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이민 100주년]<9>교육이민&조기유학

  • 입력 2003년 2월 17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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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리오의 최근 콘서트 리허설 장면.
안트리오의 최근 콘서트 리허설 장면.
미국에서 실내악 연주가로 우뚝 선 안(安)트리오는 1981년 어머니 이영주씨의 손에 이끌려 조기유학을 떠났다. 마리아(첼로·32), 루시아(피아노) 쌍둥이 자매와 동생 안젤라(바이올린·30)가 배웠던 레슨이 전두환(全斗煥) 5공 정권의 교육개혁 조치로 과외금지 목록에 오른 것이 직접적인 계기.

줄리아드음대를 졸업한 세 자매는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고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정상급으로 성장했다. 이씨가 조기유학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안 트리오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1992년 고교 1학년 때 미 동부로 이민간 E씨(27). 미국 내 명문 사립학교에 입학했다가 공립으로 전학했다. 동급생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본 아버지가 기겁을 한 때문. 한국에서도 중상위권이었던 그는 동부 명문대를 졸업, 현재 국내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증권맨이 됐다.

▼연재물 목록▼

- [미국이민<8>]그늘속의 불법체류자들
- [미국이민<7>]동포들이 말하는 한국의 이민정책
- [미국이민<6>]코리안 아메리칸 '나는 누구인가'
- [미주이민<5>]‘교포 사랑방’ 한인교회
- [미주이민<4>]소수민족 거주지서 美 문화공간으로
- [미주이민<3>]한국魂 알린다
- [미주이민<2>]IT등 첨단분야 도전…
- [미주이민<1>]“태평양 건너엔 돈나무가…”

90년대 초반까지 조기유학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준 1997년 이후 조기유학과 교육이민은 중산층에도 친숙한 대안(代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가을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0∼2002년 상반기 서울 강남 서초 강동 송파 등 4개구에서 인문계 고교를 다니다 해외 유학을 떠난 학생만 무려 2713명. 비슷한 시기 전국 20세 이상 성인 1579명에게 ‘교육이민을 갈 의향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41.5%가 ‘있다’고 답했다.

온누리이주공사 안영운 사장은 “요즘 이민 상담자의 70∼80%는 자녀교육을 거론한다”고 말했다. 유연희 신세계이주공사 이사는 “사교육비가 거의 안 들고 수업방식 역시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조기유학이나 교육이민이 아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이를 망친 사례는 친지간에도 알리길 꺼리기 때문에 조기유학의 긍정적인 면이 과대 포장되는 경향은 있다. 설사 학업성적은 만족스럽더라도 부모와 가치관이 달라져 가족연대가 무너지는 사례도 잦다.

중학생 때인 1993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간 B씨(24). 캐나다 사회의 자율적인 분위기와 사춘기가 겹치면서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아버지가 싫어졌다. 몇 차례 말다툼을 벌인 그는 아버지를 증오하게 됐고 가출이 잦아졌다. 급기야 마약, 술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아버지와 남남이 됐다. 이민 초기 공부를 잘했던 그는 아직도 고교 졸업장이 없다.

부산에서 고교를 다니다 199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조기유학을 떠난 C씨(22). 형편이 넉넉했던 부모를 뒀던 C씨는 항상 용돈이 넘쳐났다. 공부에 뜻이 없던 그는 용돈을 모아 고급 스포츠카를 샀고 어학연수를 온 6세 연상의 한국 여성을 만나 동거까지 했다. 뒤늦게 로스앤젤레스로 달려온 부모는 땅을 쳤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유치원에 다니다 로스앤젤레스로 이민간 P씨(27)는 대학을 졸업한 뒤 코리아타운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부모에게는 “자립하고 싶어서”라고 말했지만 간섭이 싫어서였다. 그는 친구들과 마약에 빠지면서 폐인이 됐다. 청소부 일로 겨우 생계를 꾸리는 그를 이젠 부모도 찾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다음으로 한인들이 밀집한 뉴저지 팰리세이즈파크. 이곳 린드버그 초등학교에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학생 비중이 51%(2002년 기준)나 된다. 스페인어(26%) 영어(20%)를 구사하는 학생들보다 훨씬 많다. 팰리세이즈파크 중고교도 한국어 학생 비율이 2년 전보다 8%포인트 높아진 38%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민 온 학생보다 조기유학생이 더 걱정스럽다. 뉴욕 주커힐사이드 병원의 조용범 박사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16∼17세 고교생 227명을 조사한 결과 조기유학생은 같은 또래의 이민자 자녀에 비해 우울증 평균수치가 23%나 높고 ‘자살충동’은 무려 90%나 높게 나타났다.

