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귄터 라인케/한국인 때론 “No” 필요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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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진 1997년 말 한국 베링거인겔하임의 부사장으로 부임했으니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젠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지만 한국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당황스러운 일이 많았다. 당시 전 국민이 참여했던 ‘금 모으기 운동’은 내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은 그것이 한국인의 뜨거운 애국심의 발로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전 국민이 사재를 털어가며 국가적 목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동참하는 모습은 생소하기만 했다.

또 한편으로 어색하고 의아했던 것은 비서가 매일 아침 나를 위해 커피 서비스를 하는 일이었다. 독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사회에서 비서가 상사에게 커피 심부름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설사 커피 심부름을 시키더라도 매우 정중하게 부탁해야 한다. 직장 생활에서도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 군말 없이 해주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서 회식을 결정짓는 경우에도 별 차이가 없었다. 부서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서 정해져야 할 회식 날짜가 부서장의 일방적인 통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런 갑작스러운 통보에, 분명히 선약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모두가 군말 없이 참석하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한국과 유럽의 다른 문화에서 오는 업무 스타일의 차이로 이해하고 있다. 다양한 개성보다는 일체감을 더 강조하는 한국적 업무 스타일은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단기간 안에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변화를 추구하는 경우에도 큰 이견 없이 따르기 때문에 편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사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힐 수 있고 상사의 잘못된 점을 지적할 수 있는 태도와 근무 환경도 때로는 필요하다.

한국과 독일의 합자기업인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전통적 한국 기업과는 달리 의견을 개진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때론 각자의 의견을 반영하기보다는 상사의 결정을 기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를 푸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업무처리의 속도나 성과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의 스피드가 늘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공론화해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진행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이를 마음속에 품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의견이 상사의 의견과 대립된다고 할지라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다양한 의견이 수렴돼 올바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약력: 1951년 독일 쾰른 태생으로 하겐 운트 도르트문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부터 베링거인겔하임에 재직해 왔다. 젊은 시절 독일에서 12년간 프로축구팀 2부리그 선수로 뛰었을 만큼 축구애호가. 요즘은 한국 거주 독일인들로 구성된 ‘김치축구팀’에서 매주 볼을 차고 있다.

귄터 라인케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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