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LA리포트]제3의 후보 '네이더 변수'

  • 입력 2000년 11월 8일 23시 40분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는 누가 승자인가에 상관없이 미국이 다양한 이슈와 가치관을 놓고 너무도 팽팽하게 분열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근래의 미국 대통령선거로는 유례 없이 유권자들의 득표에 있어서뿐만이 아니라 선거인단수에 있어서도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표과정 끝까지 주목받아▼

그 결과 당선자 발표가 유례 없이 늦어지고 미국 방송들이 플로리다주를 간발의 차이로 차지한 조지 W 부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당선자로 발표했다가 플로리다주의 표를 재검표하는 촌극을 겪어야 했으며 부재자 우편투표의 개표가 다 끝나기 전에는 승자를 확정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여성 유권자, 부시는 남성 유권자로부터 많은 표를 얻어 남성용 대통령과 여성용 대통령이 따로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원과 하원도 양당의 의석이 간발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즉 새 대통령과 새 의회가 국민으로부터 전적인 권력의 위임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정치는 당분간 양당, 나아가 양당의 지지세력들간의 힘 겨루기에 의해 표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이번 대선에서 주목할 것은 ‘네이더 변수’, 즉 소비자운동의 효시로서 오랜 시민운동을 해오다가 90년대 이후 가시화된 민주당의 우경화에 따라 기존정당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제3의 당인 녹색당을 만들어 출마한 랠프 네이더후보라는 변수입니다.

네이더후보는 선거과정에서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역시 시장만능의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적인 지구화에 찬성하고 있으며 세계를 더욱 부유해지는 소수의 20%와 더욱 가난해지는 80%로 분열하는 20대 80의 사회로 몰고가는 초국적 기업들의 정치자금의 포로가 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정치에 새로운 진보적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네이더의 출현은 민주당의 우경화에 따라 대안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민주당 내 진보세력과 젊은 유권자들을 정치과정에 다시 불러들임으로써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고 이들의 이탈을 우려한 고어후보로 하여금 진보적 입장으로의 방향수정을 강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네이더 변수는 이번 대선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개표과정에서 끝까지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물론 제3의 당 실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얼마전 만해도 엄청난 재산을 자랑하는 거부인 로스 페로가 개혁당을 만들어 상당한 득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네이더후보는 페로의 득표에 못 미칠 뿐만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자신들이 모금하는 정치자금에 상응하는 연방정부의 정당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5%의 득표에 훨씬 못 미치는 2%대의 득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특히 선거전 막판에 고어후보가 다시 부시후보에 뒤지기 시작하면서 ‘네이더에게 표를 주는 것은 진보세력이 싫어하는 부시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라는 민주당의 선전이 네이더 지지자들에 먹혀 들어가면서 네이더의 득표는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2%대에 불과한 득표에도 불구하고 네이더 변수가 이번 대선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은 이번 대선이 너무도 팽팽하게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직접적으로 대통령을 결정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민의의 지표인 유권자 투표만 하더라도 네이더의 표를 고어가 가져갔다면 고어가 부시를 상당히 앞섰을 것입니다.

▼녹색정당 성공여부는 의문▼

미국 대통령을 결정하는 선거인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양 후보의 선거인단 득표가 거의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승자가 결정되지 않은 것은 540석의 선거인단 가운데 5%에 해당하는 25석의 선거인단을 갖고 있어 이번 대선의 승패를 결정하게 된 플로리다주의 승자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치열한 경합이 벌어진 것은 바로 네이더후보가 얻은 표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플로리다주의 경우 네이더에게 간 표가 고어에게 갔다면 재검표 소동을 겪을 필요가 없이 고어가 승리했을 것입니다.

유럽에서와 같이 미국에서도 진보정당, 특히 녹색정당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그러나 ‘네이더 실험’은 미국 대통령선거에 이미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네이더 변수는 당분간 미국정치, 특히 민주당의 중요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며 고어가 당선되더라도 네이더 진영과 고어 진영간에 손가락질이 오갈 것입니다.

손호철(서강대 교수·현 UCLA 교환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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