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너무도 쓸쓸한 당신’

  • 입력 2006년 3월 1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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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쓸쓸한 당신/박완서 지음/303쪽·7500원/창비

노년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힘겨운 세월을 허겁지겁 살아내느라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인생의 저편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말은 아닐까?

우리는 흔히 인생의 커다란 굽이를 넘긴 노년의 삶에 대해서 어른으로서의 연륜과 권위를 생각한다. 또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로움과 여유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단편소설집을 통해 드러나는 소설 속의 현실은 노년의 삶이 결코 단순하거나 만만치 않음을 보여 준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처럼’의 어머니는 맏며느리로서의 체통을 지키느라 욕망과 감정을 숨기고 살아온 분이다. 한숨소리 한 번 못 내고 일생을 잔뜩 오므리고 사신 그 어머니가 하필이면 항문의 ‘고무줄’이 빠져 구박과 수모를 겪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노화로 인한 신체 변화나 그에 따른 낭패감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환각의 나비’에서 딸네 집에 살고 있는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서도 아들네로 가겠다는 집념에 가득 차 있다. 노후를 아들과 보내고 싶다는 어머니들의 오래된 소망 때문이 아니다.

아들이 있는데도 딸네에 의탁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치욕이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다. 사실 우리 앞에 가로놓인 통념이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가.

작가는 도저히 우리의 관심거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작고 사소한 사건들 속에서 우리네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상에서 우리들의 가식과 위선을 얄미울 정도로 차곡차곡 풀어내는 것은 박완서만의 특기이기도 하니까….

얽히고설켜 꼬여만 가는 우리네 삶 속에서 내 남편과 아내를, 그리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니 그것이 꼭 우리 윗세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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