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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7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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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늘휘무용단이 이준 열사 서거 10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마련한 무대다. 이준 열사의 독립 정신을 기리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깃든 한국 춤의 예술성을 널리 소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네덜란드는 유명한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 루슨트댄스시어터 등 세계 최고의 무용단이 있는 곳. 그들의 문화 수준에 걸맞게 한국적 정서가 담긴 춤의 진미를 선사하고 싶었다.
무용단은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시차를 극복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연습에 돌입했다. 아마 무용수 가운데 일부는 유럽에 온 설렘과 아름다운 환경에 취하고 싶은 마음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한국에서 수개월 동안 다듬은 집중력과 테크닉을 더욱더 발전시켜 완벽한 무대를 만들고 싶은 안무가로서의 욕심이 컸다.
공연 당일.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객석의 긴장이 커짐을 느낄 수 있었다. 피날레를 장식한 작품은 이준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형상화한 ‘송시-열사를 기리며’였다. 한국 춤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다이내믹한 창작 춤의 매력이 커다란 에너지로 폭발했다.
무용수들은 여러 가지 힘든 조건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잊은 채 혼신의 힘을 다해서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 냈다. 한국 춤의 절제된 춤사위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다가 타국의 하늘 아래서 유명을 달리한 이준 열사의 혼을 기리는 하나의 기도가 됐다.
나는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 춤이 ‘메이드 인 코리아’ 문화 상품으로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한국 춤의 독창성, 한복의 우아한 선과 색감, 한국 음악의 우수성,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무용수의 테크닉과 저력을 잘 포장해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꼈다.
다만 한 가지, 연습 과정에서 남몰래 곱씹었던 생각이 있다. 현지 연습 장소는 네덜란드 최고의 예술학교인 로열 컨서버토리였다. 그곳의 분위기는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이 모인 학교라기보다는 예술가의 커다란 공동작업실 같았다. 곳곳에 창작의 활기가 넘쳤다. 그곳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예술 강국으로 발돋움하기에 한국 예술에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단순히 열정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한국 예술에서는 ‘장인정신’이 잊혀지고 있다. 전통 계승과 실험정신을 동시에 요구하는 현대 예술계에서 자기만의 색깔로 무대에 서려면 하나만을 깊이 파고드는, 하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장인정신이 꼭 필요하다.
젊은 후배 예술가에게 용기와 패기 못지않게 ‘끝없는 인내’를 꼭 당부하고 싶다. 세계무대에 당당히 서서 관객에게서 깊은 교감을 끌어내는 날을 맞기까지는 오랜 인내의 세월이 필요하다.
빡빡한 시간의 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예술이 가져다주는 안식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원시시대 예술은 치료와 주술의 목적이 강했다고 한다. 현대에도 예술이 제공하는 정신적, 심리적 위로는 매우 중요하다.
무용은 무대 위에서 언어의 도움 없이 몸 하나만으로 관객에게 온 마음을 표현해 전달하는 예술이다. 무용수로서 현대인의 마음을 달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받은 삶이다.
젊은 무용가에게 쓰디쓴 인내를 이겨 내는 뜨거운 열정을 다시 한 번 당부한다. 그럼으로써 세계무대에 제2, 제3의 최승희, 강수진이 하루빨리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명 숙 이화여대 교수·무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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