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 새지평]「신랑 과잉시대」에 대한 걱정

  • 입력 1997년 1월 21일 20시 14분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잖다」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말짱 헛것이다. 딸 아들 구별않고 똑같이 상속을 받게 하는 등 아무리 제도적으로 남녀평등 장치를 마련해 봤자 아들에 대한 열망은 갈수록 더 심하다. 아니 의학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필요없는 딸을 낳는 수고조차 생략하고 곧장 아들만 골라서 낳기도 한다. 갓 결혼한 부부들은 아이는 하나 이상 낳지 않겠다며 이왕 낳을 것, 아들이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상당히 효율적인 이유를 내세운다. 그리고 일찌감치 단산했던 중년부부들은 시들어가는 생활의 활력소라는 상당히 정서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늦둥이를 낳되 역시 아들을 선호한다. ▼ 남아선호 뿌리뽑힐까 ▼ 이미 20년전부터 슬슬 초등학교에 「홀아비반」이 생기기 시작해서 일부 남자아이들을 슬프게 만들더니 드디어 2010년쯤에는 신부감을 찾지 못하는 신랑들이 거리에 넘쳐날 것이라는 통계청의 경고가 나왔다. 지금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는 그 때 쯤에는 신부감 1백명에 신랑감은 1백23명이나 되는 심한 불균형 상태를 이룬다는 것이다. 한때 결혼을 못한 농촌 총각들이 결혼 사기를 당하거나 자살까지 해서 도시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똑같은 일을 놓고도 언제나 낙관론자와 비관론자가 갈리는 건 이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워낙 아들 아들 하면서 딸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해온 사회가 마땅히 겪어야 할 운명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은 신부파동을 계기로 끈질긴 남아선호사상의 뿌리가 뽑힐지도 모르잖느냐고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다. 결혼 못한 아들 때문에 괴로움을 겪다 보면 「딸이 더 좋아」라는 구호가 정말 설득력을 발휘할 것이며 따라서 요원하기만 한 남녀평등이 조금쯤 앞당겨지리라는 예측이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아픔이 너무 크다 보면 성숙은커녕 몸 자체가 온통 곪아 터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렇지 않아도 출세와 성공을 지상목표로 삼으며 인생을 전쟁터처럼 살아가는 남성들이 신부쟁탈전까지 일으킨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 것이며 또 세상은 얼마나 황량해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또 인간의 기본권을 원초적으로 봉쇄당한 패자들이 시시때때로 일으킬 게릴라전은 얼마나 참혹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그 때가 되면 필연적으로 여성의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기대는 너무 소박한 환상일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승자들이라고 해서 마음 놓고 살라는 법도 없을 터이다. ▼ 끔찍해질 「신부쟁탈전」 ▼ 또 세상 일에 달관한 척하는 이들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어정쩡한 전망을 하기도 한다. 걱정할 거 없다. 역사적으로 신랑과잉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때마침 전쟁이나 질병 또는 천재지변이 발생해서 자연적으로 남녀 성비가 조절되어 왔잖느냐고. 만의 하나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2010년쯤에 당장 일어날 일은 아마도 신부 수입 신랑 수출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되면 내내 입으로만 떠들던 세계화가 네댓 집 걸러 저절로 이루어지는 셈이니 할 일이 대폭 줄어들 정부는 또 무슨 구호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朴 惠 蘭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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