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는 이같은 내용의 이른바 ‘생명선언증’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늘고 있다. ‘생명선언증’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갔을 때 의사가 의식없는 환자의 동의없이 안락사시킬 것을 우려해 이런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는 증서.
증서에는 “나는 생명을 끝내는 어떤 의학적 조치도 원치 않는다. 인간은 ‘죽을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생명선언증을 품고 다니는 사람은 약 1만여명. ‘네덜란드 환자 연합회’산하 ‘생명 희망 선언 기금’ 등 안락사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증서를 나눠주고 있다.
네덜란드인이 이같은 증서를 갖고 다니게 된 것은 정부가 유럽국가 중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안락사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 네덜란드 정부는 사실상 안락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아예 이를 합법화한 후 엄격히 통제하겠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그러나 안락사를 합법화할 경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이를 택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의사들이 가망없다고 판단되는 환자를 임의로 안락사시키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네덜란드 정부가 안락사여부 실태를 조사한 결과 소생가망이 없는 말기 환자는 연간 2만5천여명에 이르며 이 중 3천명이 ‘편안한 죽음’을 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의사의 23%가 “가망없는 환자의 경우 본인이나 보호자 동의 없이 안락사시킨 경험이 있다”고 응답해 환자가 원하지 않는 죽음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크리스찬 의사협회’ 등 안락사에 반대해 온 의사들은 “앞으로는 환자를 죽이는 것이 의사의 새로운 업무가 될 전망”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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