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준의 재팬무비]엽기적인 일본문화? 말도 안돼

입력 2000-12-13 10:05수정 2009-09-2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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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에서도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도 일본 사람들을 꽤나 만나게 됩니다. 이재용 감독의 신작 <순애보>는 아예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의 삶을 번갈아 그리고 있습니다. <순애보>를 계기 삼아 어디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볼까요. 영화 속에서 일본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지.

먼저 <떠오르는 태양>이 있습니다.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필립 카우프먼 감독이 마이클 크라이튼의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일본인 역할을 주로 맡는 낯익은 얼굴이 있습니다. 특히 요시다 역을 연기한 '마코(Mako)'는 대표적인 배우입니다. 이름과 얼굴이 매치가 잘 안되겠지만 얼굴을 보면 대부분 '아, 이 사람' 할 겁니다. 야쿠자를 연기하는 캐리 히로유키 다가와도 낯익은 얼굴입니다.

배우뿐 아니라 영화 속 일본인들의 캐릭터도 어찌 보면 낯익습니다. 낯선 사람을 소개받으면 절을 꾸벅꾸벅 잘하는, 그러나 돌아서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본인들. 심지어 젊은 야쿠자 보스는 벗은 여인 몸 위에 회('사시미'라고 하는 편이 실감날까요?)를 얹어놓고 먹기까지 합니다. 이런 엽기적인 모습, 우리가 알고 있는 피상적인 일본인의 모습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장면이 꽤나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거지요. 억울할 법도 합니다. 실제로 일본 사람들이 모두 이처럼 엽기적인 것은 결코 아닐 테니까요. 일본 사람들도 실제 생활은 대부분 우리랑 비슷하겠지요.

문제는 지하 유통망을 통해 나도는 일본제 불법 포르노 영화에 이런 엽기적인 장면들이 정말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겁니다. 이 글을 쓰는 사람만 하더라도 입에 담기도 차마 민망한(그러나 사석에서는 전혀 민망하지 않게 입에 담는) 일본제 엽기 장면들을 꽤나 봐왔습니다. 그때마다 일본 사람들은 모두 저런가, 하고 놀라곤 했지요. 하지만 역시 그건 그저 포르노 영화일 뿐 일본 사람들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멀 겁니다. 영상과 실생활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건 여기에도 해당되겠군요.

<떠오르는 태양>이 다소 과장됐다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레인>은 좀더 생생합니다. 마이클 더글러스와 앤디 가르시아가 주연하고, <철도원>의 다카쿠라 겐이 출연하는 영화입니다. 야쿠자들의 삶이 비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부분도 있지만, 일본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 같은 것은 비교적 그럴싸하게 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치고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어찌 됐건 흥미진진한 액션 영화입니다.

이재용 감독의 <순애보>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사실적입니다. 일본인들이 요즘 가장 걱정하는 문제들이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기성 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단절, 버블 경제가 무너진 뒤 불황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직장인들, 스와핑….

물론 이런 것들이 일본인들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아이스 스톰> 같은 영화를 보면 미국인들 역시 '중태'로 보이니까요. 우리 나라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인과 주위 사람들이 겪는 삶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경제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가족 사이의 유대가 흩어져버린 예들이야 굳이 멀리까지 가서 찾을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그래서 <순애보>는 좀 아쉽습니다. 주인공 우인과 아야는 현실의 모든 문제들을 뒤로 하고 이상향으로 날아가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까. 두 사람 개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결말이긴 하겠지만, 한 번쯤은 뒤에 남은 사람들 생각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모든 것 제쳐 두고 저 멀리 떠나가 사랑이나 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되지만, 무턱대고 배낭을 싸고 비행기를 탄다고 해서 일본과 우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심각하게 얘기되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김유준(영화칼럼리스트) 6609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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