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시각 처리 원리를 모방한 반도체 칩이 기존보다 4배 빠르게 영상 속 움직임을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의 눈보다 4배 빠르게 사물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로봇 눈’과 같은 반도체 칩이 나왔다. 사람의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원리를 반도체 칩에 적용해 인간의 시각 능력을 뛰어넘었다.
가오숴 중국 베이징항공항천대 교수와 리타오 베이징이공대 교수 공동 연구팀은 사람의 시각 처리 과정을 모방해 영상 속 움직임을 빠르게 잡아내는 반도체 칩을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10일(현지 시간) 공개했다.
자율주행차나 드론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려면 장착된 카메라에 담기는 영상에서 물체가 어디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실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영상 전체의 화소를 하나하나 분석해야 해 실시간 계산이 쉽지 않았다. 일반 TV 화질 수준의 영상 한 장을 처리하는 데 0.6초 넘게 소요됐다. 자율주행차나 드론이 실시간으로 판단을 내리기엔 느린 속도다.
연구팀은 뇌의 시각 처리 원리에서 해법을 찾았다. 사람의 뇌는 눈으로 본 장면을 한꺼번에 처리하지 않는다. 망막이 빛을 받아들이면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중계 기관인 외측슬상핵이 움직임이 생긴 곳을 먼저 골라내고 대뇌 시각 영역이 해당 부분만 집중 분석한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반도체 칩으로 구현했다. 뇌의 신경세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연결 방식을 모방해 전류 흐름을 조절하는 반도체 부품인 트랜지스터를 격자 형태로 칩에 배열했다. 이 같은 트랜지스터 배열은 영상의 밝기 변화를 감지해 물체가 움직이는 영역만 추려낼 수 있다. 칩이 움직임이 있는 영역만 골라내면 기존 소프트웨어는 영상 전체 대신 칩이 골라낸 좁은 영역만 분석하면 된다. 처리할 양이 줄어드는 만큼 속도가 빨라지는 원리다.
개발된 트랜지스터는 0.1ms(밀리초·1밀리초는 1000분의 1초) 만에 밝기 변화에 반응하고 전원이 꺼져도 1만 초 넘게 정보를 유지하며 8000회 이상 반복 사용이 가능하다.
연구팀은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팔 조작, 탁구 경기 등 다양한 상황에서 개발한 칩을 시험했다. 실험 결과 평균 4배 빠른 속도로 움직임을 감지하면서도 정확도는 기존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아졌다. 자율주행차 주행 상황에서는 영상 처리 시간이 약 0.2초 줄어 시속 80km를 달리는 자동차가 전방의 물체를 감지하고 멈추는 제동 거리가 4.4m 단축됐다. 드론 비행에서도 반응 시간이 3분의 1 이하로 줄어 움직이는 물체를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뇌의 시각 처리 원리를 반도체 칩에 적용해 영상 분석 속도를 사람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이라며 “자율주행차의 충돌 회피나 드론의 실시간 물체 추적은 물론이고 로봇이 사람의 몸짓을 읽고 즉각 반응하는 분야까지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0