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해법’ 與野대표에 듣는다]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입력 2004-09-19 18:39수정 2009-10-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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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와 인터뷰를 가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어조는 시종 단호했다. 박 대표는 여권이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한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사실이라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서영수기자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와의 인터뷰는 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 대표실에서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박 대표는 이날 “당내 합의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국가보안법 2조 중 ‘반국가단체의 정부 참칭(僭稱) 조항’은 삭제할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또 과거사 진상 규명과 관련해서는 대한민국 체제 위협 세력에 대한 진상조사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의 강탈 주장이 틀렸다는 자료를 갖고 있다. 법적으로 시비가 가려진 뒤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와의 인터뷰는 국보법 개폐를 둘러싼 여야 대치 정국의 해법을 찾기 위해 본보가 기획한 여야 대표 연쇄 인터뷰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3일 이뤄졌다. 박 대표의 인터뷰는 당초 지난달 중순 예정됐으나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전 의장의 낙마(落馬)와 박 대표의 9일 긴급 기자회견 때문에 미뤄졌다. 》

■당 운영 및 개인 문제

―당명 개정은 어떻게 되고 있나.

“지금 진행 중이다.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다. 당내에 당명 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이 만들어져 활동 중이다. 적절한 시점에 당명 개정을 발표할 것이다.”

―호남 충청권 등 서부벨트의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카드가 있나.

“‘서진(西進)정책’이라는 표현도 쓰는데 이는 전략적인 접근의 의미를 갖고 있어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런 표현 자체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동안 호남 분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전략을 갖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잘해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지지를 받겠다는 것이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 문제는 법으로 가려야 한다. 여당에서는 정수장학회의 재산이 남의 재산을 강탈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자료가 있다. 법으로 가리고 나서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거취 문제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냥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 여당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된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기념관 설치가 늦어지고 있다.

“기념관 설치는 처음에 정부가 승인을 해 추진된 사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회에서 통과한 관련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 정권은 (기념관 설치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기념관 설치가) 안 될 것으로 알고 있다.” ―당내에서 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좌시하지 않겠다’고 대응했는데….

“예전에는 계파가 있어서 계파 소속 의원이 대신 얘기해 주었지만 이제는 계파가 없어진 만큼 내가 직접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한번은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보안법과 남북관계

―국보법 개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

“당에서 중지를 모아야겠지만 체제를 지키는 데 지장이 없다면 국보법 2조의 ‘정부 참칭’ 조항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체제를 지키는 데 지장이 있다면 이 조항을 없앨 수 없다. 이렇게 여야간에 논의해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개정을 하자는 게 한나라당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느닷없이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바람에 여야간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끝까지 국보법 폐지를 밀어붙인다면 장외투쟁도 불사할 생각인가.

“예전 같으면 장외투쟁할 일이 많았지만 그런 정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장치인 국보법까지 위협한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저지해야 한다.”

―최근 각계 원로들이 국보법 폐지 움직임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 분들이 무슨 욕심이 있겠느냐. 누구보다도 나라 걱정이 많은 분들이다. 국가지도자라면 그 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체제 유지는 양보 못한다. 어떤 경우든 국익이 최우선이다.”

―북한은 국보법 폐지를 남북대화 정상화의 전제로 내세우고 있지 않나.

“남북교류와 관계개선은 서로 체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뒤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체제를 양보하는 것은 안 된다. 통일만을 목적으로 해서 우리가 전부 양보한다면 당장이라도 적화통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런 통일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우리가 북한측에 ‘노동당 규약을 없애라’고 요구한다면 북한이 받아들이겠나.”

―남북간 관계개선을 위한 중개자 역할을 하겠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나.

“누구든 남북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권에서 확인도 안 된 얘기(박 대표의 대북특사 기용)를 자꾸 흘리는 의도를 모르겠다.”

■과거사 진상규명과 수도 이전

―광복 이후 현대사를 나름대로 평가한다면….

“6·25전쟁은 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야 현대사를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누가 이 체제를 위협했는지에 대해 조사하는 것도 과거사 진상규명이다.”

―여권의 과거사 진상 규명과 수도 이전 추진에 대해 정책우선 순위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있다.

“여권은 말로는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면서 제대로 된 경제대책 하나 내놓은 게 없다. 정국운영에는 우선순위가 있어야 하는데 국보법 폐지, 수도 이전 등을 (경제 문제보다) 우위에 놓고 있다. 경제 살리기에 온 국민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이념적으로 국론을 갈라놓고 있다.”

―여당이 추진 중인 신문법(가칭) 제정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언론개혁은 언론에 맡겨야 한다. 여당은 소유지분과 시장점유율 등을 제한하려고 하는데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정부 여당에 비판적인 언론만을 대상으로 개혁을 하겠다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행동이다. 언론개혁을 하려면 신문과 방송을 다 같이 해야 한다.”

■경제정책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한나라당 발(發)’ 회생 방안이 있다면….

“정부는 경제가 어려운 이유를 경기 순환 측면에서 찾으며 재정지출을 확대하려고 한다. 그러나 현 경제의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다. 한나라당은 감세정책을 통해 민간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투자와 소비를 늘려 시장기능을 살리려고 한다. 이는 수도료 전기료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저소득층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돼야 투자가 제대로 이뤄진다. 이게 없으면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경기 부양은 힘들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부동산 문제의 관건은 부정한 방법으로 소득을 얻는 것을 막는 것이다. 정부가 억지로 보유세와 거래세를 모두 강화해 부동산시장을 누르는 것은 문제다.”

정리=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단호해진 표정-어조

특유의 미소는 간간이 내보였지만, 박근혜 대표는 이전보다 더욱 단호해 보였다. 국보법 개폐 논란 이후 매일 하던 아침 운동도 자주 거른다는 박 대표의 얼굴은 까칠해 보이기까지 했다.

박 대표는 국보법 중 ‘정부 참칭’ 조항 삭제 용의를 밝히면서도 어디까지나 체제 수호가 전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여권이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국보법 폐지를 추진한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서는 ‘대통령 자격론’까지 거론하며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현 정부 여당의 정책에 대한 비판 수위도 어느 때보다 높았다. “정부 여당의 각종 정책이 좌파적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곧장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 대표는 그 근거로 한총련 합법화, 재독학자 송두율씨 처리 문제, 국보법 폐지 등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꼽았다. 노 대통령이 용산기지를 ‘간섭과 침략의 상징’이라고 말한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한 것이라고도 했다.

화제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논란 등으로 옮겨가자 그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는 “이미 정부 승인을 받았는데 현 정부는 기념관을 설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것만 봐도 이 정부가 얼마나 법과 원칙이 없는지 알 수 있다”고 힐난했다.

지난달 소속 의원 연찬회에서 비주류를 겨냥해 “대표 흔들기를 중단하라”고 경고한 것에 대해서도 “계파가 없어져 대변해 줄 사람이 없어진 만큼 직접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한 번은 이야기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잘라 말했다. 정국이 복잡해질수록 그의 미소를 볼 기회가 점차 줄어들 것만 같았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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