정, 관계 정상화, 그리고 비핵화가 필수적이다. 반면 종전선언은 핵심 요소는 아니다. 상징적 이벤트로 선언이 필요하다면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는 시점이 자연스럽다. 미 행정부는 이를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의 일로 상정하고 있다.

평화체제의 하부 구조물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만 선언할 경우 현실과 선언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송 장관도 지난달 12일 “갑자기 종전선언을 하면 전쟁은 끝나지만 평화는 없는 상태가 오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북-미 정상이 그 어떤 계기로든 만난다면 평화를 위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배가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인 전문가가 “평화체제 논의는 몇 년이 걸릴 프로세스이므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한국 정부가 꾀를 낸 것 같다”고 분석할 때 기자는 반박하기 어려웠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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