조기유학생은 한국 내에서 느꼈던 입시 중압감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데다 낯선 환경에서의 문화적 갈등, 소외감 등으로 훨씬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조 박사는 “학생들에게 무조건 ‘적응’을 강요하는 것은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한국 부모들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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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민-조기유학 Q&A▼

▽전옥경 원장▽

―조기유학의 ‘평균 성적표’는 어떤가.

“미국은 대개 기숙사에서 지내기 때문에 성공확률이 70%를 넘지만 캐나다 호주 등은 아이들을 방치하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이 더 높다. 가족들이 그곳에서 뼈를 묻겠다면 몰라도 자식교육 때문에 이민 등을 가는 것은 문제다.”

―그래도 가겠다면 아이가 몇 살쯤 가야 하나.

“아이가 고교에 입학하면 대개 부모 나이가 40대 후반을 넘겨 현지에서 적응하기 어려워진다. 정체성이나 국가관이 뚜렷하지 않은 초등학교 학생이 유학 가는 것은 권장할 일이 못된다. 교육이민을 가려 한다면 국내에 남을 때와 비교해보는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보고 현지 취업 가능성이나 학교 답사도 해야 하는 등 아무리 짧아도 반년 이상 걸린다.”

―조기유학은 누구와 함께 가야 하나.

“어머니만 따라가는 ‘기러기유학’은 어머니들이 현지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부모가 함께 가는 가족동반 유학은 아버지가 집에서 놀게 되는 경우가 잦아 가정교육에 문제가 생긴다. 기숙사가 딸린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자주 점검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조기유학시 가장 필요한 학습능력은….

“쓰기(writing)다. 가서 영어공부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늦는다. 한국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쓰기 교육을 안 시킨다. 수학은 1, 2개월 집중하면 따라갈 수 있지만 쓰기는 어림도 없다.”

▽노영호 미국변호사▽

―관광비자로 미국에서 학교 다닐 수 있나.

“공립학교와 일부 사립학교를 다닐 수 있다. 미 대법원의 판례 덕택이다. 그러나 이는 교육관련 법규에 적용될 뿐 이민법상 불법이다. 영사가 알면 비자가 취소된다. 캐나다는 대법원 판례가 없어 아예 불가능하다.”

―관광비자로 입국해 현지에서 학생신분 비자(F-1)로 바꿀 수 있나.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한국과의 자유로운 왕래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입국 직후 곧바로 학교에 입학했다든지 ‘입국 전부터 변경의도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불법이다. 9·11테러 이후엔 아예 관광비자를 F-1으로 바꾸기조차 어려워졌다.”

―교환학생프로그램 등에 따라 학생이 방문비자(J-1)로 미국에 입국해 비자를 바꿀 수 있나.

“‘2년 금지조항(two-year rule)’이 붙어있다면 다시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머문 뒤 비자를 재신청해야 한다. 이 조항이 없다면 현지에서 F-1 등으로 비자를 바꿔 더 오래 체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민국이 내준 일종의 ‘연장허가증’으로 미국을 떠나는 순간 효력을 잃게 된다. 미국에 재입국하려면 다시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전력(前歷)’ 탓에 훨씬 엄격한 심사를 받는다.”

―부모가 학생비자(F-1)나 투자비자(E-2) 등으로 입국, 자녀를 교육시킨다면….

“편법이지 불법은 아니다. 다만 최근 미 이민국의 입국 외국인들에 대한 감시체제가 크게 강화됐다.”

▼특별 취재팀▼

홍권희 뉴욕특파원 konihong@donga.com

박래정 국제부기자 ecopark@donga.com

김정안 국제부기자 credo@donga.com

김선우 사회1부기자 sublime@donga.com

강병기 사진부기자 arch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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