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도서]임준서/'문명공존' 시각으로 되살린 佛역사

  • 입력 2001년 11월 9일 18시 44분


▼‘붉은 브라질’ 쟝-크리스토프 뤼팽 지음/갈리마르▼

5일 발표된 2001년 공쿠르 문학상의 영예는 쟝크리스토프 뤼팽의 역사 소설 ‘붉은 브라질(Rouge Bresil)’에 돌아갔다.

프랑스와 누리시에 공쿠르 위원장은 10인 위원회의 여섯 번에 걸친 비밀투표 끝에, 수상작 ‘붉은 브라질’이 마크 랑부롱의 ‘한밤의 이방인들’(그라세)을 한 표 차이로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의사 겸 소설가인 쟝-크리스토프 뤼팽(Jean-Christophe Rufin·49)은 97년에 발표한 또 다른 역사소설 ‘아비시니아’(‘혼혈인’이라는 뜻)로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올 8월말 출간된 ‘붉은 브라질’은 공쿠르상 수상 전에 이미 7만5000부나 팔린 인기 소설이다. 한 공쿠르상 심사위원이 심사 후 소감에서 밝혔듯이, 550쪽이나 되는 장편 역사소설이지만 전혀 지루함 없이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 아마도 이 소설 속에 가득한 흥미진진한 모험과 살아숨쉬는 듯한 활력이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이 소설은 단순히 흥미 본위에 그치지 않는다. 수상선정 이유에서도 밝혔듯이, 이 소설에서는 “세밀하게 조사된 실재 역사적 사실들이 작가의 상상의 나래를 타고, 잊혀졌던 프랑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1555년 프랑스 왕의 명령을 받고 ‘남방 프랑스’를 개척하러 브라질로 떠나는 말타의 기사 빌갸농의 탐험기 형식이다. 자연스런 대화식 서술방식과 옛스런 어휘와 문장 구성을 통해, 작가는 어느새 16세기 프랑스로 거슬러 올라가 독자들을 이야기의 무대인 신대륙의 브라질 해안으로 침잠시키는 비상한 재주를 보여준다.

늘 타문명과의 ‘만남’을 동경하는 작가는 16세기 두 문명간의 첫 만남을 서구적 시각으로만 보지 않으려는 배려 속에, 서로 대립하는 두 쌍의 등장인물들을 의도적으로 내세운다. 말타의 기사인 빌갸농과 아마존 숲 속에서 양육된 프랑스인 페이로, 거짓 유혹에 속아 헤어진 아버지를 찾겠다고 배에 올라탄 두 남매 쥐스트와 콜롱브를 등장시켜 이야기의 복선을 깔고 있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은 모두 야만이라 부른다”고 수상록에서 말한 몽테뉴식의 ‘인식의 전환’을 작품 곳곳에서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는 허구 속에 반영된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찾아보는 것이다. 뤼팽은 17세까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고 ‘국경 없는 의사회’ 창설 주역으로서 말타에서 구호활동을 한 적이 있다.

소설 주인공을 닮은 작가 뤼팽은, ‘국경없는 소설가’로 남기를 원하며 늘 미지의 세계로 떠날 채비를 하는 영원한 방랑자이다.

언젠가 그가 동쪽 끝 한반도로 다가와, 프랑스와 한국의 첫 만남을 소재로 한 편의 역사소설을 써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한국인 독자의 지나친 욕심일까?

임준서(프랑스 LADL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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