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전문위원들은 보고서에서 주먹구구식 예산안을 해부해 놓았다. ‘정보화’를 핑계로 행정자치부, 농림부, 해양수산부가 저마다 영세농어촌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고 홈페이지를 구축해 주는 예산을 책정했다. 문화관광부는 정보통신부가 이미 개발해 놓은 콘텐츠 유통 표준을 내년에 개발하겠다며 세금을 쓰려 한다. 농림부는 수년간 송아지 값 차액 보전을 위한 기금 263억 원을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또 57억 원을 요청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나라당을 향해 “깎을 부분이 있으면 대 봐라”고 했다.
정부는 공무원 증원에 따른 국민 부담 증가는 외면한 채 ‘공무원 임금 동결은 공무원 불만 요인’이라며 국회를 압박한다. 여러 대형 국책사업의 대규모 낭비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는데도 ‘국민적 합의를 거쳐 추진된 사업을 실기(失機)하면 사회적 갈등과 성장동력 확충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주장을 들이댄다. 21개 대통령자문위원회가 요청한 310억 원의 예산에 대해서는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국정 운영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한다. 정부는 ‘거품 예산안’에 대한 국회 예결특위 전문가들의 지적조차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다.
여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까지도 정부가 둘러대는 궤변에 또 넘어갈 것인가. 상임위원회별 심의 때 삭감은커녕 여야가 증액을 요구한 금액이 총 1조4000억 원 이상이라고 하니, 한나라당의 예산 삭감 당론(黨論)도 한번 해본 소리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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