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메르스 후폭풍, 다인실 확대 정책 휘청 … 병원계·복지부 딜레마

  • 입력 2015년 10월 23일 11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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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실 비율 50%→70% 상향정책 변함없어, 감염병 취약 지적 … 감염예방 예산 늘려 대처하는 건 효율성 의문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여파로 병원들의 경영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추진하는 다인실(일반병실) 확대 방안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응급실 과밀화와 높은 다인실 비중이 감염병 전파의 주요인 중 하나로 지적됐지만 보건복지부는 환자 부담 절감을 위해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의 다인실 비율을 기존 50%에서 70%로 상향 조정하는 정책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이에 경영난으로 골머리를 앓던 병원계는 난색을 표했다.

다인실을 확대하면 감염병 예방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복지부는 기준 병실을 6인실에서 4인실로 전환하고 일부 1~3인실을 격리실로 운영하는 방안 등을 대책으로 내놨지만 병원계의 불만은 사드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복지부가 발표한 감염관리 종합대책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일반병상(다인실)을 7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대형병원에 일반병상이 적어 원하지 않는 데도 큰 돈을 내고 1~2인실에 입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12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환자들의 비자발적 상급병실 이용률은 평균 60%에 달했다.

다만 일반병상 확대로 감염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6인실 위주의 혼잡한 일반병상을 4인실 위주로 바뀐다. 전체 병상의 50%를 6인실로 둬야 한다는 기존 ‘6인실 병상 최소 확보 의무’도 폐지된다. 병원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격리수가(일반병실 대신 격리실을 이용할 때 지급하는 수가)도 현실화, 인상해야 한다는 계획이다.

원래 1·2인실에 입원하면 하루 입원비는 병원에 따라 최대 45만원에 달한다. 이로 인해 환자들이 상급병실료로 지불한 돈은 한해 평균 1조8000억원 규모다. 하지만 복지부 계획대로 일반병실 비율이 70%로 상향 조정되면 환자들의 상급병실료 부담이 한해 570억원 정도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병원계는 다인실이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 단순히 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반병실 비율을 늘리는 것은 적절한 조치가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다. 다인실 확대는 감염병 예방 측면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조치라는 주장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기준병실을 6인실에서 4인실로 바꾼다고 해서 감염병 예방에 도움된다는 발상은 굉장히 1차원적”이라며 “전세계 전문가들이 메르스 확산의 원인으로 문병, 간병문화, 의료쇼핑, 다인실 등을 지적하고 있는 데도 정부는 여론에만 편승해 다인실 확대를 외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다른 수도권 대학병원 관계자는 “지난달까지 일반병상 비율을 70%까지 맞추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기존 1~3인실 벽을 허물고 공사를 하느라 환자들의 불편이 컸고 재정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며 “정책 기조가 자주 오락가락하는 복지부 특성상 관련 법이 언제 또 바뀔지 몰라 걱정된다”고 말했다.

다인실 확대 정책으로 수입이 줄어드는 점도 병원계가 정부에 정책 재검토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다. 정부 기준에 맞추려면 병원 당 100~300개의 병실을 다인실로 바꿔야 하는데, 이런 경우 매일 최대 4000만원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게 병원 측 주장이다.

병원계는 복지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일선 병원들은 지난 7월 7일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메르스 등 감염병 확산에 대비해 다인실 축소로 병실 환경을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히자 혼란에 빠졌다. 이는 상급병실 축소 및 일반병실 확대로 대표되는 박근혜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과 정면으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시대로 일반병실을 늘리는 공사를 하고 있던 병원들은 일제히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
각계 각층에서 이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자 복지부는 다음날인 7월 8일 해명자료를 내고 “감염관리 강화대책과 3대 비급여 부담 해소정책은 상반된 내용이 아니며 일반병상 확보비율을 70%까지 확대하는 것은 원안대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건당국은 검역관리 및 감염병 예방 예산을 전년 대비 2배 늘리는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다인실 확대로 인한 감염병 취약 문제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자신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검역소 검역관리 예산으로 올해 55억원보다 2배 이상 많은 111억원을 투입해 공항 검역소에 격리시설과 진단검사실을 설치하고 열감지카메라 등 검역장비를 보강하기로 했다. 여기에 총 200억원을 들여 감염병 대응 긴급상황실을 신설한다.
또 109 감염병 콜센터를 상시화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올해 52억원에서 124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렸다. 특히 항바이러스제 확보에 512억원을 신규 배정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많은 예산이 효율적인 정책 수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 결과 정부는 10년간 감염병 연구개발(R&D)에 1조897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도별로는 2005∼2009년 3398억원, 2010∼2014년 7500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006년 조류인플루엔자(AI),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H1N1),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 등을 겪었지만 눈에 띄게 개선된 점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이는 메르스 대응 부실로 이어졌다. 김재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는 감염병 R&D에 1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정작 메르스 사태 때 감염병 위기 대응 능력의 허점이 드러났다”며 “부처간 통합관리 실패로 유사 중복과제가 발생하는 등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 = 박정환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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