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의 현주소]전문가기고/선행학습 효과 2~3% 불과

  • 입력 2002년 4월 29일 17시 26분


“엄마, 애들이 구구단 시합하자고 해서 못한다고 하니까 놀리고 같이 놀아주지도 않아요.”

어느날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울상을 지었다. “그런 옹졸한 아이들의 말에는 신경을 쓸 것 없다”고 달래기는 했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외국보다 2년은 빨리 배우는 구구단을 그것도 정상 진도보다 한 학기 먼저 술술 외을 정도로 선행학습이 넓게 퍼져 있다. 학부모들은 정말 웬만한 소신과 배짱이 없으면 이런 ‘앞서 배우기’ 행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학원들은 “학교 진도에 따라 정상적으로 공부하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원에서 먼저 배우고 학교에서는 복습을 해야 한다”고 학부모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과 교사들은 선행학습의 폐해를 강조한다. 설사 선행학습을 하더라도 따라갈 수 있는 아이들은 전체에서 2∼3%에 불과하고 그나마 한 학기 이상 앞서 배우는 것은 아이들의 인지 능력상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을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 숙제를 하기 위해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도 답을 베끼고 있다고 한다. 교사들은 온갖 사교육과 선행학습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더 둔해지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학원에 간다고 똑똑해지나요. 부모가 가라니까 학교와 학원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만 하는거죠. 어제 배운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답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어요.”

그러면 왜 학부모들은 전문가들과 교사들의 지적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학원의 상혼(商魂)에 놀아나는 것일까.

이는 공교육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다 학벌중시 풍조가 견고한 사회 속에서 부모들이 집단적으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극도의 경쟁 사회에서 우리 아이가 혹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아니, 이런 것도 안하고 아이를 대학에 보낼 작정이냐”는 학원측의 은근한 으름장 앞에서 상식적인 판단은 접어두기 일쑤다.

선행학습이 정말 필요한 것일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선행학습이 필요하다면 하루치 예습이면 충분한데도 부모들은 무자비한 스파르타식 교육에 아이들을 내몰고 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이 어디까지 먹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많은 아이들은 부모들이 그토록 바라는 대입의 골문에 다다르기도 전에 지쳐 쓰러지거나 예측할 수 없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설사 ‘점수 엘리트’가 된다 한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대단하게 풍요해질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 정 희(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운영위원·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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