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재호]한중 관계 위기 벗어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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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한중 관계가 위기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북한이 올 1월 6일 제4차 핵실험을 한 데 이어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국은 수교 이래 ‘최상’이라는 양국 관계에 걸맞게 대북 제재에 전폭적인 기대를 했지만 중국은 우리 기대에 따라주지 않고 있다. 한미 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협의를 공식적으로 시작함에 따라 한중 양국 관계는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에 따라 한중 관계는 오히려 공고해질 수 있다.

대북 제재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뼈아픈 대가’는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였다. 개성공단 건은 우리만의 결정으로 가능하지만 사드는 주변국, 특히 중국과 관련이 있다. 사드 배치가 결정되면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으로 기록될 것이다. 펑유란(馮友蘭)의 철학책을 즐겨 읽고 삼국지의 조자룡을 좋아한 ‘중국 인민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박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한중 관계와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한중 관계 악화에 따른 비용은 만만치 않다. 양국 경제·무역 관계에 분명히 영향이 있다. 지난해 4분기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중국의 두 번째 교역 파트너가 되었지만 다시 자리를 내줘야 할 것이다. 속성상 중국 기업들은 한국과의 무역·투자를 알아서 축소하고 중국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릴 것이다. 고위 지도자들의 상호 방문이 급감하고 군사 교류도 격하될 것이다. 중국이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면 한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사실 박 대통령의 최대 외교업적은 한중 관계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합의를 이루었지만 한일 관계는 암초가 많다. 남북 간 신뢰프로세스는 임종(臨終) 직전이다. 최상이라던 한중 관계마저 어려워진다면 박 대통령의 외교 레거시(legacy)는 신기루로 끝난다. 박(朴)-시(習) 최상의 조합 아래에서도 한중 관계가 제대로 안 된다면 향후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대중(對中) 외교는 접어야 한다.

위기에 빠진 한중 관계를 어떻게 안정시켜야 할 것인가? 이번 유엔 안보리 결정이 우리 기대에 충분하지 않더라도 중국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중국은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 제재)이 대부분 자국 몫이기 때문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북 제재 내용은 우리의 기대와 다를 것이며 수준도 낮을 것이다. 한미가 사드를 논의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특히 사드와 관련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참석에 앞서 대통령의 방미를 두 달 전 조기 발표하는 등 미중 사이에서 보였던 절정의 균형 감각이 다시 필요하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미국의 중국 압박에 적극 동참하는 한국이 더 야속할 수 있다. 일을 만든 북한을 혼낼 겨를도 미워할 틈도 없게 된다. 중국도 한국의 난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닌 만큼 한국의 ‘배려’를 원한다. 사드 배치 공식 협의를 선언했지만 결정에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동북아 정세는 항상 변화가 많은 만큼 사드가 지금은 첨예한 문제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고 다른 이해관계가 생길 수 있다. ‘시간이 금(金)’이다.

이번 위기를 잘 넘긴다면 양국의 신뢰가 배증될 수 있다. 시 주석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 앞서 박 대통령과 먼저 통화한 것은 여전히 한국을 중시한다는 신호인 만큼 중국이 내민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한중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통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박 대통령의 선택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한중#북한#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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